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agazine
매거진 제작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우선 매거진 컨셉에 적합한 인물을 찾고 인터뷰 일정을 정한다. 그다음 사전 인터뷰지를 제작한 후, 인터뷰를 진행하며 더 많은 질문과 대답을 이끌어낸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비문이나 오탈자를 검수한 다음 사진까지 적절한 곳에 넣고 나서야 하나의 매거진 글이 탄생한다. 아, 하나를 잊었다. 제목을 정하는 게 무엇보다 어렵다.
어쩌면 휘리릭 넘길 수도 있는 작업이지만 이것이 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 이상 글 하나하나에 시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작업은 사실 혼자서 진행하기는 힘들다.
몇 개의 매거진을 제작하면서 함께 고민해 주었던 친구가 있다. 문득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검수하는 이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자리를 빌려 궁금한 점을 전부 물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디터님을 도와 매거진을 만들고 있는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장민서입니다. 03년생이고 쿠타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원래는 27번이었는데 유니폼에 두 자리 숫자를 넣으니 좀 끼더라고요. 그래서 두 자리 숫자를 쓰려면 하나는 1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중 21이 균형감 있고 예뻐 보여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블랙잭도 숫자 21에 도달하는 게임이고,, 3x3 농구도 21점에 도달하면 게임이 끝나잖아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목표, 추구하는 바'를 상징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쿠스프 결승전 날이었어요. 모든 경기가 끝난 뒤, 하늘 언니가 매거진을 만들려고 하는데 함께 하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바로 수락했죠.
일단 이런 걸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고요, 언니가 이걸 같이 만들 사람으로 저를 골랐다는 사실에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언니가 농구에 대해 썼던 글을 보고 감동받은 적이 있거든요.
우선 인터뷰 대상자를 추천했는데 이게 되게 잘 반영이 됐어요. 사전 질문지를 같이 작성하고 언니가 인터뷰를 할 때 옆에서 기록을 정리하면서 속기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초안을 올리면 그걸 같이 교정하고 제목을 정하는 일들을 맡았습니다.
(이것저것 전부 다 한 거네요?) 보조 같은 느낌이죠.
우선 하늘 언니랑 같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일단 이건 해냈어요.
그리고 제가 대회나 교류전에서 다른 선수분들을 보면서 ‘이분은 어떻게 이렇게 농구를 잘할까’, ‘이분은 농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팀은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많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이런 게 궁금했던 적이 많은데 그거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어요. 또 저는 같은 여대부에서 뛰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에 그게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고요. 동아리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는지 기록으로 남겨 보고 싶었어요.
제 생각에는 그런 것들이 다 조금씩은 이뤄진 것 같아요.
아이솔레이션의 구지혜 선수의 대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농구를 하다 보면 부상이나 실력 부족으로 인해 좌절할 때도 있는데 구지혜 선수가 의연하게 즐기는 태도를 보여줬거든요. 특히 ‘이 정도로 절망하면 농구 때려치워야 한다’는 식으로 쿨하게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인터뷰 전반적으로는 스쿱 안성은 선수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성은 선수와 스쿱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깊은 인터뷰를 해주셨거든요.
(새로웠던 대답도 있을까요?)
처음 오퍼를 받았을 때 순서상으로는 뒤쪽이었지만 칸스 김사라 선수하고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준비하려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칸스를 상대로 경기를 해서 졌는데, 인터뷰를 할 때는 이긴 사람의 입장을 물어보는 거잖아요. 그래도 이런 감정 자체가 저희 매거진이 추구하는 독특한 정체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제목 짓는 건 다 어려웠습니다. 매번 하늘 언니랑 제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저는 어떤 단어의 느낌, 어조, 개수 같은 것에 조금 예민한 편이에요. 그리고 어절의 개수가 똑같거나 운율이 비슷한 것들도 다 자르고 앞선 제목과도 겹치지 않게 하다 보니 굉장히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그래도 제가 그렇게 ‘이건 좀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마다 하늘 언니가 '그럼 네가 대안을 제시해 봐' 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계속 내줘서 고마웠습니다.
