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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Mar 08. 2022

취미의 역사 (희망 편) : 운동과 독서

여행이 분기별 이벤트에 가까운 취미였다면 운동은 이미 일상 속에 스며든 취미다. 규칙적인 운동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으나 항상 눈앞의 다른 일들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였다. 대학생 때는 운동에 투자하는 돈이 아깝게 느껴졌고, 사회 초년생 때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이미 너무나 피곤한 상태여서 몸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야근이 많지 않았는데도 그랬던 걸 보면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긴장상태였던 것이 피로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피곤하니 눕게 되고 누워만 있으니 더욱 무기력한 저녁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결심의 계기는 늘 그랬듯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퇴근길에 신규 개업 헬스장 할인 이벤트 현수막을 보게 됐고, 편의점에서 4개 만원 맥주를 사는 대신에 홀린 듯 헬스장에 들어가 PT 30회를 결제해 버렸고, 돈을 냈으니 안 갈 수는 없고, 그렇게 3개월 동안 경솔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할부를 갚아 나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저녁 운동이 그럭저럭 할 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평생 운동과 담을 쌓았던 인간이 운동을 취미로 들이게 된 이야기 치고는 다소 허무하지만 때로는 그게 정답인 것 같기도 하다. 별 생각도 목표도 없이 일단 시작해보는 것 말이다.


운동을 시작한 후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당연히 건강이지만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의 변화도 있었다. 그건 바로 여가 시간을 보낼 때 이전에 비해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패러글라이딩, 러닝, 등산 등 몇 년 전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에너제틱한 취미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비록 야외 활동 몇 개 했다고 해서 구릿빛 피부와 탄탄한 근육을 얻게 된 건 아니지만 아웃도어형 인간 특유의 활기를 내심 동경해왔던 나는 그 변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좀비 떼가 창궐하거나 자연재해가 덮쳤을 때 이전의 내가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죽는 시민 역할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래도 영화가 시작하고 5분 뒤쯤 주인공 곁에서 죽는 엑스트라 12 정도의 존재감을 갖춘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얼떨결에 즐기게  운동과 달리 독서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거의 유일한 취미 활동이다. 시끄러운 ,  흘리는 것을 싫어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바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데다 사방이 조용한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읽는  좋았다. 학업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3 때는 수능만 끝나면 문제집은 쳐다도 보지 않고 '읽고 싶은 책만' 잔뜩 읽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살면서 독서만큼 안정적으로 정신적 만족을 주는 활동은 드물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지난해에는 대부분 직장인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에 다니며 오래간만에 건강한 토론의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껴 보기도 했다. 항상 혼자, 혹은 소규모의 인원으로도 가능한 취미 활동을 선호했던 내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나누는 독서모임은 제법  도전이었는데, 운 좋게도 그 곳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취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운동과 독서라고 대답하면 "그것 참 재미없게 사시네요" 같은 반응이 돌아오기 쉽다. 하지만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 직장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미치도록 성실하게 지낼 거라는 짐작은 큰 오산이다. 나는 독서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게으르게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과자 먹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지만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떠드는 것도 좋아한다. 말하자면 운동으로 건강을 +100까지 끌어올렸다가 음주로 -100을 기록함으로써 현상유지를 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나의 건전한 취미 활동들은 나약한 한 인간의 정신 건강을 보살핌과 동시에 다른 모든 잘못된 생활 습관을 상쇄함으로써 일상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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