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질 Oct 01. 2024

마드리드 소피아 미술관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라 그런지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곳곳에 거대한 가로수가 눈에 띄었다. 눈부신 햇빛과 건조한 공기까지 더해져,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옷은 가지각색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봄 계절과 같았다. 겨울 점퍼나 환절기 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 한여름인 것처럼 브라탑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건물의 그늘에 들어가면 추웠고, 햇빛 아래로 나오면 더웠다.


왕립 소피아 미술관 앞에는 거대한 광장이 하나 있는데, 소피아 미술관을 마주 보는 광장의 벽면과 모서리 기둥에는 멋진 그래피티가 그려져 한층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젊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 미술관 역시 길게 줄을 서야 했지만, 프라도 미술관처럼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지는 않았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짐보관함이 있었는데, 대부분 사용중이었다. 다행히 7단 보관함의 가장 꼭대기에 한 자리가 남아 있었는데, 내 키가 보관함까지 닿지 않아 끙끙대고 있었다. 그때,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여자분이 나를 지켜보다가 짐 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 가방을 번쩍 들어 보관함 공간에 넣고 잘 닫아준 그녀에게,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당신, 키가 엄청 크군요.'라고 덧붙였다. 두 여자는 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함께 웃었다. 


소피아 미술관의 모양은 한국의 미음자 모양 한옥처럼 건물 가운데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뚫려 있었고, 미술관 쪽문에서 광장으로 가는 길 초입에는 분수가, 분수를 둘러싼 주변에는 커다랗고 푸르른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쨍쨍한 햇빛이 바닥에 내리쬐니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들 사이사이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고, 벤치에 앉으면 커다란 모빌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젊은 친구들은 분수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만들어진 석조 지지대에 앉거나 누워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스페인의 좋은 날씨를 즐기고선, 곧 소피아 미술관의 작품들을 감상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소피아 미술관은 가운데가 뚫린 미음자 모양으로 몇 층을 이루고 있었고, 각각의 전시관이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방앞에 붙은 작은 번호판을 보지 않는다면,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역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고, 가이드에서 설명해 주는 작품 순으로 보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자주 길을 잃었고, 모서리마다 상주해 있는 직원분들에게 이 작품은 어디에 있는지, 저 작품은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봐야 했다. 그들은 매우 친절하게 나에게 안내를 해주었고, 때로는 직접 자리에서 벗어나 작품이 나올 때까지 나와 동행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미술관의 한결같고 젠틀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디에고 리베라,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에 조예가 전혀 깊지 않은 이유로, 나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어떤 점들이 마음에 들었는지는 지금 돌이켜보면 명확하지는 않지만, 추상적인 것, 역동성이 느껴지는 것, 감정이 느껴지는 것,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들을 눈여겨본 것 같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소피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라고 생각한다. 이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잘 안다기보다, 그 앞에 서있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추측했다. 게르니카는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보다 훨씬 컸다.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어디로든 파고 들어가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작품이 워낙 컸던지라 한 프레임 안에 깨끗하게 넣기가 힘들었다. 가이드에서는 설명이 울렸다.


<게르니카> 이 한 작품에는 다양한 상징적 요소가 있다. 죽은 아이를 껴안고 통곡하는 여자가 있고, 사지가 잘린 사람, 화난 표정을 한 말이 있다. 천장에서는 날카로운 빛을 쏘는 전구가, 그 옆에는 홀로 빛나는 촛불이 있다. 각기 다른 장면처럼 보이는 사물들이 하나의 그림 안에 합쳐졌다. 어딘가 통일성이 있나 싶으면서도, 파편화된 느낌이 드는 그림이었다. 각자의 사물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는데, 그 고유한 의미들이 한 작품 안에 드러나며 전쟁의 고통과 비극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었다.


<게르니카> 작품 옆에는 피카소가 이 그림을 위해 그린 스케치들, 가령 게르니카에서 아이를 앉고 울부짖고 있는 여자의 여러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쟁이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그려보고, 그것을 거대한 캔버스에 이리저리 조합하는 피카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사뭇 진지한 표정을 떠올렸다. 자신을 둘러싼 우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자 했던 그의 시도를 보면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에서 밥 먹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