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은 어쩌면 긁지 않은 복권일지도 몰라.
연금복권을 매주 사다 모은다.
뭐라도 되겠지.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요즘은 매일 10줄씩 글을 쓴다. 언젠간 뭐라도 좋은 글을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주에 한 번 아무글대잔치로 써둔 글들을 모아 보기로 했다.
연금복권이 당첨될 때까지, 연글복권이 당첨될 때까지 꾸준히 뭐라도 해야지.
내 인생 잭팟 터질 때까지...
1. 계절을 보내며 하는 생각
봄이 오는 소리가 좋다. 집 안에 식물들이 빨리 자라는 속도가 느껴질 정도로 생명력이 넘친다.
올 해 겨울은 참 길고도 혹독했다. 나는 차갑게 얼어붙고 메말라서 한 겨울 밤 우연히 마주친 꼬마 눈사람 앞에서 눈물이 났다. 겨울에는 밖에 나가는 것이 무겁다. 옷의 무게가 무겁고, 후드티부터 패딩, 장갑, 목도리까지 둘러야 끝나는 외출 준비가 버겁다. 겨울에는 봄을 소망 하게 된다. 벚꽃이 피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겨울이 끝나는 순간을 나도 몰래 손꼽아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벚꽃은 잠깐이라, 벚꽃길 따라 걷게 되면, 유치한 그 시절 노래까지 기어이 듣고야 말게 된다. 잠들기가 아쉬운 밤. 내가 자는 새 벚꽃이 떨어질까 자꾸 자꾸 걷게 된다.
여름은 차갑고 시원한 수박의 맛. 과일이 주는 충족감이 증폭되는 계절.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여름밤은 차가운 맥주 안주. 한강을 한 없이 걷다가 아무렇게나 앉아서 캔맥주 따고 별을 바라보고 싶다.
가을에는 손을 잡고 걷고 싶다. 낙엽이 지면 한 해가 끝나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나는 아직 올해를 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좀 더 머물러 주면 안 되겠니...
가을 하늘은 너무 맑아서 연을 날리고 싶다. '이 나이에 무슨 연이야.' 아니, 나는 어렸을 때 충분히 연을 날리지 못 했는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잃어버린 끊어진 연줄이 계속 나를 미련 갖게 해.
나는 한 때 뜨거운 한 여름 같은 사람이었고, 발바닥에 열이 나서 맨 발로 다녔다. 지금은 그저 늦가을 오후 3시 같은 느긋함이 좋다. 한 여름 락페스티벌보다는 선선한 재즈 페스티벌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좋다. 그렇게 나도 계절이 들어가나보다.
2. 나라는 사람
넓은 집에 살고 싶어한다. 좁은 집에서 분투하면서 매일 버리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연비가 떨어지는 사람이라 제 때 제 때 밥을 먹어줘야 하고, 식후에는 꼭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 가만히 누워서 침대에 가라앉는 시간을 사랑한다. 혼자 걸으면서 동네를 탐험하는 시간을 즐긴다.
생각보다 상냥하지 않는 사람. 외동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중심과 기준은 나다. 가족도 아마 그 다음인 것 같다. 내가 제일 소중해. 그래도 사람은 좋아한다. 언제나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간의 쓸모를 살피고,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한다.
잔디밭 러버. 날이 좋을 때는 언제나 돗자리를 들고 다닌다. 언제 피크닉이 벌어질지 모르니, 백팩 안에 돗자리와 와인 오프너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꽃을 심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식물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집에 식물이 늘어간다.
음악 들으면서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집 1층에 있는 까페에 나와 부러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바람에 일렁이는 흰 천을 보고 있다. 라디오를 듣고 자란 팟캐스트 러버이다. 팟캐스트를 이불삼아 덮고 잔다. 영노자로 시작해 비혼세를 듣다가 듣똑라를 들을 때 쯤 잠에 들고, 꿈에 가끔 팟캐스트 내용들이 나오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공백들을 채워준 목소리들. 새로 읽을 책을 알려주고, 주말에 볼 영화를 알려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한가롭게 살고 싶은데 자꾸 일을 벌인다. 그러다 쫓겨서 괴로워하면서도 어느새 뭔가 또 판을 벌리고 있다.
3.흥미의 유통기한
흥미의 유통기한이 사라지기 전에
그때는 반짝거렸지. 너무 재밌어서 밤새는지도 몰랐어.
지금은 그냥 도망가고 싶어. 왜 그런지 나도 몰라.
뭐든 재밌을 때 하고 싶을 때 실컷 해둬야 해. 생각날 때 해야 돼. 마음 먹었을 때 저질러야 해.
시간이 지나고 희미해지면 남는 건 후회 뿐이야.
그 때 할 걸 그랬어. 왜 하다 말았을까. 나 왜 그랬지. 아쉽다. 그러지 말걸
그러니까 마음이 시들기 전에 해야 돼.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 기록해둬야 해. 그리고 싶을 때 그려야 해.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둬야 해. 잠들기 아쉬운 밤 나는 글을 써. 내일이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내 마음 때문에. 나는 너무 많은 후회를 짊어지고 사니깐.
더 이상은 미련 갖기 싫어. 반짝이고 불꽃 튀는 이 순간이 사라지기 전에 적어 둘래.
