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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Sep 03. 2021

항우울제를 먹고 생긴 변화

중간에 힘들다고 눕지 않게 되었고, 밤에는스르르 잠이 들었다.

산만하고 부주의한 성격 때문에 곤란함을 겪고 있다가 처음으로 가본 신경 정신과.

성인  ADHD 검사를 받으러 갔으나 의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애매하다고 일단은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ADHD일 가능성도 있지만, 단순하게 현재 상황 때문에 잠시 우울한 걸 수도 있다고.

ADHD가 피검사해서 다른 병 진단하듯 쉽게 진단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진단이 어렵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항우울제로도 쓰이고, ADHD 치료제로도  쓰이는 에드피온을 처방해주었다.


1-2주 먹다가 좋아졌다고 갑자기 약을 끊지 말고 2-3개월 정도는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약 봉지와 함께 집으로 갔다. 아침에 복용하는 약이라 그 날은 그냥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약을 먹었다.


약 복용 1일차

약을 먹기 위해 귀찮지만 현미밥과 미역국을 챙겨 먹었다. 왠지 건강하게 챙겨 먹고 일정한 시간에 약을 먹어야만 할 것 같아서. 나 혼자 먹겠다고 밥과 국을 챙기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최근 빈혈로 고생해서

하루 한 끼는 콩밥을 먹기로 했다. (빈혈이 생기면 무기력하고 우울해진다.)


아침밥을 먹고, 철분제와 엽산을 챙겨 먹고, 항우울제도 한 알 먹었다.

그 날은 이상하게 묘한 활기가 생겼다. 원래 집에서 일을 하다가 힘들면 자주 눕게 됐는데, 낮에 한 번도 눕지 않았다. 도서관 가서 책도 반납하고, 새로운 책도 빌리고, 도서관 간 김에 도서관에서 하는 요가 프로그램도 끊게 되었다. 두 달간 주 3회 착실하게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수영장도 알아보다가 근처 수영장에서 수영 프로그램도 수강 신청 중이길래 수영 초급반까지 대기로 신청했다.

근로 장려금이 들어와서 예전부터 관심 있던 회사 주식도 몇 주 사보았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자 낮에 활동을 많이 해서 인지 엄청 피곤해져서 스르르 잠에 들었다.


약 복용 2-3일차

그리고 2~3일은 그냥 약간은 멍했던 것 같다.

이게 빈혈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생리를 앞두고 PMS 증상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뭔가 약간 원동력이 생겨서 좀 더 활동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밤에는 기운이 없어서 일찍 눕게 되었다.


4-5일이 됐을 때는 좀 더 멍했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 텐션이 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근데 이건 생리할 날짜가 다가와서 생리거나, 빈혈 때문일 수도 있다.

약을 잠깐 먹는다고 확 좋아지진 않겠지만, 약을 먹기 위해 일어나고 건강하게 밥을 챙겨 먹으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조금은 수월해졌다. (나는 플라시보 효과가 큰 사람이라 그 때문일 수도 있다.)


6일이 됐을 때 다시 병원에 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어서 우산을 쓰고 갔다.


그 날은 처음 방문한 날과 달리 사람이 많았다. 커플로 온 사람들도 보였다. 둘이 같이 상담을 받으려는 걸까? 한 명이 진료 받으러 왔는데 따라 온 걸까? 괜한 궁금증이 들었다.


이제는 익숙하게 진료실에 들어갔고,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을 먹고 조금 활력이 생기고, 평소보다 더 활동한 탓에 밤에는 좀 더 일찍 자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멍한 느낌이 들었는데 원래 그런 건지도 물어봤다.


의사 선생님은 항우울제 150g으로 소량 처방했는데, 혹시 효과가 부족하면 300g으로 늘려줄 수도 있고, 약이 안 맞아서 멍한 느낌이 드는 거라면 다른 약으로 바꿔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은 조금 더 동일 용량 동일한 약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나는 도토리 모으듯 쌓아 놓은 궁금증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커피와 함께 복용해도 되는지?

약은 언제까지 먹는지?

생리 기간과 관계가 있을지?

ADHD가 맞다면 약을 먹으면 부주의함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는지?

약을 먹고 나서 강제로 차분해진 기분이 드는데 원래 그런 약인건지?


커피와 함께 마셔도 되며, 약은 일단 2-3달 정도는 먹어보는 걸 권하지만 일상 생활의 불편함이 없으면 그 전에 끊어도 된다고 했다.

생리와 약은 별다른 상관은 없을 거라고 했고, 혹시 이상 증상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다.


ADHD가 맞다면, 약을 먹고 산만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ADHD여도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없으면 약을 먹다가 끊을 수도 있다고.


처방해준 약은 기분 개선 효과가 있는 성분으로, 그 약을 먹고도 우울감이 느껴졌다면 필요하면 용량을 늘려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일단은 괜찮다고 했고,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다음 주 약속을 잡고 진료실을 나왔다.

진료비는 14500원. 첫 진료비보다 저렴했다.


신경 정신과에 가고, 약을 처방 받은 것은 지금의 상태를 개선하고 싶어서 였다.

약 외에도 내 기분을 낫게 해줄 다른 것을 생각했다.

커리어 워크숍도 신청해서 들어보고, 코로나 이후로 못 했던 독서 모임도 만들어보고, 월드컵 공원 산책 후 노을 보는 모임도 계획했다.


여전히 미루고 있는 것들이 있고, 할 일이 많을 때 뭐부터 하지? 고민이고 불안하다.


그래도 약을 먹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차리고, 약을 먹는다. 약에만 의지하는 사람이 될까 봐 다른 환경을 변화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게 약 때문인지 시원해진 날씨 때문인지 생리가 시작하고 PMS가 끝나서 인지는 모르겠다.


다리에 든 멍이나 손에 흐르는 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니까

 삐! ADHD입니다. 삐! 우울증입니다. 하고 약 먹고 해결! 이렇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래도 매일 밤 내일도 밥 잘 챙겨 먹고 약도 잘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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