일단 제가 보는 게 더 낫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디까지 인터뷰이가 말한 그대로의 토씨를 살릴 것인가, 그 느낌을 조정하는 게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저희 첫 편과 마지막 편을 보면 뉘앙스가 되게 달라요.
저는 항상 재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MOM(Man of the Match)을 너무 자주 받거나 주장인 분이 아닌 분들과도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중 한 분이 에폭시 김경민 선수였어요. 사실 저는 이 선수를 대회에서 봤을 때 일대일 수비가 되게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다음 타자가 김사라 선수였잖아요. 이 분이 ‘인상적인 사람’으로 김경민 선수를 뽑으면서 제가 생각한 점과 굉장히 유사한 포인트를 말씀하셨거든요.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일정이 서로 바쁘다 보니 시간을 투자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서 그게 조금 아쉽습니다.
그리고 아쉽다기보다는 ‘이랬으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이 있긴 해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섭외 단계, 사전 질문지 제작 단계에서 인터뷰이에 대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잡고 가거든요.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게 다 맞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이런 틀을 잡아도 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이미지를 좀 더 강하게 밀고 갔어야 했을지, 아니면 조금 약하게 잡았어야 했던 것인지 그런 궁금증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일단 그분들의 앞에 섰다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속기도 굉장히 빨라졌어요.
그리고 쿠타임(고려대학교 중앙여자농구동아리) 밖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저는 이 매거진에 한 동아리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잖아요. 때문에 제가 담당하는 건 거의 개인으로서의 영역인데 지금까지 제 농구는 팀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제 농구에서 이 팀을 빼면 거의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제 제가 교환 학생을 가서 잠시 팀을 떠나게 되었고, 돌아오면 졸업도 생각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이제부터 조금씩 팀 밖의 나의 농구를 생각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출발점이 되기에 굉장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직접 코트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기반으로도 많은 질문이 나왔거든요. 코트 안에 들어가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알 수 있는 정보들이 담겨 있다는 점이 저희 매거진의 의의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대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그때의 순간이 그대로 기록된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사전 질문지를 만들면서 은근히 나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생각해보기도 했었거든요. 그걸 정리해서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쿠타임이 아닌 농구하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싶었어요.
일단 저는 이 별명에 대해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ㅎㅎ
저는 기본적으로 농구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농구하시는 분들과 친해지고 안면을 트고 싶다는 생각도 항상 가지고 있고요. 너무 좋아하고 재밌어서 그런 건데 특별히 의식한 부분이 있다면, 저는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을 때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근데 저는 코트 위에서는 솔직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없고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라서 다른 식으로 팀에 조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남들이 안 가져올 만한 물건을 대회 날에 가져온다거나, 미리 상대팀을 분석한다거나, 대관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거나… 그런 쪽으로 시도해 보면서 농구도 많이 보고, 운영진도 맡게 된 것 같아요.
그냥 운영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얻게 된 것도 있고, 쿠스프나 다른 중계가 있는 대회들의 영상을 많이 챙겨봤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예전부터 코트에서 뛰는 순간만이 대회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짐을 싸는 것도 여행의 일부인 것처럼, 대회도 준비 과정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사실 뛰는 순간만이 대회라고 한다면 저에게 대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회를 즐기기 위해 미리미리 정보도 찾아보고 때로는 체육관 구조도 상상했던 것 같아요.
(뭔가 특별한 루트가 있는 게 아닌가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다른 팀 인스타를 많이 들어가 보는 것 같아요. 무슨 요일에 농구를 하는지도 살펴봐야지 교류전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일단 운영진으로서 누군가 물어봤을 때 답변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요. 그리고 그만큼 제가 팀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원래 제가 가지고 있는 안달복달하는 성향이 운영진을 하면서 좋게 작용할 때도 있거든요. 다만 이제는 조금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단 제가 너무 전지훈련을 가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겨울에 스키장 가자고 할 때 항상 저는 전지훈련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아서 2023년 가을부터 장소를 찾았습니다.
일단 체육관을 하루 종일 쓸 수 있어야 하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멀면 안 되는데 이게 진짜 쉽지 않았어요. 진짜 별별 장소에 다 전화하고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너무 대단한데요?)
