"안녕하세요, 택밴데요. 내용물이 좀 작은데 문 앞에 둬도 될까요? 우편함에 넣어 놓을까요?"
일하던 도중에 걸려온 우체국 택배 기사님의 전화. "문 앞에 두셔도 돼요. 어차피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무심히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약간 감탄했다. 그의 사소한 행동에서 프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냥 문 앞에 두고 사진만 찍어서 보내도 됐을 텐데. 혹여 분실이 되더라도 속이 쓰릴 사람은 <문 앞에 두고 가 주세요>라는 요청사항을 써 놓은 나니까. 네 탓이요, 내 덕이요 싸우는 세상에 책임 소재를 떠나 맡은 일을 잘 해내려는 태도는 너무도 귀하다.
급한 업무를 마무리한 뒤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이들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하게 웃는 사진과 함께, 신기할 정도로 공통적인 조언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전심전력으로 임하라는 것. 가령 최고의 셰프가 되기 위해 2년 동안 설거지만 (진심으로) 했다거나, 최고의 복서가 되기 위해 수년간 줄넘기만 (이 또한 진심으로) 했다는 식이다. 기본기와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도 되겠고, 더 나아가면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의미도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더라도 나만은 내가 최선을 다한 걸 알고 있다면 후회 없이 당당하다. 그런 사람은 빛나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인생을 좀 거저먹고 싶을 때가 있다. 저건 열심히 했으니 이건 좀 꼼수를 써 볼까? 어차피 아무도 모를 거니 그건 슬쩍 뭉개볼까? 그럴 땐 퍼뜩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의 내 일상이 이만큼이나마 굴러가고 있는 건, 운이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일부는 하기 싫은 일들을 울며불며 해낸 과거의 나 덕분이다. 머릿속 방 한편에 세 들어 살며 온종일 합리화만 하는 '게으른 나' 자아의 멱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잡는다.
"10년 뒤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자신 없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걸 배우고 못된 말은 속으로 삼킨다. 뭐 이런다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순 없겠지만, 적어도 프로다운 인생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