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일 Aug 27. 2021

나의 첫 정신병원 방문기

나는 성인 ADHD일까?

얼마 전 '젊은 ADHD의 슬픔' 이라는 브런치 북을 읽었다.

브런치 대상 받은 작품이 뭐가 있나 궁금해서 둘러보다 이끌리듯 들어가 단숨에 다 읽었고, 성인 ADHD 테스트까지 해보게 되었다. 


결과는 33점. 높은 수준으로 나왔다. 

어릴 때부터 산만하다. 부주의하다. 엉뚱하다. 칠칠치 못하다. 잘 잃어버린다. 정신 머리가 나갔다.. 소리를 듣고 자랐다. 쉽게 빠지고 쉽게 싫증 내고, 시작한 것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고, 방은 늘 너저분했고, 시간 관리하기가 힘이 들었다. 나도 ADHD는 아닐까 궁금한 적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언젠가 한 번은 정신과에 가보고 싶었다.

상담도 받고, 진단도 받으면 이따금 찾아오는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나아질까 싶은 마음에.

그렇지만 가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너무 비쌀 것 같아서. 그리고 왠지 한 번 약을 먹으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홀리듯 집 근처에 성인 ADHD 검사를 해주는 신경 정신과를 검색해봤다. 

적당한 거리에 여의사와 남의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 전화를 했다. 성인 ADHD 검사를 하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물었다. 검사비는 10만원, 진료비는 2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언제 예약 가능한지 묻고, 바로 다음날 예약을 했다. 


상담은 여러 번 심리 상담 센터에서 받아봤지만, 정신과는 처음이었다.

넓고 쾌적한 병원에는 푹신해보이는 쇼파와 싱그러운 화분들이 있었고 차분한 음악이 흘렀다.

접수를 하고 쇼파에 앉았다. 소파는 역시나 포근했고, 병원 안에 환자는 나 뿐이라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차분한 음악에 맞춰 명상을 하며 기다리려 했으나, 핸드폰 충전기를 놓고 와서 초조했다. 

(핸드폰 충전기를 챙겨오면 보조배터리를 놓고 온다거나, 노트북은 들고 왔는데 마우스를 놓고 온다거나 나는 어릴때나 지금이나 준비물을 늘 모자라게 챙겼다.)  간당간당하게 배터리가 남아서 노트북으로 카톡을 하면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왜 ADHD 검사를 받고 싶으세요?"

"어릴 때부터 산만하고 잘 잊어버렸어요. 요즘에도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성인ADHD 검사를 받아보고 싶어서요"


의사 선생님은 검사는 언제든 해줄 수 있지만 일단 처음 왔으니 면담부터 해보자고 했다. 요즘 감정은 어떤지 어떤 상황인지 어떤 기분인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최근까지 팀 프로젝트를 반년 정도 했고, 한 달 전부터 혼자 일을 준비하면서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가 쌓여있는 거 같아서 빨래를 해야 할 거 같다가, 운동도 가야 할 거 같고, 책도 봐야할 것 같고, 인터넷으로 자료도 찾아보다가 다른 일도 떠올라서 허둥지둥 대다가 결국은 무엇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요즘의 걱정 거리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러다 밤이 되서 누우면 잠이 안 오고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새벽까지 틀어놓다가 늦게 자고, 선명하고 때로는 무서운 꿈을 꾸게 된다고. 

그러다 성인 ADHD 검사를 인터넷으로 해보았고 꽤 높은 점수가 나와서 병원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독이 잘 되는 편이냐고 물었을 땐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보거나, 자기 전에 습관처럼 맥주를 마신다거나 알콜 의존증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맥주를 마셔도 예전처럼 즐거운 것도 아닌데 그냥 자긴 아쉬워서 충동적으로 맥주캔을 따고, 남기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맥주캔을 치우면서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시간 관념이 없고, 경제관념도 부족하고 오늘 오면서도 핸드폰 충전기와 주민등록증을 놓고 와서 애 먹은 이야기까지 줄줄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산만하고 엉뚱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며, 학창시절은 모범생도 노는 학생도 아닌 평범했지만 단체생활을 싫어해서 졸업날만 기다린 이야기부터, 가족들도 그렇게 꼼꼼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로 끝났다. 나는 늘 우리집에 접혀있던 신문지들이 제멋대로여서 각이 맞춰져 있지 않는게 불만이었다. 아주 예전 국민-초등학교에서는(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폐지를 모아오라고 시켰는데 반듯한 다른 집 신문지와는 다르게 우리집 신문지는 너저분하게 접혀있었던 것이 어린 마음에도 부끄러웠다. 


의사선생님은 차분하게 나의 말을 들어준 다음 환경 때문에 우울한 것인지, ADHD 때문인지 애매하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에 처음 오면 해보는 간단한 검사들을 해보고 다시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나는 진료실에서 나와 다시 쇼파에 앉아 5장 정도의 종이를 넘기며 간단한 질문에 답을 했다.

감정에 대한 테스트들이었다. 그렇게 답을 체크하고, 잠시 기다려 다시 진료실에 가서 면담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감과 불안감이 조금 높게 나왔는데, 일반인도 나올만한 수치라서 크게 염려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약간의 우울감이 있고, ADHD도 가능성이 있어서 우울증에도 처방하고 ADHD에도 효과가 있는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정신과 약을 처음 처방받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심 이 곳에 오면서 성인 ADHD 검사를 받은 후 삐빅! 당신은 성인 ADHD가 아닙니다! 라고 결론을 내주거나, 혹은 ADHD면 약 먹고 뿅 나아지는 결말을 원했는데...

하지만 지금의 복잡한 정신 상태를 병아리 감별 하듯 빠르게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약은 아침에 한 알 먹고, 술은 저녁에 먹으니 상관은 없지만 되도록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마시지 말라고 했다. 부작용으로 처음에는 손이 떨릴 수 있고, 일 이주 먹고 괜찮다고 약을 끊어버리면 나중에 더 힘들 수 있으니 한 두달은 꾸준히 먹기를 권했다. 


수면 시간도 영향을 끼치니 되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길 권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이 참에 아침형 인간이 되어 건강한 콩밥을 먹고 (우울증)약도 때 맞춰 규칙적으로 먹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시간 반 정도 병원에 머무는 사이 예약한 많은 환자들이 오고 가서 '정말 그냥 일반적인 병원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29,000원 정도를 결제하면서 이렇게 안 비쌀 줄 알았으면 진작 와볼껄. 정신병원은 몇십만원씩 드는 줄 알아서 엄두도 못냈던 나의 지난 날을 잠시 반성하기도 했다.


한달에 10-12만원 남짓으로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가 병원에 놓고온 짐을 떠올리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역시나 산만하고 잘 잊어버리는 것은 일상을 힘들게 만든다)


아 정말로 나아지면 좋겠다. 마음도 집중력도 생활습관도

산만하지 않고, 산같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이야기

#정신과 약 먹으니 생긴 변화 

중간에 힘들다고 눕지 않게 되었고, 밤에는 홀린듯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