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럼버스 Sep 10. 2019

세상은 금융·자본의 뜻대로 움직인다

돈은 어떻게 역사를 썼나, 신간 <금융의 역사> 서평 


화폐와 금융은 권력과 역사입니다.



역사란 승리자에 의한 기록입니다. 역사적으로 승리는 막강한 군사력이나 민심을 얻기보다는 돈을 쥔 사람이 차지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습니다



화폐는 일차원적으로는 사물 간, 인간 간 교환을 성립시키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힘을 이용한 돈은 국가는 물론 인간, 시간까지 교환할 수 있고, 금융을 통해 이 힘을 더욱 키울 수 있습니다.



미국의 힘의 원천은 달러입니다. 미국이 개발한 어떤 제품보다도 뛰어나며 대체 불가능합니다. 이 달러의 힘으로 세계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미국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는 왕권을 쥐기 위해 뛰는 영웅이 아니라 브라보스란 나라의 '강철은행'으로 그려집니다. 왕좌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강철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려 고개를 숙이죠.


      


미드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자유도시 브라보스.



금융의 무서운 점 두 가지는 실체가 불분명한 플랫폼이라는 점과 의지를 갖고 기획한 대로 모든 일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특정 개인과 세력에 집중되지만, 돈은 공기처럼 어느 누군가 독점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금의 유통을 쥐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뿐이죠.



또 영국의 대항해시대와 제1차 산업혁명도 근본적으로는 돈의 힘으로 가능해졌듯, 금융이 의지를 가지면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요즘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탈이나 손정의 회장의 움직임에서도 이런 돈의 특징을 읽을 수 있죠.



최근 <금융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인류의 발전을 써온 금융의 기술과 특징 등을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사례 중심으로 기술한 책입니다.



영란은행. 출처=플리커



기술과 사회, 권력 등은 모두 금융의 밑그림대로 흘러가는간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멀게 느껴지는 사실을 현실감 있게 일깨워줍니다.



고대 이집트와 중세 유럽의 와닿지 않는 수많은 고유명사와 전문용어, 여기에 700쪽이 넘는 분량에 읽기는 적지 않게 부담되는 책입니다. 그러나 경제 생태계란 큰 틀을 이해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종합 서평입니다. 











                                 

달러화는 미국 최고의 발명품이자 수출품이다. 달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며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국채 발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저축을 사올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제2 차 세계대전 승리로 전 세계의 채권국이 된 미국이 마셜플랜과 자유무역 질서를 통해 세계를 달러화 체제에 편입시킴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카지노가 흥하려면 하우스가 초반엔 고객에게 돈을 잃어줘야 한다. 이 점을 정확히 꿰뚫어 본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통해 세계 곳곳에 달러화 생태계를 깊게 뿌리내렸다.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 등은 경제적 풍요를 맛봤고, 거부한 북한·이란·쿠바 등은 갈라파고스가 되고 말았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을 파산으로 몰아넣을 뻔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당시 위기는 미국 금융회사들의 서브프라임모기지와 신용부도스와프(CDS)·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파생상품 부실에서 비롯됐다.



자산의 담보 비율을 초과하는 부채를 일으켰고, 신용 리스크 및 가격 변동 헷징 조차 상품화했다. 금융 팽창에는 분명 한도가 존재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미국은 이 위기를 새로운 부채를 발행해 극복했다. 미래 세입의 담보 가치를 초과해 무제한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으로 경제를 위기에서 벗어났다. 미국은 그래도 괜찮다. 미국의 부채를 세계로 팔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정부 지출이 세수를 넘으면 안 된다는 주류 경제학의 철칙은 깨졌다. 화폐를 계속 발행해도 된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이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이론적으로 과도한 인플레이션만 없다면 무제한 양적완화의 리스크는 '0'이다.



욕망의 치부를 덮으려 단행된 금융의 무제한 팽창이 정보통신기술(ICT)·인공지능(AI) 혁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 또한 아이러니다. 후대 역사가들은 전후 세계의 금융 시스템을 '달러 시뇨리지^미국 의지'란 평가를 내릴지도 모른다.

               


무제한 양적완화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벤 버냉키 전 연준(Fed) 의장. 출처=플리커




이렇듯 당대 금융·화폐 시스템은 국제 경제 질서, 사회상 등을 반영한다. 또 이 시스템은 새로운 패권과 규칙을 만들고, 정치권력을 흔들기도 한다.



막무가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월가 앞에선 얌전해지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에게는 꼼짝 못 했다.



신간 <금융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인류의 5000년 역사에서 나타난 도시 문명의 발달과 수학·과학의 고도화, 화폐·교역을 매개로 한 문명 간 교류에 대해 얘기한다.



모든 사회·문화 현상과 권력은 물적 토대 위에 세워진다. 이 물적 토대는 어떤 방식으로 쌓였고, 어떤 역사적 변동을 불렀는지 심층 분석했다.



