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Oct 29. 2024

이 정도로 절망하면 농구 때려치워야지

서강대학교 ISOLATION 구지혜

ISOLATION(이하 아이솔레이션)은 2023년 5월 처음으로 여대부 대회에 등장했다. KUSF 클럽챔피언십 1, 2차 전국 예선 총 네 경기 모두 크게 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 1년 넘게 꾸준히 동아리를 유지했고, 2024년에도 같은 대회에 참가해 첫 승리를 일궈냈다.

초창기부터 팀을 이끌어 온 구지혜 선수는 언제나 ‘즐겁게 농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수많은 패배를 겪었을 때도, 연습경기에서 손가락이 부러져 한동안 쉬어야 했을 때도 절망하지 않았던 그와 대화해 보았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26살(99년생) 구지혜입니다.

등번호는 9번이고 포지션은 가드랑 포워드를 병행하고 있어요.


◈ 등번호 결정 배경에 대해 알려주세요!

제가 9지혜라서 9번입니다ㅎㅎ


◈ 지혜님은 언제 농구를 처음 시작하셨나요?

처음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제가 여중을 나왔는데 체육대회에서 농구 토너먼트를 했거든요. 그때 같은 학년 학생들이 다 같이 농구에 미쳐서 새벽 6시부터 학교에 나와서 훈련을 했었어요. 학교에 코트가 2개가 있었는데 반이 13개다 보니 코트 쟁탈전이 일어났거든요. 아침부터 가야지만 선점할 수 있어서 1년 동안 매일 새벽 농구를 했었어요.

제가 선수는 아니었는데 패스 연습이나 팀 훈련을 좀 도와줬었거든요. 근데 저희 반이 그때 1등을 했었어요. 토너먼트라서 계속 위로 올라가면서 경쟁자가 줄어드니까, 연습할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는 게 기억에 남아요.

사실 그때 이후로는 제가 그렇게 농구를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23년 2월에 <슬램덩크>가 개봉했는데 그걸 보고 농구가 너무 재밌었다는 게 떠오른 거예요. 자연스럽게 <가비지타임>도 보다가 다시 농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회 출전의 의미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기는 것은 즐겁다. 즐농을 추구한다고 답변한 인터뷰이들 역시 이기기 위해 노력하되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고 싶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만약 노력해도 이기지 못한다면, 이기는 것이 어렵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게임에서 어떻게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구지혜 선수의 답변은 시원시원했다.


◈ 지혜님의 첫 대회는 2023년 KUSF 클럽챔피언십 1차 전국예선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대회를 출전해야겠다는 결정을 하셨나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2023년 3월에 만들어진 동아리인데 그 대회가 5월에 있었잖아요. 룰도 모르는데 일단은 해보자는 분위기였어요. 살짝 미친 거죠. 저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가냐고 했었어요.

그때 경기 영상을 보시면 자유투 서는 법도 몰라서 심판 분들이 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해요. 나중에는 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서는 박스 아웃부터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셨어요. 선은 여기고, 이걸 엔드라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식으로 알려주신 기억이 나요.

출처 :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웃기게도 그렇게 우여곡절 대회를 마무리하면서 팀원끼리 좀 더 돈독해졌어요. 또 다음 대회에 나가면 이것보다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붙으면서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완패했거든요. 한 게임은 46대 3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점수차였는데, 그런데도 재미있었어요.


◈ 대회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 있을까요?

일단 1차 전국 예선은 준비를 거의 안 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2차 전국 예선은 좀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때 남자 농구부에서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임시 코치를 부탁했거든요. 기본기부터 시작해서 공격 전술을 배웠어요. 전력 분석 같은 경우에는 남자 농구부한테 물어보니까 인스타를 뒤져서 그 선수를 찾아낸다고 하더라고요. 상대팀 인스타를 보면서 누가 있는지 얼굴을 익히고 키를 좀 눈여겨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매니저 팀이랑 다른 애들이 브리핑을 해줬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PPT에 여기에 누가 있고 이 사람이 좀 잘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다 같이 모여서 허접하게 했는데 그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첫 번째로는 재밌다. 그다음으로는 큰일 났다 우리.