그래서 실제로 갔을 때도 저는 걱정도 많이 하고 안달복달했었어요. 쓰레기 배출은 어떻게 할지도 생각하고… 그래도 그렇게 동떨어진 체육관에서 우리끼리 하루에 9시간씩이나 마음껏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첫 쿠스프를 생각해 보면 상대팀은 다 모르는 분들이고, 너무 잘하시니까 나랑 같은 대학생이 맞나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저 팀 이런 면에서 정말 잘한다, 저분은 이렇게 플레이를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좀 더 보이는 게 많아진 것 같아요.
(커진 규모를 실감하시는지?)
네. 보통 대회는 신청 수가 모자라서 사라지기도 하는데 쿠스프는 ‘와, 되게 많은 팀이 있구나.’ 싶을 정도 많은 팀이 출전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 볼 때마다 농구를 하고 싶어서 사람을 모으고, 대회를 나가자며 신청서를 쓰고, 유니폼을 맞추는 여학생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저와 마찬가지로 농구에 대한 약간의 갈증과 결핍, 그리고 간절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체 여자 농구의 활성화는 좀 거시적인 것 같고, 대회에 나가고 싶은 개인이 어떻게 농구를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고 말씀드려 보자면, 저는 ‘사람, 장소, 코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일단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모여야 하고, 또 상대방이 있어야 하니까요. 대회에서는 우리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보니 그런 차원에서 농구를 하고자 하는 서로 다른 팀끼리의 교류나, 정보의 빠른 공유가 필요하거든요.
정리하자면 우리 편과 상대편을 가리지 않는 농구인들의 모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은 그게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
어느 정도 구축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대부 주장방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은 사람, 장소, 코칭 다 충족하지 못한 팀도 많지만요.
처음 농구를 해본 건 9살 때였어요. 제가 키가 안 커서 엄마가 청소년 수련관에 농구 수업을 끊어줬는데, 사실 농구라고 하기 어렵고 그냥 농구공을 잡아봤다 정도예요. 공을 링까지 올릴 수도 없는 근력 상태였거든요. 그때 이후로는 학교 체육 시간 같은 때 하다 말다 했는데, 항상 막연히 농구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수능이 끝나고 ‘내가 뭘 하고 싶지?’를 생각하다 농구 생각이 나서 대학 입학 후에 바로 동아리를 찾아서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022년도였어요.
특별히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제 한 번의 선택이 게임을 망칠 정도로 무겁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매일 잔잔하게 계속 후회하는 거죠. 이때 던질 걸, 좀 더 똑바로 할걸..
굳이 후회하는 순간을 꼽아보자면 뛸 수 있는데도 뛰지 않았던 순간이요. 3대 3에서 저 말고 다른 3명이 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뛰지 않은 적이 있거든요. 그 선택 한 번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선택들이 누적되면서 지금의 조금 자신감 없는 내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 앞으로는 이제 자신감 있게 행동하실 건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때도 다음번엔 자신감을 가져야지 생각했지만 사람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니까요.
저는 진짜 항상 잔잔하게 행복했어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인 것처럼요. 여섯 잎 클로버 정도의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을 생각해 보자면, 제가 이전에 3대 3 대회에서 결승전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준결승전에서 안될 거라고 생각한 순간에 점수 차를 극복해서 이겼거든요. 하루종일 땡볕 아래 있느라 완전 탈진 수준이었는데 버저가 울린 순간 본능적으로 막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평소에 코트에서 크게 말하는 것도 잘 못하는데 말이에요.
저는 농구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 적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농구를 하고 싶은데 남학생들한테 끼워달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던 때나, 대학에 와서 농구 동아리를 하고 싶은데 아직 팀을 찾지 못했을 때요. 막 침대에서 울고 그랬어요.