저자인 미 예일대 경영 대학원 윌리엄 N. 괴츠만 교수는 금융의 발전과 역사, 새 시스템의 등장 배경과 후과 등을 면밀히 분석했다. 예일대 국제금융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괴츠만 교수는 예일대 미술사학·고고학 전공자이자 주식·채권·뮤추얼펀드·헤지펀드·부동산·미술 투자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색적 경력의 소유자다.



금융은 경제·사회·문화 등 세상 전반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어 설명하기 어렵고, 시말을 따지고 분석하기 어려운 분야다. 괴츠만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금융시스템의 등장과 발전 배경 등을 쉽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괴츠만 교수. 출쳐=예일대




잘 통제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금융시스템은 국가나 체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이 체제가 극단으로 치우쳐 탐욕에 휩싸이면 새로운 룰로 대체되는 역사적 반복이 나타났다. 예컨대 영국의 중앙은행 영란은행은 17세기 영국이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세워졌다. 



영국군은 1690년 비치곶 전투에서 프랑스에 참패한 뒤 해군력 증강에 나섰다. 영국은 연 8% 이자율로 120만 파운드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 문제는 당시 영국 윌리엄 3세 왕가의 신용도가 낮아 돈을 빌리지 못했다.



이에 민간 은행이 정부의 자금 조달을 독점적으로 조달하겠다고 자처했다. 그들은 놀랍게도 12일만에 120만 파운드를 끌어왔다. 당시 영국 은행은 상업대출과 환어음을 발행해 거액을 조달할 수 있었다.



영국은 이렇게 모은 자금 중 절반을 해군력 증강에 썼다. 해군력 증강은 18~19세기 영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특히 18세기 영국 은행들의 기획 금융은 산업혁명을 견인하기도 했다. 전국적 영업망을 구축해 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돈을 대거나, 광산·대포·잠수기계·종이 등을 만드는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며 중상주의의 한 축의 역할을 했다.



기술주 투자 거품 등 부작용은 있었지만, 당시 영국 금융은 단순 자금 중개기능에서 벗어나 적극적 투자 주체로 나섰다. 상호보험 등 리스크 관리 기법도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자본증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출처=위키피디아



                                        

금융의 역사 흔적은 고대 그리스에도 깊게 새겨져 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비잔티움·마살리아 등 항구도시에서 중간 상인들을 통해 모험대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험대차는 대금업자들을 중심으로 대금업과 외환투기업으로 발전했고, 이들은 해상무역뿐만 아니라 내륙 경제에까지 진출했다. 



다만 금융시스템에 눈을 뜬 아테네에 황금만능주의가 번지며 용병이 등장하게 됐다. 국가 체제 발전에 대한 욕구는 떨어지고 도시는 슬럼화되며, 아테네는 결국 로마 철기군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혁신가가 나타나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곳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그다음 모방꾼이 나타나 혁신가를 따라 하고, 그 뒤 욕심에 눈먼 바보가 등장해 혁신을 망쳐버린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통찰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효한 이야기다.



“자본주의는 외부 공격이 아니라 자신의 운동 법칙 때문에 안에서 ‘녹아서 사라진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탐욕’에 대한 통찰도 일맥상통한다.


                




이 책의 원제는 <Money Changes Everything>(돈이 모든 것을 바꾼다)이다. 돈과 돈이 만든 시스템이 사회를 바꾸며, 정치·경제 등은 이 변화에 적응한다는 뜻이다. 돈이란 권력이다.



이 흐름은 실체적 힘을 가지며, 다수의 믿음이 있을 때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다. 2000년 전 부동산담보대출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도 담보자산과 레버리지에 대한 고대인과 현대인의 공통된 합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융의 거대한 힘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할 때, 최근 등장한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분산원장 개념만으로 금융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고 느껴진다.



이 책은 글자 크기가 작고, 용어도 어려우며,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등 불친절하다. 분량은 720쪽에 달하지만 군더더기도 없고 밀도가 높다. 책을 펼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초반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의미를 되새기며 읽다 보면 역사책을 읽는 듯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딱딱한 금융 얘기가 뼈대를 이루지만, 딱딱 들어맞는 역사적 사실의 인과관계와 사료의 가치 해설 등을 적절히 버무려 간이 알맞다.



그렇다고 이 책은 단지 역사서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은 언제, 누가 잡느냐에 따라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나를 해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금융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고 붕괴하는지 역사적 사건으로 보여줌으로써 현재 금융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미국 증시는 2009년 이후 10년 동안 4배 올랐다. 미·중 무역분쟁은 격화되고 있으며, 미국 장단기 금리차가 역전되는 등 2018년 초부터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잠잠하던 금융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이때 금융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207868




                                           

작가의 이전글 위워크 기업가치, 거품 걷어내고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