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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Sep 10. 2021

항우울제-ADHD치료제를 먹고 생긴 일들

약을 부스터 삼아 환경을 변화시켜 생긴 일들

2주 정도 되니 매일 아침 약을 먹는게 익숙해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부스터의 느낌으로 밥을 먹거나, 간단하게 두유라도 마시고 에드피온 150g을 물과 함께 삼킨다. 그렇게 약 복용한지 14일이 되었다. 




약을 부스터 삼아 급발진으로 바꾼 생활 루틴들 


2번째 정신과 방문 후 한 주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뭐라도 해보자! 하다가 브레이크를 밟아 벌인 일들은 이렇다.

 매일 4시간 하는 파트타임도 지원했고, 도서관에서 하는 주 3회 요가와 주 1회 파워 스트레칭도 신청했다. 작년 이후로 못 하고 있던 독서 모임도 개설했다. 미약한 나의 근로장려금으로 소중하게 1주, 2주 사모은 작은 주식들도 매일 아침 확인해보고 있다. 브런치에 쓰고 싶던 글들도 생각해서 7가지 주제로 나눠서 연재를 계획했다. (기사 식당  메뉴 일절 같은 느낌으로) 


단기 일자리로 집 근처 문화센터의 방역사를 지원했다. 출입 명단을 확인하고, 온도 측정하고, 손소독과 QR코드를 안내하는 단순 업무였다. 주 5일 오전타임에 4시간 근무로 오후 시간을 활용해 내가 하려던 일도 할 수 있고, 고정수입도 생기니 좋을 것 같았다. 7월까지 했던 텀블벅 프로젝트가 끝나고 취업과 창업 사이에서 고민을 했고, 뭐든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12월까지 작지만 고정수입과 오전 루틴이 생긴다면 남은 시간을 활용해 해보고 싶던 일들을 실행해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연락이 왔고, 이번 주부터 출근하게 되었다. 

입구에 앉아 영혼 없는 눈동자로 QR 코드 안내와 온도 체크를 하는 대충 그런 모습을 생각하고 갔다. 코로나 시대에 새로 생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공기같은 일이지만 또 필요는 하기는 한. 약간 AI같기도 하고 개업한 집에 흔들리는 풍선 같기도 한 크게 에너지 소비 없이 할 수 있는 알바


예상과 달리 나의 근무처는 사무실이었다. 연습실을 대관해주는 문화센터라서 예약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 방문객은 많지 않았다.  사무실에 상주하며 QR코드와 온도를 확인하고, 스케쥴표를 보고 연습실로 안내해서 문을 열어주고 방역해주고, 끝나고 다시 살균 티슈로 테이블 등을 닦고 문을 닫아주는 업무였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사무실에 고정 책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업무 하고 남는 시간에는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와서 개인 일을 해도 된다고 했다. 오랫만에 주어진 사무실 책상과 의자가 반가웠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보는 게 얼마 만인지!)


텀블벅 프로젝트를 할 때는 늘 한 시간 거리씩 노트북과 에그를 챙겨 다니고, 이리저리 남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쳤다. 작업실에 와이파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집은 어떤가? (식탁 및 책상으로 쓰는) 테이블과 의자보다는 작고 불편했다. (일단 노트북을 펼치기 전에 전 날 올려놓은 잡동사니 먼저 치워야 했다. 아 이게 얼마나 귀찮은지)


그런데  넓고 쾌적한 책상에 와이파이와 쿠션 좋은 사무실 의자까지 주어진 것이었다! 

소독제를 채우고, 소독약을 뿌리고, 연습실 안내를 해주고, 서류에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하고, 환기시설을 키고 끄는 단순한 업무 중간중간 노트북을 펼치고 할 일을 했다.  2시에 퇴근하는 길에는 밝은 햇빛까지 쏟아졌다. (이것이 낮과 저녁이 있는 삶이구나!)


정신과 진료 3주차


상태가 한결 좋아진 것 같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3번 왔다고 어쩐지 익숙해진 병원 문을 열었다. 오늘은 두 명의 사람이 대기실에 있었다.

한 명은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는 걸 보니 첫 방문인 것 같았다. 속으로 '훗. 애송이로군.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는 여유까지 부리게 되었다. (머릿속 상상과 망상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도 ADHD 특징인지 다음 방문 때 물어봐야지)


익숙한 구석 쇼파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렸다. 

"2번 진료실로 오세요"


반가운 의사선생님의 얼굴.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눈은 늘 따뜻하고 상냥했다.

하루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고민을 들으면서 저런 눈동자를 유지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귀찮게 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핵심만 말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주간 잘 지내셨어요??"


