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무슨 임무 하러 침투하는 사람 같아요."
수영 강습을 받은 지 3개월 차에 강사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눈물 나는 폐활량 덕분에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판단력도 흐려지는 나는 헉헉대며 되물었다.
"예?"
"누가 쫓아와요?"
"예?" (힘들어서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동작도 너무 급하고. 팔은 자연스럽게 툭 던지면 되는데 왜 손끝까지 힘을 주세요?"
애석하다. 손끝까지 힘이 들어갔단 사실조차 난 몰랐다. '자연스럽게 툭'이라니 나 같은 초보에겐 너무 세련된 스킬이다.
"아니 좀 더 일찍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아는데 못 하시는 건 줄 알았죠." (그 말도 맞다)
수영의 기본은 힘 빼기다. 이제 '왕초보'에서 벗어나 '초보'가 된 나는 한층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고, '기본' 정도는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어쩐지 이상하긴 했다. 남들은 왕복으로 몇 바퀴씩 자유형을 해야 헉헉거리는 정도지, 나처럼 반 바퀴만에 숨 넘어갈 사람처럼 힘들어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출발선에서 반대편까지 죽기 살기로 헤엄친 후 한 팔을 바깥에 걸치고 숨을 가라앉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강사 선생님은 이런 사람을 ‘목욕탕 터줏대감 유형’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 습관적 '죽기 살기로'가 문제였던 것이다. 폐활량도 자세도 아닌.
잘 해내고 싶고, 잘 해내야 해서 잔뜩 힘주고 살던 버릇은 어깨 위에 잔뜩 달라붙어 물속에서도 좀처럼 흩어지지가 않는다. 이런 상태로도 충분히 물에 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완주는 어렵다. 어디까지 왔지? 많이 남았나? 빨리 도착하고 싶은데. 조바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 호흡이 흐트러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곧이어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가 찾아온다. 실제로는 남은 숨이 충분한데도. 힘을 많이 주면 힘이 든다. 당연한 사실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물과의 한바탕 사투 후 또다시 바깥에 한 팔을 걸치고 옆 레인의 선수반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가미가 달린 것 같은 저 친구들은 하루 4시간이 넘게 무슨 생각을 하면서 훈련할까? 그 유명한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처럼 아무 생각도 안 하려나? 그들은 초등학생인데도 배에 왕 자 근육이 있다. 배에 왕 자가 있는 초등학생이라니 그런 엄청난 존재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인생이란 저런 게 아닐까. 아무 생각 없이, 가끔은 힘도 좀 빼고, 뭔가를 그냥 꾸준히 하다 보면 배에 왕 자가 생기는...
산소가 모자란 직장인은 수영장 구석에서 인생을 고찰하다가, 숨을 하압 들이쉬고 또다시 발을 굴러 반대편을 향해 출발해 본다. 어깨와 손끝이 문어가 되었다고 상상하며 애써 흐느적거린다. 옆 레인에서 거센 파도를 일으켜도 기꺼이 휩쓸린다. 입 안에 물이 벌컥 들어오면 그냥 좀 삼킨다. '이 끝에서 저 끝'이라는 목표가 아닌, '이 끝과 저 끝 사이'의 찰랑이는 물결을 느끼는 데에만 집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