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안 한 이유가 있었구나
취미로 무언갈 시작할 때 재능의 유무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전 속도가 성에 차지 않으면 흥미가 떨어지기 쉽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요소다. 애초에 잘하려고 시작한 게 아니더라도 잘할 때가 훨씬 더 재미있다. 전문 직업인만큼의 훈련량을 소화하지 않는 이상 실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잘 못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항상 조금 섭섭한 일이다. 음악이나 미술, 무용 같은 예술 분야의 경우 그 한계는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내 ‘망한 취미’의 최고봉은 단연 악기 연주다.
사실 나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기 전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피아노를 배웠다. 탁월한 재능을 보여서라기보다는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퇴근 전까지 시간을 보낼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피아노 학원은 일종의 어린이집 혹은 보습학원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서 정해진 양의 피아노 연습이 끝나면 학교 숙제를 하거나 문제집을 풀게 했다.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나이에 매일매일 피아노를 연습했으니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원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도 7년 동안 정이 많이 들긴 했는지, 미술 입시를 시작하며 피아노 학원을 그만둘 때는 내심 속이 쓰려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렇듯 피아노에 대한 좋은 기억 덕분에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게 약간의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자신감에 잔뜩 취해 있던 스무 살의 새내기는 작곡 동아리에 덜컥 가입하더니 그 시절 아르바이트 월급으로는 제법 큰 금액이었던 통기타까지 구입하는 패기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작곡은 물론이고 기타 연주도 놀랍도록 재미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단순히 악보를 읽고 반복해 연주하는 식으로 피아노를 배웠던 터라 성인이 된 후에는 머릿속에 아무런 이론적 지식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일단 소리라도 났는데 기타는 소리 내는 것부터 연습해야 한다는 점이 자꾸만 내 인내심을 시험했다. 동아리방에서 기타를 연습하다 보면 문득 초등학교 때 수행평가를 앞두고 단소 연습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덧붙이자면 정규 교육과정 12년 동안 내 단소에서는 단 한 번도 소리가 나본 적이 없다.
많은 꿈을 안고 들어간 동아리에서는 많은 술만 마셨고, 기타는 어딘가에 장작처럼 처박혀 잊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내 책상 한 편에는 우쿨렐레 하나가 뻔뻔스럽게 놓여 있다. 퇴근 후에 유튜브 강의를 보며 두어 번 연주해본 후로는 인테리어 소품의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다행히 이건 저렴한 입문용 우쿨렐레여서 썩어가는 통기타를 볼 때만큼의 죄책감을 주지는 않지만, '악기 한 가지쯤 다룰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악기와의 인연은 크게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