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8년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투자금을 끌어모은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실생활에 쓸 수 있는 코인을 만들겠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성공한 사례는 '0',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암호화폐를 통한 탄소배출권 거래를 가능하게끔 하겠단 업체가 여럿 나왔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투자금을 모아 이를 통해 탄소배출권 거래소를 만들겠다는 것은 사실 허황된 얘기나 다름 없습니다.
기존 탄소배출권 거래소들은 자연발생적으로 필요에 따라 생긴 곳들이죠. 신규 업체가 암호화폐를 매개로 이 장벽을 뚫고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기업들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았고요.
보상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업체들도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를 성사시키려면 병원·헬스장 등 기존 업체들을 모두 자기 암호화폐 플랫폼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기존 업체들로선 굳이 동참할 필요가 없는 일이죠.
만에 하나 성공적인 서비스가 나오더라도 암호화폐 시세가 급변하면 유통이 어렵기 때문에 암호화폐 업체들로서는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기존 대형 ICT 업체들이 추진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페이스북·텔레그램 등이 먼저 치고 나왔습니다. 자체 개발한 암호화폐로 자기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꽤 유의미한 움직임이며, 성공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의 광고 수입과 지출을 모두 페이스북 코인으로 하고, 사용자에게 리워드를 제공한다면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류의 '토큰이코노미'를 지향하는 업체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티켓몬스터죠. 정확히는 티켓몬스터가 만든 것은 아니고, 티몬 창업주인 신현성 의장이 별도로 추진 중인 프로젝트입니다. '테라'라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해 티켓몬스터에서 발생하는 상거래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식입니다.
테라 증명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루나'라는 변동 코인을 지급합니다. 사용자는 루나를 통해 돈을 벌 수도, 할인이나 수수료를 아낄 수도 있습니다.
루나를 상장해 유통되는 자금을 기반으로 리버리지를 끌어올려 테라를 추가 발행하거나 매입, 소각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원화에 연동시킵니다.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 7일물로 시중금리를 조정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물론 테라의 가치를 지키는 중에 마진 거래 등 금융 사이드에서의 통제가 어려운 움직임과, 미묘한 시세의 시차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은 불분명 합니다. 다만 매크로 관점에서 암호화폐 지급·결제 생태계를 꾸린 것은 인상적이었으며, 페이퍼 상으로는 흠 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이미 테라 프로젝트의 이커머스 파트너로 티몬 뿐만 아니라 배달의민족·큐텐·캐러셀·티키 등 동남아시아의 굵직한 사업자들을 동참시켰습니다. 고객 기반은 4500만 명, 연 거래액은 250억 달러(약 30조원)에 달합니다.
일단 사이즈업을 일구었는데, 중장기적으로 이들을 테라 생태계에 락인시킴으로써 공고한 생태계가 꾸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투자자들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테라 프로젝트는 3200만 달러(약 38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받았고, 바이낸스 랩·후오비 캐피탈·두나무 등 글로벌 거래소들이 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이에 신현성 의장을 만나 봤습니다. 신 의장님과 함께 티몬을 공동 창업한 한 대표님은 "신 의장님은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었다"고까지 말씀하시더군요. 그렇다면 테라의 사업 구조가 현실성 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펼쳐나갈지,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어봤습니다.
Q. 테라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A. 그간 신용카드 포인트·OK캐시백·적립금·상품권 등은 서로 호환이 안 됐는데, 이런 것들을 묶어줄 스테이블 코인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처럼 많은 사용자와 거래처를 통해 보편화를 지향하고 있다. 대중들이 쓸모 있게 사용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Q. 테라의 가치를 어떻게 원화에 고정시킬 수 있나.
A. 테라는 이커머스에 붙여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코인이다. 결제 수수료는 '루나'라는 코인으로 이뤄지며, 검증 참여자에게 결제수수료를 나눠준다. 테라의 결제 규모가 커질 수록 수수료가 늘어나 검증자들의 수입도 커진다. 테라의 가치를 조정해야 할 때 루나를 담보로 코인 발행을 늘리든가 매입, 소각해서 가치를 유지한다.
Q. 발행이나 소각만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게 가능한가.
A. 주식의 경우 목표 시세를 정해 두고 발행량을 조정하지 않지만, 테라는 목표 가격에 도달할 때까지 매입 혹은 소각을 계속한다. 필요하다면 테라의 마지막 수량 하나까지도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
Q. 매입, 소각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A. 비자나 마스터카드의 경우 수익의 50배 정도의 규모가 증권시장에서 거래된다. 같은 비율로 따지면 루나에 500억원의 수수료가 생기면 2조5000억원 규모의 거래가 발생한다. 이를 담보로 테라의 시세를 조정할 것이다. 테라를 매입해야 할 때 루나를 추가 발행해 테라를 사들여 소각한다. 루나 발행량을 늘리면 루나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이커머스의 결제수수료를 조금 더 올려줘 루나 보유자들의 현금흐름을 높여준다.
Q. 테라를 비자·마스터카드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A. 테라는 비자·마스터카드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할 거라 50배 수준 규모로 거래될 것으로 본다. 비자·마스터카드만큼 가맹점이 많지 않고 역사가 짧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수수료율을 높여주는 식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Q. 테라·루나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수익 배분 구조는.
