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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럼버스 May 01. 2019

블록체인 가장 큰 문제는 근시안적 탐욕

왜 블록체인 생태계는 뿌리내리지 않나

암호화폐 시세가 2017년 초부터 가파르게 올랐으니 대중에 알려진 지 2년 정도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블록체인은 기존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용자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한편,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와 뛰어난 보안성을 갖춘 일종의 경제·통화 시스템입니다.


수많은 장점에도 아직까지 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여러 원인과 분석이 있을 수 있겠죠. 


저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근시안적 '탐욕'과 거기에서 비롯된 '정체'가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경제 생태계는 어떤 원리로 돌아가나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욕망으로 작동하는 경제체제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누군가 돈을 써야 경기가 순환합니다. 누군가의 지출이 다른 사람의 소득이 되고, 이 소득은 다시 지출로 이어집니다.


경기가 확장돼 돈을 쓰는 사람들이 늘면 누군가의 소득도 덩달아 늘어납니다. 지출과 소득이 함께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러다 어느 한 경제 주체가 소비를 줄이면 소득은 함께 감소하며 경기는 축소되게 됩니다.


국내총생산은 모든 경제주체들의 '총소득'과 '총지출', '총 분배'가 같습니다. 이른바 '삼면등가의 법칙'이라고 부르죠. 


https://news.joins.com/article/21480766


기업은 돈을 벌고, 가계는 경제활동으로 발생한 소득을 가사를 꾸리기 위해 지출합니다. 기업과 가계가 내는 세금으로 정부는 재정을 꾸려 나라살림에 씁니다. 국가경제 생태계의 평면도입니다. 


경제순환모형도. 출처=빅토리아 님 블로그



이 생태계가 작동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얼까요. 각 경제주체가 가진 '욕망'입니다. 


기업은 더 많은 제품을 팔아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욕망.
가계는 생계유지를 위해 근로를 통한 소득과 지출하려는 욕망.
정부는 국방·재정 등 행정적 수단을 통해 이 생태계가 안전하게 돌아가게끔 만들려는 욕망.



이 세 욕구 중 하나라도 꺼진다면 경제 생태계의 엔진은 꺼지고 말 것입니다.




◎달러 체제 구축한 미국의 큰 그림


경제발전론을 보면 한국·일본 등 현대 신흥공업국들은 대개 정부 지출을 통해 초기 경제 성장을 일궜습니다. 사실 전후 미국의 원조가 큰 역할을 했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과 미국의 원조 자금을 통해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했습니다. 여기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 등에 팔아 자본력을 축적했죠. 


전후 마셜플랜을 홍보한 미국의 포스터.  출처=위키피디아


당시 미국은 마샬플랜을 통해 우방국의 경제 성장을 지원하는 한편 거대한 소비시장으로서 해외 물품을 사들임으로써 달러의 글로벌화를 이뤘습니다. 이런 외부 효과가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 성장도 요원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욕구는 유럽과 아시아 우방국들의 경제를 성장시킴으로써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인정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1944년 출범했습니다. 금 1온스를 35달러에 고정시킨 금태환 정책의 달러의 가치의 신뢰를 보장해줬죠. 미 달러화가 특별한 통화가 된 시점입니다.



1944년 7월 브래튼우즈에서 열린 총회. 출처=World Bank

  

카지노가 잘 되려면 하우스가 고객에게 돈을 잃어줘야 하는 법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개척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해당 지역 인프라 구축으로 경제를 종속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할 때는 거시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며, 거기에는 상당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 탓한다고 답 안 나와 


블록체인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생태계 주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에 필요한 인프라와 자원을 공급하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다수의 블록체인 업계 종사자들은 정부의 규제를 탓하며 가이드라인을 정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래야 블록체인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왜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 생각은 않고 가만히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또 탈중앙화를 주장하면서 왜 정부에게 역할을 강요하는지도. 


정부는 현재 암호화폐에 대해 별다른 입장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법과 세제를 거스르는 일만 아니라면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입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 달까' 눈치만 


블록체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주변 분들을 보면 적지 않은 양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수백억 원 이상 보유하고 계신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 대부분은 블록체인 생태계 활성화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가진 비트코인은 렛저에 넣어둔 채 시세가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탈중앙화라는 이상향을 꿈꾸지만 자기 지갑의 돈을 생태계 구축에 쓸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욕망'과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죠. 당장 돈을 벌 목적으로 블록체인 분야에 뛰어든 경우는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에 일절 기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시스템은 당장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아니라, 투명한 거래와 탈중앙화 된 작은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서죠. 기업의 마음가짐으로 정부의 역할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위에 제시한 경제 생태계에 블록체인 생태계를 투영해보죠. 