(패턴도 훔치셨나요?) 저희가 훔쳐도 그대로 따라 할 수가 없어서 훔치지는 않았어요. 그냥 저 사람이 좀 잘한다는 정도로 아는 상태였죠.

마인트 컨트롤은 어차피 저희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딱히 필요 없었어요. 대신 목표 점수는 30점 차 미만이다. 이런 식으로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잡았던 것 같아요.


◈ 대회를 치르면서 발생했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나요?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저희가 가장 큰 문제가 마땅히 벤치를 봐줄 사람이 없던 거였어요. 제대로 된 감독이 없으면 경기 판단도 늦춰지기도 하지만 멤버 체인지나 타임 아웃 같은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감독 겸 코치를 찾으려고 학교에서 강사하시는 분을 섭외했어요. 그런데 대회 일주일 전에 갑자기 안된다고 하셔서 난리가 났죠.

결국에는 저희 운동을 도와주던 안니카한테 감독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친구는 학교 학생이 아니라 한국어교육원 출신이라 출전이 안됐거든요. 다행히 그 친구가 선뜻 와줬고, 심지어 그 친구가 알려준 전술로 마지막에 9초를 남기고 역전승도 할 수 있었어요.


◈ 2024년 KUSF 전국예선에서 불과 몇 초를 남기고 극적인 역전승에 성공해 첫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2024년 KUSF 전국예선에서는 4개 팀이 한 조가 되는 조별 리그에서 세 경기를 치르게 된다. 1, 2경기 패배 후 마지막 3번째 경기가 끝나갈 때 아이솔레이션은  1점 뒤지는 상황이었다. 4쿼터 6분 50.6초.  상대의 오펜스 파울로 공격권이 넘어왔다. 남은 시간 9.4초. 이 최후의 9.4초 동안 아이솔레이션은 기적적으로 4득점을 해냈다. 창단 이후 첫 승리였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애들이 아니라서 수비를 위주로 연습을 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수비 진영은 되게 탄탄하다고 생각해요. 그중에 일본에서 오래 농구를 하던 에이스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좀 이용했어요.

저희가 마지막에 20초 정도 남았을 때 지고 있었거든요. 그때 감독을 봐준 안니카가 ‘이거 할 수 있겠다’고 말하더니 전술 하나를 지정해 줬어요. 4명은 자기 지역을 지키면서 수비를 하고,  저희 팀 에이스인 마츠리가 적극적으로 스틸을 노려서 만약 성공하면 단독 속공을 하는 전술이었는데, 그걸로 마지막 9초에 역전승을 하게 됐어요.


◈ 아이솔레이션은 그 이후로도 쿠스프 대회에 전부 출전했습니다. 코트에 서는 순간까지의 준비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일단 농구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아침마다 학교에 가서 농구를 했어요. 이렇다 할 만한 루틴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레이업 100개, 자유투 100개,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했던 것 같아요.

팀적으로는, KUSF 대회가 방학에 있다 보니 방학 중에 대회 나갈 친구들만 모아서 추가연습을 진행했어요. 학교 체육관 관장님께 빌어서 오전 2시간을 얻어냈거든요. 주마다 이틀씩 모여서 연습을 했는데 그게 되게 기억에 남아요.


◈ 대회를 나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크게 지게 되는 상황이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농구부를 만들고 처음 했던 교류전 상대가 중앙대였어요. 농구부를 만들었던 친구 중에 중앙대에서 농구하던 친구가 있어서 컨택이 잘 됐거든요. 그때 50대 10 정도 차이 났었는데, 그랬는데도 애들이 되게 재미있어했어요.

주된 마인드 컨트롤이 뭐냐고 묻는다면 절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뛰면 됐고, 재밌는 경험이었으면 됐다. 그런 식으로요.


◈ 게임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상대팀이나 상대 선수가 있었나요?

이전 KUSF에서 저희가 인하대랑 경기를 했거든요. 근데 거기 7번 선수분이 너무 잘해서 멋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인하대가 저희한테 프레스를 했던 게 너무 기억에 남아요.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프레스를 한 팀이 없었거든요. 저희 공격인데도 엔드 라인부터 프레스가 붙어서 공격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어요. 거의 시작도 못한 거죠.

그때는 정말 무서웠는데, 애들이 그 경기가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야 우리도 이거 할 수 있을 때까지 농구해 보자.’라고 이야기하면서 으샤으샤하기도 했어요.