내 안에 이야기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뭐라도 끄적거릴래. 표현하고 싶은 것이 머리 속에 맴돌다 사라지기 전에 낙서라도 그려볼래.
나 아직 상하지는 않았겠지?
4.인생의 플레이리스트
아침에 한강을 달릴 때는 페퍼톤스의 음악을 듣는다. 상쾌하고, 건강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이렇게 늦은 밤, 샤워 후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맥주를 마실 때는 얄개들의 2000cc를 듣는다. 내가 여의도에서 한강을 따라 밤새 걸을 때 이어폰을 끼고 듣던 멜로디다. 어딘지 가슴이 설레서 계속 걷게 되는 매력이 있다.
풋풋한 여름밤, 잠 못 이룰큼 설레고 달큰한 마음에 애달을 때는 슈가볼에 '여름밤탓'을 들었다. 신청곡을 틀어주던 바에서 음악에 맞춰 같이 춤을 추던 밤, 손잡고 빙글 돌던 노래
여행의 설레임을 느끼고 싶을 때는 파리스매치다. 속초의 파란 바다와 호수의 시원한 느낌이 고스란히 귀에 전해진다.
혼자 여행하던 밤에는 이소라의 헤이 디제이~로 시작하는 노래를 밤새 들었다. 달달하게 귀에서 녹여 적시는 진한 홍차 같은 이소라의 목소리는 말해 뭐해
길티플레저는 십센치와 검정치마의 노래이다. 나의 20대를 바쳐 좋아했고, 나의 모든 감정의 순간마다 함께했지만, 이제는 여러가지 이유로 듣고 싶지 않다. 그래도 가끔 우연히 들으며 그 시절로 자동 소환해버려서 좋아하는 내가 싫다.
어릴 적 내 방에는 큰 전축이 있었고, 라디오와 LP판, 그리고 두 개의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다. 밤새 라디오를 들었고, 엽서를 썼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다. 나의 감수성의 80%는 그 때 형성되었다. 그 때 즐겨 듣던 노래는 음.. 이승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지금 들어도 참 로맨틱하면서 담담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시련 당하고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동해안을 따라 6시간 반을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하루 종일 술탄오브디스코의 숱한밤들을 들으며 울다 말았다. 잔잔하고 따뜻하고 꾹꾹 눌러 담은 위로라서 좋아
처음으로 가 본 제주도에서 HD처럼 선명한 하늘 아래 들었던 노래는 Modjo의 lady(here me tonigt)이다. 나는 야근 마치고 혼자 통영으로 떠나는 버스에서도 맨 뒷 칸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몰래 맥주를 마시며 팔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여름 밤에 자주 듣는 노래는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라는 노래이다. 예전 라디오에서 장기하가 오래된 노래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틀어줬었고, 내가 문자로 비틀즈처럼 세련됐고 국거리 장단처럼 쫀득하다 라는 식의 평을 보냈는데 노래 끝나고 바로 소개 시켜줬고, 그 이후로 늘 좋아하게 되었다.
정말로 아~련한 노래.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고 싶을 때는 커피프린스나 궁 ost를 듣는다. 그 시대에 두고 온 나의 연애세포와 말랑한 감정을 만날 수 있다.
까페 알바시절 마감할 때 산처럼 쌓인 설거지 더미를 해치우며 듣던 노래는 '옥상달빛의 옥상달빛'이다. 정말 옥상에 올라가 달빛을 바라보는 황홀한 기분의 노래다. 옥상달빛 노래는 회사에서 힘든 시절 비상 계단에서 옥상에서 쭈그리고 앉아 듣던 '수고했어 오늘도'도 좋아하지만 나에게는 이 노래가 올타임베스트다.
5. 자격지심
오고 가는 말 속에서 진심이 있을까? 입으로 축하해주고 있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나 빼고 타인은 다 부지런히 살고 있는 거 같다. 나는 그저 나를 씻기고 먹이고 사람처럼 살게 하기도 힘든데
이것 저것 판만 벌리고, 수습은 못했던 하루에 도망가고 싶어서, 뒷자리에서 몰래 도망가고 싶을 때를 검색해봤다.
걸을 수록 무거워지는 가방에 무게에 뒤로 쏠릴 거 같던 하루. 하나하나 필요한 욕심들을 넣다 보니, 가방이 무거워졌고, 내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나는 하루에 몇 번 거짓말을 하나 그리고 무마하나, 무기력해질 때...
엄마한테 걸려 온 전화에 또 한 번 거짓말을 하고, 아 이대로 집에 가서 자고 싶다.
투두리스트는 도대체 왜 쓰는 거야. 하루 안에 다 하지도 못하는데, 할 게 많아서 투두리스트 쓸 시간도 없다.
나 빼고 모두 다 채널도 만들고, 책도 쓰고, 집도 사고 고양이도 키우고 운전도 하고 차를 사는 거 같다. 나는 운전도 못 하는데
나도 대기업을 다니다 때려 치고, 세계를 여행 다니며 자아를 찾다가 서핑과 요가도 하고, 책도 쓴 다음 제 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브런치와 유튜브, 책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나던데...
마음이 널 뛰던 하루에 끝에서 우체통에 도착한 씨앗들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 부러워하고 자책할 시간에 화분에 씨앗이나 뿌리자. 언젠가는 싹 트겠지. 내 인생도 쓸만한 구석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