■ 학원에서...


전국 수학학원 연합회가 '달란트'라는 코인을 유통한다고 가정하죠. 수학학원 연합회에 소속된 학원 수는 1만 개, 이곳에 다니는 학생 수는 총 100만 명입니다. 연합회는 학원의 모든 수입과 지출에 달란트만을 쓰기로 합니다. 


학원비를 원화로 결제할 때보다 싸게 해 주면 많은 원생들이 달란트를 구입할 것입니다. 달란트는 거래소를 통해 원화를 주고 구입해야 합니다.


대신 연합회는 학원에 오래 다녔거나, 성적이 오르는 등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한 학생에게는 활동량 가중치에 따라 '데나리온'이라는 암호화폐를 드롭합니다. 데나리온은 달란트로 바꿔 학원비를 내거나 교재·학용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데나리온의 가치는 35데나리온=1달란트에 고정돼 있습니다. 


또 연합회는 협회 차원으로 교재·학용품을 대량으로 공동 구매합니다. 납품 대금은 데나리온으로 합니다.


한 번에 많은 교재·용품을 사들이기 때문에 업체들에도 이 생태계에 뛰어들죠. 물품 지급 대금으로 받은 데나리온은 거래소에서 달란트나 원화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전국의 수학 학원 수나 학생 수는 급격히 늘거나 줄지 않습니다. 사교육 관련 정책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전국 단위 매출도 꾸준할 것입니다. 달란트 시세는 크게 출렁이지 않을 것입니다.


데나리온은 활동량에 따라 드롭되기 때문에 시세 변동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연합회가 달란트로 매입해 소각해 가치를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작지만 투명하고 학원생들이 활동량에 따라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구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낮습니다. 


학원 연합회로서는 시스템 구축에 많은 돈이 들고 학원비를 깎아줘야 하기 때문에 부가가치는 창출하지 않는, 비용만 많이 들어가는 일일 수 있습니다.


다만 매출액에 따라 2% 안팎인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아낄 수 있습니다. 이 수수료를 아껴 원생들에게 혜택을 돌려주고 학원의 수입을 늘릴 수 있습니다. 

물론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상쇄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야겠죠.







■ 언론사가...

더 시스템을 단순화해 보죠. 블록체인 전문 언론사 '코인인프레스'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대다수 언론사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먹고 삽니다. 독자들의 관심은 곧 광고·협찬 집행으로 이어지죠.


그런데 코인인프레스가 광고비를 단지 법인 통장에 꽂고 100% 지분을 가진 오너에게 배당을 100% 해버리면, 오너만 좋을 뿐 별다른 사회적 가치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발상을 전환해 광고주가 100만 원의 광고를 집행하면, 코인인프레스는 해당 광고주에게 100만 개의 '프레스코인'을 지급합니다. 광고주는 프레스코인을 활용해 코인인프레스가 운영하는 쇼핑몰에 입점, 내지는 물품을 판매하거나, 제품 홍보에 쓸 수 있습니다. 제품 가격 할인 등 마케팅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레스코인의 가격은 원화의 100분의 1 정도로 가치가 낮겠죠. 


코인인프레스는 또 게시판에 글을 많이 쓰거나 좋은 댓글을 달거나, 방문 빈도가 높은 독자들에게 프레스코인을 지급합니다. 이 독자들은 프레스코인을 사용해 코인인프레스가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싸게 사거나 광고를 차단하는 등 용도로 쓸 수 있습니다. 


코인인프레스가 자신이 차지할 광고비를 대가로 광고주와 독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돌릴 수 있습니다.


구조만 잘 짠다면 어떤 쇼핑몰보다도 저렴하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플랫폼으로 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장 코인인프레스가 가져갈 수 있는 돈은 크지 않겠지만, 강력한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는 셈이죠. 





블록체인 생태계의 욕망은 '부가가치 창출'이 아닌 '투명성 제고와 비용 절감, 생태계 참여자들의 혜택(행복) 증대'입니다.


앞서 말했듯 탈중앙화 시스템은 철학적으로는 코뮨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깔려 있습니다. 크고 작은 생태계가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주체들의 혜택을 최대한 고르게 나누는 것이죠.


https://www.sarangbang.or.kr/oreum/70479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며 오랜 시간 수명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적지 않은 기사·칼럼들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책임론을 지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 비판론자들이 어떤 가치와 생태계를 구축할지 고민하고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죠.


탈중앙화 생태계는 1. 다수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공의 가치를 발굴해야 하며 2. 누군가 총대를 매야합니다.


많은 사람이 동참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죠. 여러 암호화폐 투자자 내지는 이를 선동하는 사람들의 근시안적 탐욕이 블록체인 분야의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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