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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 Sep 28. 2024

마드리드에서의 첫날

처음 도착한 유럽, 처음 보내는 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무너지듯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몇 시간 뒤,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밖으로 나가 물을 사 올까 생각했지만, 저녁에 혼자 나가는 것이 안전할지 망설여졌다. 마침 체크인 카운터 옆에 작은 자판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동전을 들고 방 밖으로 나섰다. 


자판기 앞에는 어떤 남자가 있었다. 우물쭈물하길래 무언가를 뽑으려나 싶어서 잠시 기다렸다. 남자가 꾸물대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묻길래 음료수를 하나 뽑으러 나왔다고 말했다. 오렌지맛 환타처럼 보이는 음료가 보여서 동전을 넣었고, 차가운 온도에 만족하며 방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때 남자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고, 여행 중이라고 답했다. 낯선 곳에서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가 보다 싶어 몇 마디 말을 이어갔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이고 잠시 출장을 온 것이라고 했다. 출장 기간보다 며칠 일찍 와서 스페인을 둘러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여기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것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다며 우리는 악수를 했다.


처음에는 자판기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그가 직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직원이 아니라면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곳에 서있을 것이라, 싶었다. 난 그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짐을 보관하는 락커룸에 자물쇠가 없어서 직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은 자리를 비운 듯했다. 나는 자판기 안에 판매되고 있는 자물쇠를 보았기 때문에 이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자물쇠의 가격은 3유로였고, 한 화로 4500원이었다. 그는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 숙소의 비용이 2만 원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자물쇠는 비싸다고 할 수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모든 것이 유료였다. 수건도, 샴푸와 린스도, 비누도 돈을 주고 사야 했다. 나중에 씻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샤워장에는 잠금장치도 없었다. 이후에 차근히 쓸 테지만, 유럽에는 다양한 유형의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애플리케이션의 별점은 게스트하우스의 환경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와 웃으며 몇 마디 대화를 더 했지만, 나는 아직 장거리 비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고,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이 아직은 낯설게 여겨졌기 때문에, 곧 그 자리를 곧 벗어나고 싶어졌다. 남자는 계속 말을 걸었고, 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은 듯 보였다. 나와 조금 더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면 무언가 재밌는 이벤트가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군요, 이만 자러 가야겠어요,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내 자리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한 명씩 방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보았다. 유럽의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 남녀 혼숙이라서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도 별일 없으리라, 불안을 잠재웠다. 밤새 코 고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어 플러그를 꼈지만, 여전히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때문에 불완전한 잠을 청하며 스페인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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