(우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네요)

맞아요. 여기서 절망하면 농구 때려치워야 되니까.


◈ 쿠스프 이외에 나간 대회가 있다면, 관련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외부 대회는 아니고 서강대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노고 체전이라는 게 있어요. 저희가 노고산에 있는 학교라 노고체전인데, 학교 규모가 작다 보니 기본적으로 나가는 팀이 별로 없고 다 남자팀이에요.

저희가 여자부는 없냐고 문의를 했는데 없다고 해서 그냥 남자팀이랑 같이 뛰었는데 그때 109대 0으로 졌습니다. 근데 그러고 나니깐 나중에 50대 10 정도로 지면 이번에는 좀 잘한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근데 확실히 남자팀이랑 뛰어보니까 체력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남자들은 백코트도 빠른데 키도 너무 많이 차이 났어요. 상대편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패스를 하려고 하면 앞에 파란색 조끼밖에 안 보였어요.


◈ 지혜님께 대회 출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제대로 된 코트 규격에서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골대도 제대로 된 거고 그물도 제대로 있다는 점이요. 저희가 연습하는 야외 코트는 좀 작거든요.

전문적인 심판 분들이 심판도 봐주시니까 저희가 좀 더 명확한 룰을 체득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초도 정확하게 잘 재주시잖아요. 저희가 하면 얼렁뚱땅 넘어갈 때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공식 코트에서 공식적인 룰에 맞춰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한 기회인 것 같아요.

또 저희가 평소에는 뛰어볼 수 없는 다른 학교 선수들과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맨날 저희 주변 학교랑만 하다 보니 홍대, 이대, 중앙대 이 세 학교랑만 뛰어봤거든요.

새로운 사람들과 하다 보면 이런 스타일의 팀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ISOLATION의 탄생

◈ 아이솔레이션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팀의 탄생 배경을 알고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저희 팀은 2023년 3월에 만들어요. 슬램덩크를 본 친구들이 농구를 하고 싶어서 동아리를 만들게 된 거라고 들었는데, 처음에는 동호회 느낌으로 다 같이 모여서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4월에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 완전한 동아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조금 더 체계를 갖추면서 발전을 시켰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저희 학교가 순서대로 정동아리, 준동아리, 일반 소모임으로 나눠져 있는데 저희는 현재 준동아리예요. 정동아리가 되려면 몇몇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걸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 팀 훈련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시나요? 보통 어떤 식으로 연습을 진행하시나요?

저희는 우선 일주일에 두 번(월, 목)을 기본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어요. 임원진과 부원 스케줄에 맞춰서 학기마다 조금씩 바뀌기는 해요.

처음에는 출석 부르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에 몸풀기로 다섯 바퀴 정도 돌아요. 그다음에 레이업이나 패스 연습을 하면서 기본기를 다집니다. 마지막에는 30분 정도 작은 게임을 하는데 몇 명이 오느냐에 따라 3대 3이나 5대 5를 해요.

코치는 아직 고정적으로는 없습니다. 학교에서 농구 클래스를 하시는 강사님들께 몇 번 부탁을 드렸었고 그래서 한 달 정해주시긴 했어요. 주로 기본기를 가르쳐주셨는데 돈을 안 받고 해주신 거다 보니 스케줄이 맞지 않게 되면서 아쉽게 헤어지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안니카라는 외국인 유학생 친구가 들어왔는데, 청소년 국대 출신이었어요. 안니카한테 일반 부원이 아니라 코치 역할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흔쾌히 그 역할을 맡아줬어요. 루틴이나 기본적인 움직임 같은 걸 알려줬어요.

사실 저희 학교에는 체육학과가 없어서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없어요. 그래서 다 처음 하는 애들이라 기본기를 다지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쓴 것 같아요.

이제 그 친구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또 새로운 코치를 영입했습니다. 타마라라고, 농구를 많이 해본 외국인 유학생인데 현재 그 친구가 농구 연습을 도와주고 있어요.

정규 코치가 없다 보니 이렇게 6개월마다 한 번씩 급하게 부탁하는 것 같아요.


◈ 아이솔레이션은 어떻게 체육관을 구하고 있을까요?

