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시골행을 감행한 뒤, 친구들에게 선물로 무화과를 받았다. 무릎보다 낮은 무화과를 잘 키우고 싶은 맘에 옥상에 올려놨다가, 마당 가운데로 옮겼다가, 처마 밑으로 데려왔다. 매일 아침 무화과와 사마귀를 확인하는 일과가 이어졌다. 사마귀는 손톱보다 작은 시절부터 무화과에 자리를 잡았다. 사마귀가 자랄수록 무화과 잎도 풍성해졌다. 첫 해부터 열매가 서너 개씩 달려서 빨갛게 익었다. 달콤함도 잠시, 마을에서 쫓기듯 나오며 무화과를 밭으로 옮겼다. 화분을 옮길 때는 이미 겨울이라 땅이 얼은 후여서 심을 수가 없었다. 결국 포대에 흙을 가득 담은 뒤 닭장에 넣었다가 볕, 바람, 비를 쐬도록 종종 꺼내길 반복했다.
밭에서 첫겨울을 보낸 무화과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목질화되었던 중심 줄기 외에는 모두 바싹 말라서 꺾을 때마다 뚝, 뚝, 소리가 났다. 그나마 중심 줄기 속은 푸릇했다. 봄볕에 눅진해진 땅을 탐색했다. 무화과가 성장했을 때 밭을 너무 가리지 않으면서, 적당히 외진 쪽을 찾다 보니 산과 인접한 곳이 맞았다. 문제는 아직 갈아내지 못한 땅이라 한 삽을 퍼내기도 힘들 정도로 돌이 많았다. 반나절 동안 겨우 뿌리가 들어갈 정도로 파냈다. 우선 무화과를 심고 따로 흙을 사 와서 덮었다. 다행히 가을까지 보내고 다시 겨울이 왔다. 바람막이 없는 야생 노지에서 맞는 첫겨울이었다. 뿌리가 얼지 않도록 지푸라기와 왕겨로 땅을 덮었지만, 겨울은 매년 이례적인 한파로 찾아왔다.
이번에는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중심부까지 딱딱하게 굳어서 부모님도 무화과 생사에 대해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다시 봄이 오고 세 번째 이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토질이 더 부드러운 비탈이었다. 석류나무 옆에 자리한 무화과는 전보다 더 작아져서 마른 막대기 같았다. 입춘이 오기 전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들과 달리 무화과는 초여름까지 작은 잎조차 틔우지 못했다. 이미 늦었나 싶다가도 포기는 못하겠어서 보일 때마다 물이나 흙을 주었다. 그러던 6월, 드디어 잎 하나가 돋았다. 한눈을 판 사이 새로운 줄기가 돋고,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잎이 무성해졌다. 무화과는 생을 증명하듯 무럭무럭 솟아서 꼭대기가 무릎에 닿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화과 잎에 또 사마귀가 왔다. 풍성한 잎을 들추자 사마귀가 두 다리를 들며 제 영역을 주장했다. 크고 건장한 사마귀가 자리할 정도로 커진 잎사귀를 손으로 훑은 뒤 자리를 떴다. 아랫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올라왔는데 엄마가 무화과 근처로 불렀다. "열매 맺힌 거 봤어?" 엄마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아서 뒤적였더니 엄마가 손으로 가리켰다. 잎아래에 막 여물기 시작한 초록 열매가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작은 열매였다. 올해는 열매를 못 맺을 줄 알았더니, 잎 아래 조용히 감춰둔 모양이었다.
무화과는 지금도 땡볕 아래서 천천히 자라는 중이다. 가물어진 탓에 잎을 숙였다가도 새벽이슬만으로도 생생하게 돌아왔다. '절기는 못 속인다'는 말과 달리 처서가 가까워져도 폭염이 이어지지만, 무화과는 아직 건재하다. 밭에는 아직 버티고 선 작물들이 있다. 그늘 한 점 없는 밭에 서서 붉게 익어가는 고추, 말라가는 대에도 맺히는 토마토, 잎이 타들어가도 줄기를 곧게 편 토란 등이 살아있다. 소생을 반복한 무화과와 올해는 못 맺으리라고 생각했던 복숭아까지 올여름은 예상하지 못한 생들로 북적였다. 무화과 열매가 어디까지 영글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늘 쉽게 포기하려는 내게 작고 푸른 끈기는 충분히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