"아 하루에 4시간씩 주오일 하는 단순 알바도 구했고요, 요가도 주 3회 끊고, 하고 싶던 독서모임도 개설했어요. 루틴이 생기니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도 산만하고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뭐부터 해야 할지 멍해져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루틴 만든건 너무 잘하셨어요. 우울증이나 성인ADHD의 경우 약보다 주변 환경이 중요한데 환경을 개선해서 좋아진 분들이 많아요. 약은 어떠셨나요?"


"이젠 멍하지는 않은 거 같고, 그냥 아침에 꾸준히 챙겨 먹고 있는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도 같고... 2-3달은 먹어봐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먹는 것을 추천드리고 있어요. 수면은 어떤가요?"

 

"요즘은 다시 늦게 자고 있어요. 자기 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다 보면 새벽에 잘 때가 많아요. 이건 제가 물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것까지 약 먹는다고 좋아지진 않겠죠."


"맞아요.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놓고 잔다거나 하는 걸 추천드려요. 그리고 원한다면 좀 더 효과가 센 약으로 300g으로 용량을 늘려서 처방해 줄 수 있어요"


"아직은 괜찮은 거 같아요.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에드피온에 대한 궁금증들_ 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술vs약 


나는 또 도토리 모으듯 한 주간 모아둔 질문들을 물어보았다. 


1. 매일 같은 시간에 먹는 게 좋나요?

2. 술을 마시면 약 효능에 영향을 주나요?

3. 다음 주에 백신 맞는데 같이 약 먹어도 상관 없을까요?


대답은 이러했다.

1. 꼭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혈중 약 농도(?)만 유지하면 된다.

2. 약 자체가 간에게 크게 무리를 주지는 않는 약이나, 알콜을 분해하는 것도 약을 소화하는 것도 간이 하는 것이니 술을 많이 먹으면 아무래도 간이 힘들겠죠? 

3. 백신 맞고 먹어도 될 거에요. 컨디션 조절만 잘 해주세요. 


"그러면 우리 다음에 언제 볼까요?"


2주 뒤에 봐도 될 것 같았지만, 브런치 소재를 위해(?) 한 주 뒤에 다시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1,3200원 나왔다. 

7일 치에 약을 함께 집에 가면서 죽어서도 '사후세계 상상과 현실', '불지옥을 겪고 느낀 3가지 변화' 이런 식으로 브런치에 연재하는 상상을 했다. (이런 과몰입과 팡인처럼 구는 모먼트도 ADHD일 거 같은데...)


소중한 간을 위해서 이 친구를 약에 쓸 것인가 술 분해 용도로 쓸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잘 배려해서 최소한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술을 자제하기로 했다. (이런 결심 후 어제도 맥주 2캔을 마셨다.)


병원을 갔다가 저녁에는 요가를 갔고, 코로나 때문인지 수강생이 2명만 참석해서 매우 단란한 수업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요가 수업이 즐거웠고,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물론 이후에 누수 업체 때문에 화가 난 집주인 할머니의 전화로 완벽한 하루가 깨지긴 했으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누수 사태도 나의 충동성 때문에 급발진으로 부른 누수 업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내 책임도 있어서 반성하면서 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다 보면 언제가는 나도 깨끗한 방과, 완벽한 스케줄 정리와 급발진 없는 차분한 성격을 가지게 될까?



생각보다 많은, 약 먹는 사람들 


ADHD 때문에 신경정신과에 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생각보다 주위에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DHD와 우울증 때문에 몇 년째 약을 먹고 있는데, 확실히 먹고 나서 좋아졌다는 사람, 

지인이 *ADD가 있어서 약을 먹고 있다는 사람(집중력이 좋아지긴 한다고 했다.)  항우울제를 3년째 복용 중인데 집중력과 무기력증, 우울감이 많이 나아졌다는 사람..


자신도 정신과와 ADHD, 우울증 약 등에 대해 궁금했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약을 먹고, ADHD 인지 살펴보고 나아지는 과정을 잘 기록해보려고 한다. (꼭 나아져야 해..)


*ADD는 '주의력 결핍증(Attention Deficit Disorder )'으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다.

ADD는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쉽게 산만해지며 과제나 활동을 끝까지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겼는다.

ADHD는 이보다 나아가 가만히 있지 못할 뿐더러 마치 모터가 달린 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동까지 동반된다. (참고 박봄 앓고 있는  ADD 무엇? ADHD와 다른점은...)





예고) ADHD는 MBTI와 관련이 있을까?

ENFP는 산만하고, 부주의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과몰입을 잘한다. (모든 enfp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최근에 강유미 채널에서 ENFP 성격묘사가 나왔는데 보면서 ADHD 증상과 비슷한데? 궁금해졌다.

실제로 MBTI와 ADHD과 관련이 있는지 다음 정신과 방문 때 물어봐야겠다. (의사 선생님한테 질문하는 재미로 병원 다니는 사람.. 나야 나. 써놓고 보니 제정신이 아닌 듯

참고 : [ASMR] 유미의 MBTI들- EN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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