원래 정동아리만 학교 체육관을 쓸 수 있고 그 외에는 빈 시간이 없어서 체육관 대관 자체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주로 쉐어잇 같은 앱에서 티켓팅을 해서 체육관을 구하고 있습니다. 회비로 체육관 비용을 충당하는데 2시간에 보통 14만 원에서 18만 원 사이더라고요. 저희는 주로 가까운 경기대를 많이 대여하는데 아무래도 비싸다 보니까 실내 체육관은 한 달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만 빌리고 있습니다.

보통은 학교 밖에 있는 야외 코트에서 훈련을 하고 있어요. 학교 체육실에 허가만 받으면 쓸 수 있어서 월요일이랑 목요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신청서를 내서 쓰고 있어요. 작년에는 우천 취소가 되게 많았어서 아쉬웠죠.


◈ 신생 동아리는 부원을 모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모집을 어떻게 준비했나요?

매번 동아리 거리제에서 부스를 내고 있습니다. 조그만 미니 골대에 골인하면 상품을 드리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이 방법으로 부원 모집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한 학기에 가입자가 40명쯤 나오고 있고, 실질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10명 안팎이에요.


◈ 운동 동아리는 그 특성상 ‘빡농(빡세게 농구)’과 ‘즐농(즐겁게 농구)’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솔레이션은 어느 쪽일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체육학과가 없어서 운동이라는 걸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기본적으로 즐농이 제1의 목적이라고 합의했어요. 아무래도 농구를 안 해본 친구들이라 처음에는 부딪히는 걸 꺼려하고 공 자체를 무서워했거든요. 그것부터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스트레스받지 말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못 해도 괜찮고 트레블링해도 괜찮으니 우선은 재밌게 하자는 거죠. 익숙하지 않아도 다 같이 참여하자고.

그러다 보니 빡농은 좀 어렵죠. 우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자체는 포기해야 해요. 사실 내내 졌어요. 교류전을 하면 대부분 큰 점수 차이로 지니까 애들이 멘탈이 나갈 때가 있어요. 저희는 그거에 대한 대응책으로 ‘즐농이 목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냥 좀 재밌게 농구를 하자, 학교 끝나고 다같이 놀아보자, 그게 제일 큰 목표입니다.


◈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팀적인 것도 좋고 개인적인 변화도 좋습니다.

제가 4월에 처음 팀에 들어갔을 때는 훈련 루틴이랄 게 전혀 없었어요. 정말 소모임 정도였는데 팀 친구들이랑 친해지면서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주장, 회장, 훈련부장 역할을 나누고 매니저부를 만들어서 예약이나 회비 관리를 하기 시작했죠. 작년 여름에는 회칙까지 만들어서 준동아리로 승격했다는 것도 큰 변화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변화는 뭐가 있을까요?)

일단 친구가 많아졌어요. 그리고 몸을 좀 잘 움직일 수 있게 됐고 체력도 많이 붙었어요. 웃긴 게, 근손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맨날 계단으로 걸어다니기 시작했어요. 일상적으로 사소하게 건강을 신경쓰기도 하고요.


◈ 운영진이 따로 있는 건지?

운영진이 있고 그 아래 매니저팀이 따로 있습니다.

매니저팀은 훈련은 안 하지만 농구부 활동은 같이 하고 싶은 애들을 뽑았어요. 훈련을 하려면 공이 여러 개 필요하잖아요. 사물함에서 공을 가져와주기도 하고 체육관 대관을 하거나 음료를 사오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와줘요. 또 교류전을 잡으려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런 업무들도 매니저팀과 나눠서 합니다.




『스틸 앤드 슛』


◈ 지혜님의 농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게 꼭 3D여야 하나요? (아니요) 그럼 송태섭이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송태섭이 농구를 하는 이유가 그냥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잖아요. 자신이 겪은 여러 어려움들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힘이 되었던 게 농구였던 것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되게 감명이 깊었어요.

또 제가 슬램덩크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중학교 때 느꼈던 재미를 떠올렸다는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지혜님의 플레이에도 영향이 있었을까요?)

하고 싶어서 드리블 연습을 엄청 많이 하기는 했어요. 제가 연습을 좀 무식하게 하는 편이라 30분 동안 계속 드리블만 칩니다. 팔이 아파도 일단 유튜브를 보면서 30분을 채우자는 마인드로 연습하는 것 같아요.