지금은 엄밀히 말하면 농구 실력의 결핍인 거지만 농구를 하지 못하는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초보자로서 처음 게임을 뛰기 시작했던 분들은 다 이해를 하실 텐데, 저는 게임을 망치지 않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선호를 개발할 일이 없었어요. 사고를 안 치는 데 집중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뭘 해도 자신이 없는데 굳이 따지자면 백코트 각 재는 걸 잘하는 것 같습니다. 잘한다기보다는 익숙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2023, 24년 여름에 쿠스프 준비하면서 제 몸하고 정신의 80%가 농구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게 지금은 조금 줄어들고 있는데 그게 너무 슬퍼요. 농구를 못 해도 농구를 생각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한 50%가 되는 것 같아요. 그 밑으로 내려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대회 때 짐을 바리바리 싸는 것이 루틴이라면 루틴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게스트 갈 때는 동아리에서 맞춘 옷을 안 입습니다. 일단 제가 너무 못해서 동아리 이미지가 저로 박히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하고 스몰토크를 하고 싶거든요. ‘혹시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어볼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대회 날에 먹는 서브웨이 레시피가 인상 깊었습니다. 교환 때 서브웨이를 가본다면 꼭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제 계획의 핵심은 농구를 계속해야 된다예요.
옛날에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승’을 ‘농구’로 바꿔 보니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확 이해가 되더라고요. 내가 어떤 농구를 하든 간에, 정말 못하더라도 일단 농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언젠가 제 삶에 변화가 오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저의 농구를 놓지 않고 계속 찾아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동호회를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요.
저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매거진 읽었다고 답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마다 너무 행복했어요. 그리고 하나 올라오면 거기 눌러지는 하트 개수 이런 것도 보면서 되게 좋아해요. 모쪼록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장민서 선수가 여자 농구에 가진 진정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단순히 농구를 즐기는 것을 넘어, 함께 뛰는 동료들과 상대 선수들을 존중하며, 언제나 팀에 보탬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본인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수많은 성장이 언젠가 그에게도 선명히 다가오기 바라며, 그리고 팀 밖의 나를 마주하기 위한 그의 여정에 언제나 농구가 함께하기를 바라며, 농구인 장민서와의 인터뷰를 마친다.
대관. 손이 빠르다기보다는 한 팀의 대관을 담당한 시간이 길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는 것에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한다기보다는 보부상 기질이 좀 있어요.
속공. 개인적으로 속공 마무리 능력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그런 능력을 장착해서 수비를 달고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건 이전에 아빠가 저에게 ‘지금 네가 현실적으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슬램덩크>의 경태 포지션’이라고 했었어요. 생각해 보면 경태가 저랑 비슷한 점이 되게 많아요. 맨날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 보면서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는 친구잖아요.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경태는 항상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지만 저는 잠재적으로 제가 코트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본다는 점인 것 같아요.
아무나 한 번만 해보고 싶습니다! 꼭 한 명만 꼽아보자면, 제 앞에 계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지금은 졸업하신 썬 김예은 선수. 제가 이전에 3대 3 대회에 나갔을 때 크게 지고 있었거든요. 힘도 다 빠진 상태였는데 몇십 초 정도 남았을 때 예은 님이 막 웃으면서 페인트존에서 자리를 잡고 ‘공 한 번만, 포스트업 한 번만’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머리로는 파울로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포스트업 당하기도 전에 1초 만에 뚫렸어요. 그때의 기억이 사실 나쁘게 남아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순간 자체가 되게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많은 팁도 주시고, 추억도 선물해 주시고, 여러모로 존경하는 김예은 선수께 언젠가 포스트업을 쳐보고 싶습니다.
다 재밌었지만 칸스 김사라 선수의 솔직하고 다채로운 답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타교분이랑 만났다는 점 때문인지 김선영 선수와의 인터뷰도 긴장되면서 설레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일단 제가 하고 싶은 많은 분들에 대해 의견이 잘 수렴되어서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한 분을 꼽자면, 저희 매거진을 읽고 재밌다고 해주시고 인터뷰 상대랑 연결할 때 많은 도움 주신 숙명여대 배숙캣볼 정혜원 선수 정말 감사드리고 계기가 된다면 인터뷰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X. 제가 싫다고 했어도 했겠죠. 다만 지금의 형태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X. 조금만 더 미뤄주세요, 싶었습니다. 저도 바빴거든요.
일단 전지훈련은 O입니다. 동아리는 X예요. 그래도 빈자리를 느껴줬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시작이 미약하다고, 내가 멈추리라 생각했는가" 제목 후보를 챗 GPT한테 물어봤더니 이런 식이더라고요. 결국 도움이 안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