A. 거래 수수료는 전액 지급한다. 테라 통화량 증대로 나오는 시뇨리지(화폐 주조 차익) 효과는 이커머스 할인과 루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예상보다 루나의 가치가 더 떨어지면 시뇨리지 분배를 더 많이 하고, 가치가 탄탄하면 이커머스 쪽에 더 해주는 식이다. 이 프로세스에는 인간이 일절 개입하지 않고, 모두 알고리즘으로 이뤄진다. 테라를 에어드랍하는 등의 인위적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수요에 반응하는 통화 정책으로 보면 된다.
Q.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유인책은.
A. 티켓몬스터·야놀자·배달의민족 등의 할인 정책이다. 상품을 고른 뒤 결제페이지에 가면 카카오페이나 토스 옆에 테라페이가 붙는 식이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나눠주는 결제수단은 테라가 유일하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2~3% 내던 신용카드 수수료를 0.5%로 낮출 수 있다. 루나 트레이더는 지갑에 수수료가 쌓이는데, 이를 거래소에 팔아도 되고, 포인트로 전환해 이커머스에 쓸 수 있다.
Q. 고객의 결제 관행을 바꿀만큼의 혜택인가.
A. 고객들은 할인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러나 마케팅 예산은 유한하기 때문에 경쟁사보다 더 많은 프로모션을 걸기 어렵다. 그러나 테라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면 이커머스의 할인에 5~7%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장기지속적인 서비스다.
Q. PG·VAN사의 수익을 활용하는 셈인데 반발이 있지 않나.
A. 테라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 반발할 것이다. 금융에 불필요한 단계를 줄이고 싶다. 사실 이커머스에서 비자·마스터카드에 수수료를 낼 필요는 없다.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현재 테라 프로젝트에 동참한 파트너들의 총 결제 규모는 연 30조원에 달하며 앞으로 협력사가 더 늘어날 것이다.
Q. 가맹점·파트너 확대 전략은.
A. 테라의 지향점은 비자·마스터카드 이상이다. 자체 모델로 검증한 결과 보수적 제품가격 5% 할인, 결제수수료 0.5%로 인하가 가능하다. 현실에서도 이 수치가 나온다면 1년 안에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올 거다. 테라를 안 쓰면 각 유통 사업자들의 사업이 도태될 정도로 매력이 있다. 쿠팡·위메이크프라이스와도 손 잡을 생각이 있다. 모든 국민이 쓰는 디지털 화폐가 되는 게 목표다.
Q. 블록체인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A. 800억원에 달하는 PG수수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큰 매력을 느꼈다. 창업자로서는 아직 답이 안 나온 문제를 하나씩 검증해 가는 것이 재미있고 설렌다. 특히 블록체인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트렌드를 주도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미래 기술이다. 비트코인 붐으로 대중들의 관심도 높고 개발자들도 많이 뛰어들었다.
Q. 블록체인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리스크 요인 아닌가.
A. 정리된 게 없으니 부담이 된다. 투자나 암호화폐공개(ICO)는 훨씬 더 많은 규제와 엄격한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 다만 투자 사기 문제로 안 좋은 기술이라는 인식은 잘못됐다. 기술 부문의 경우 아직 손에 잡히는 게 없기 때문에 정부도 언제, 무엇을, 어떻게 규제할지 고민하는 것 같다. 테라가 크게 성공하면 규제의 첫 단추가 될지도 모른다. 당국과 협의하며 규제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한국에게 블록체인은 좋은 기회다.
Q. STO는 성공 가능성 있나.
A. STO도 모호하다. 미국에서는 레귤레이션D나 레귤레이션S를 통해 프라이빗 증권을 SEC에 등록해 발행할 수 있다. 한국에 회사가 있는 경우 미국에 자회사를 만들어 미국 법상에 SEC에 등록해서 증권을 발행한 뒤에 미국 주식을 한국으로 가져와 거래하거나 팔면 불법은 아니다. STO에도 구멍은 많다. 암호화폐의 모든 문제가 펀드레이징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빨리 법이 정의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기나 엉뚱한 투자설명회도 많아 테라도 피해 보는 측면이 있다.
A. 한국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100조원이 넘으며, 누군가 독식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 흑자로 돌아서는 시점은 한 회사가 큰 자금을 모아 인수·합병(M&A)에 나섬으로써 시장 통합이 이뤄질 때다. 시점을 예상하긴 어렵지만 실제 이커머스 업체 간 M&A가 나타날 것이다.
Q. VC들이 한국에 많이 헤드쿼터를 만드는데, 한국 시장이 서비스 확장성에 매력있는 거 아닌가.
A. 블록체인은 기회가 있다고 보지만, 테크 측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회사들은 동남아에 관심이 많다. 싱가포르에 헤드쿼터를 세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아직까지는 검증된 O2O 비즈니스도 없다. 동남아시아로 확장하는 서비스 사례가 나오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Q. 테라가 블록체인 생태계를 바꿀 수 있을까.
A. 블록체인 시장은 손에 잡히는 제품과 서비스가 없어 오해를 받아왔다.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년 반동안 연구·개발(R&D)에 몰두했다. 준비가 돼 있으며, 기대해도 좋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손에 잡히는 제품·서비스가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없다. 불필요한 금융 비용을 낮춤으로써 한국의 여러 이커머스 업체와 소상공인에게 수혜를 줄 수 있고,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금융 부문의 혁신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