◈ 부상을 당한 적이 있으신가요?

작년 11월에 홍대 점프랑 교류전을 하다가 뼈가 부러진 적이 있어요. 넘어지면서 잘못짚었어요. 첫 번째 경기 1쿼터 1분을 뛰고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게 너무 아까운 거예요. 처음에는 그냥 잠깐 삐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버스를 타고 집을 가다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응급실에 갔어요. 가보니까 손가락 안쪽 관절 분쇄골절이라고, 수술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아침에 이 부분을 째고 수술을 했어요.

사실 아직도 옛날만큼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이런 걸 고민할 정도로 떨어질 실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처음 3일 동안은 입원을 하고, 퇴원한 이후에는 움직이지 말라고 핀을 꽂았거든요. 그렇게 6주 정도 지낸 다음에는 또 부목을 댄 상태로 지내다가 재활치료를 받았어요.

집중 치료는 한 두 달 정도 했는데 그게 정말 아팠어요. 6개월 정도 고정되어 있었던 손을 쥐었다 피어야 해야 하는데 근육이 굳어서 잘 안 펴지더라고요. 그래서 책으로 누르고 있기도 했어요.

(농구를 못해서 힘들지는 않았나요?) 제가 그때 한창 슬램덩크랑 가비지타임에 미쳐 있었거든요. 거기에도 무릎을 다친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래, 얘도 했는데 나는 떨어질 실력도 없는 거 그냥 재밌게 하면 된다. 빨리 농구할 생각으로 재활하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재활 선생님이 알고 보니까 WKBL(여자프로농구)의 청주 KB 스타즈에서 트레이너를 하신 분이었던 거예요. 그때 맨날 집에서 누워 있어야 하니까 심심해서 WKBL을 엄청 봤거든요. 그걸 보고 재활 선생님이랑 스몰토크를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사실 그 시간들이 너무 힘들지 않았어요.


◈ 농구가 자신의 인생에서 몇 퍼센트 정도 차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걸 어떻게 대답할까 친구에게 물어보니 120%라고 대답하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하이큐를 봤는데 등장인물 중 한 명이 120%를 달라는 대사를 했다고요.

진지하게 대답해 보자면, 퍼센트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제 인생에서 계속해서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 지혜님이 생각하는 농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일단 공을 바닥에 튕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배구 같은 건 바닥에 공이 닿으면 끝이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좀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농구는 경기 흐름도 빠르고 점수도 빨리 나니까 그런 게 너무 재미있어요. 또 하늘을 볼 수 있잖아요. 위를 봐야 한다는 게 너무 좋아요.

(드리블을 할 때 땅을 안 보시나 봐요) 앗, 땅도 보고요..ㅎㅎ


◈ 선호하는 플레이나 자신 있는 플레이가 있나요?

굳이 말하자면 디펜스는 조금 자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발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잘하는 친구를 수비하는 걸 연습하고 있거든요.

선호하는 플레이까지는 아니지만 요즘은 팀원이 슛을 잘 쏠 수 있게 타이밍 맞춰서 패스해주는 걸 연습하고 있습니다.


◈ 농구라는 측면에서 정말 공감되었던 창작물이 있을까요? (영화, 만화, 노래 가사 등)

공감은 아니고 괴리감을 느꼈던 장면은 있어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정우성이 신사에 올라가서 새로운 경험을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저희가 경기대 체육관에서 운동을 몇 번 했었는데 가는 길에 계단이 그 신사처럼 엄청 많아요. 저희가 거길 올라가면서 딱 그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 친구는 다 이겼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라고요. 그러면서 '우리한테도 새로운 경험을 주세요. 이제 좀 이길 수 있게!' 했었죠ㅋㅋㅋ


◈ 농구 창작물을 만드신 적이 있다고 했는데,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농구부를 다시 하기 전, 2021년에 쓴 소설이 있어요. 돌베개라는 출반사에서 출판이 된 건데,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라는 청소년 퀴어 로맨스 단편집이에요.

