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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이라는 재능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by 바삭


살면서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

미술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어쩌다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도 '애매한 재능으로 열심히도 살았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칭찬을 받아도 어딘가 석연찮고 마치 내게 칭찬해 준 상대를 속인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까지 했다. 이제는 웬만한 칭찬을 제법 뻔뻔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예술만은 그게 안 되는 유일한 영역으로 남았다.


재능을 가진 인간들이 이루어 놓은 거대한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는 말 그대로 천재가 되고 싶었다. 모두의 동경과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사람, "나는 너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너보다 잘해"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압도적인 자신감과 분위기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사람과 마주하면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고 못난 부분을 찾아냈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결과도 더 나빠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억지였다. 누가 더 노력했는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으니까.


세상의 많은 일은 재능이 첫 번째다. 운동, 음악, 미술뿐 아니라 성격이나 분위기도 재능이다. 물론 살면서 많은 부분을 숨기고 고칠 수 있으나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얼굴은 빨개지는 것처럼. 누가 대놓고 말해주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 저절로 깨달았다. 나는 천재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천재가 될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비극도 뭣도 아닌 엄연한 현실이고 거기에 대고 불평할 이유는 없다. 그저 크기도 모양도 애매한 진주알처럼 조그만 재능을 진흙 속에서 건져내고 열심히 광을 낸 뒤, 때론 뿌듯해하고 때때로 좌절하며 살아가면 그런대로 행복하다. 취직을 하고 예술과 어느 정도 안전 거리를 확보한 지금에 와서야 조금 아쉬운 건, 오랜 시간 노력한 나 자신을 충분히 칭찬해 주지 않았다는 거다. 고질적인 승부욕과 욕심 덕에 정글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못살게 굴며 상처를 냈다.


수십 년 간 가장 가까이에서 지겹도록 지켜본 결과, 나의 재능은 두 가지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얼추 그럴듯해 보이는 재능'과 '성실함'. 이전에는 누가 내게 성실하고 똑똑하다는 칭찬을 하면 왠지 견딜 수가 없어서 격하게 부정하거나 내가 얼마나 끔찍하게 게으른지 어필하곤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내가 정말로 성실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뿌리 깊은 열등감 위에 절망이, 또 그 위에 도전과 성취의 짜릿함 같은 게 차곡차곡 쌓여 마치 기초공사를 탄탄히 한 집처럼 단단한 내가 되었다는 해피엔딩.


지금의 나는 모순 덩어리다. 모든 건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냉소적으로 말하면서도 '세상에 못할 건 없다'라고 굳게 믿는다. 그 믿음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믿는 게 바로 내 재능인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재능은 재능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제법 성실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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