이 중에서 제가 쓴 건 <스틸 앤드 슛>이라는 제목의 단편인데, 여자 중학교에서 애들이 농구하는 내용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내용도 제가 무의식중에 농구했던 기억이 너무 재미있게 남아서 썼던 것 같아요. 내가 그때도 정말 농구가 좋았구나, 싶어요.

여자애들이 농구를 하면서 자신의 퀴어함을 마주해가는 과정들을 담았어요. 대체로 농구를 하는 내용인데 그 안에서 여자애들이 어떻게 운동을 하고 있는지, 어떤 협력과 다툼이 있는지, 여자들도 그런 역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서 썼던 소설이에요.

(어쩌다가 소설을 쓰게 되셨나요?) 제가 원래 무지개 책갈피라는 퀴어 문학 모임에서 활동을 오래 했어요. 그러다 돌베개라는 출판사 측에서 먼저 퀴어 소설집을 만들고 싶다고, 등단하지 않은 작가도 몇 명 뽑고 싶다고 해서 제가 들어가게 됐어요.


◈ 아이솔레이션에서 농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제가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라서, 2024 KUSF 예선전이 마지막 대회였어요. 그런데 제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충분히 뛰지 못했거든요. 컨디션 조절도 안 됐고 손가락도 이전보다 잘 안 움직여서 그게 많이 아쉬웠어요.

그런데 그런 아쉬움을 상회할 정도로 농구할 때가 재밌거든요. 날씨 좋은 날 오후 6시 정도에는 바람이 살살 불면서 노을이 지는 게 보여요. 그때 애들이랑 같이 농구를 하면서 놀던 순간들이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 앞으로 본인의 농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팀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우선 저는 농구를 계속 취미로 가져가고 싶어서 동호회를 들어갈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드리블을 좀 더 잘하고 싶어요. 아직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는 걸 잘 못하거든요.

아이솔레이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항상 1순위가 즐거운 농구였으면 좋겠고, 농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농구를 하고 싶은데 제약을 받는 사람이 없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여자 농구부를 따로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남자 농구부에서는 여자 선수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었거든요.

외국인이든, 유학생이어서 세 달만 하고 떠나야 하는 사람이든, 운동을 해본 적 없어서 실력이 없든, 젠더 정체성이 어떻든 간에 들어와서 재밌게 농구를 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구지혜 선수와의 인터뷰에서는 긍정 에너지가 넘쳐났다. 누군가에게 무참하게 패배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농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패배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구지혜 선수의 마인드가 아이솔레이션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즐거운 농구는 계속될 것이다.   

ISOLATION 인스타그램 : @isolation_sg




소소한 질문타임!


◈ 나만의 루틴이나 특별한 버릇이 있다면?

저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농구를 해요. 날씨나 조명, 온도, 습도에 따라 살짝씩 바뀌는데 요즘은 옛날 힙합을 들어요. 농구를 좀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노래 아시죠. 스트릿 농구하는 그런 느낌. 그걸 들으면서 농구를 하면 못 넣어도 신이 나더라고요.


◈ 농구를 한 다음에 간맥 vs 농구를 한 후 빨리 샤워하고 자기

전자. 제가 매일 팀에 간맥 요청을 하는데 다들 잘 안 해줘요. 농구 끝나고 마시는 맥주가 최고인데.


◈ 이거 하나는 내가 여대부 전체에서 가장 잘한다!

나이가 제일 많다 보니 팀 내에서 조직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잘하는 것 같아요. 애들이 물건을 까먹으면 챙겨주는 그런 존재예요.


◈ 상대를 앵클 브레이크 시킬 수 있다면 누굴 하고 싶은지?

이소윤 딱 대.


◈ 코드 위에서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포지션은? 가드 vs 포워드 vs 센터

포인트가드요. 송태섭이랑 진재유를 떠올리게 돼서요.

제가 드리블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그리고 특히 포인트가드는 활동량이 있으면서도 정신을 안 놓고 코트를 전반적으로 보면서 경기의 흐름을 읽어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좀 멋있는 것 같아요.


◈ 멋진 공격 vs 멋진 수비

후자. 수비는 생각보다 탄탄해야 하기 때문에요. 3점 슛 블록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 속공 3개 vs 3점 슛 2개

저는 속공 3개요. 달려서 골을  넣는 제 추구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만 개의 포물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