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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l 25. 2022

이 남자가 위기에 대처하는 법

와이프 길들이기

여행을 극도로 싫어하는 여자를 데리고 남자는 어떻게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그건 그만의 비법이 있었다. 첫째로는 둘만 있는 시간을 피하기, 둘째로 말 귀담아듣지 않기, 세 번째로는 거짓말로 둘러대기가 되겠다.


 남편에게 거짓 없이 가식 없이 원액 100% 의 짜증을 보여주는 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나도 너무 한다는 걸 알기에 자제하는 편이다. 내가 지나친 짜증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변명하자면 남편의 비법 두 번째에 해당한다. 내가 어떤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욕설을 내뱉어도 남편은 반응이 없다. 그날도 남편은 남편의 방법대로 대처했다.


32시간의 버스 이동

에콰도르 쿠엥카에서 페루 와라즈까지 버스로 32시간이 걸린다. 좀 더 편한 방법으로는 비행기가 있다.

남편이 어떻게 갈래? 하고 나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당연히 비행기를 외쳤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자는 나의 의견은 무시당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동하기로 한 날은 생리 예정일이었다. 원래 예민한 성격이지만 생리라도 오는 날엔 마치 '짜증 프리패스 티켓'이라도 주어진 것처럼 마음껏 히스테리를 부렸다.


'버스 타고 가기만 해! 내 짜증 다 받을 준비하고 티켓 끊어라!'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으면 넌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거야. 하고 선전포고를 했는데, 남편은 이에 굴하지 않고 버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도 살고자 했는지 32시간을 같이 갈 부부를 섭외했다. 

내 계획에서 벗어났다. 편하고 안전하게 비행기를 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엔 내 짜증에 지쳐서라도 아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하고 싶었는데 일행이 생겨서 괴롭히는데 한계가 생겼다. 남편이 초강수를 둔 것이다. 분했다. 반칙 아닌가? 


32시간의 이동도 물론 힘들었지만 속에서 열이 뻗쳐 오르는 이유는 비행기 타고 편하게 가고 싶다는 내 의견을 무시하고 내 짜증을 다 받는 걸 선택해 놓고 비겁하게 동행을 끌여들여 내가 짜증도 못 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계속된 이동에 에어컨도 나오지도 않는 버스 안에서 역시 참았던 게이지가 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져버려 엉엉 울어댔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미안해하길 바라며 나는 속으로 '나는 나약하고 연약한 여자야. 나는 이런 거 못하니까 다음엔 그러지 말아 줘. 네가 잘 못했잖아. 얼른 미안함을 느껴'라는 마음을 담아 서럽게 울었는데 남편은 카메라를 꺼내 내가 히스테리 부리는 걸 영상에 담을 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짜증 속에 빠져있을까. 마치 그만하자! 관두자!라는 말을 듣기 위한 게임처럼 최선을 다해서 무너지는 척했다. 버틸 수 있는데 잘할 수 있는데 편하게 모든 게 다 쉽고 편했으면 해서 내 마음대로 조물딱 조물딱 하고 싶어서 그랬다.

네가 나한테 백기를 들어 내가 이기는 엔딩을 만들고 싶었다. 




옆사람이 짜증과 불만이 많으면 괜히 기분 좋던 상대방도 기분이 나빠진다. 즐거움이 전염되듯 불만도 그러하다. 그래서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때의 나는 짜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3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짜증 가득했던 내 옆에 있어줬던 호돌이오나부부에게 미안함과 감사를 전하다. 

미안해, 이제야 너희 부부가 나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 나약한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미안함도, 반성도 없는 남편.
모든 게 내 계획에서 빗나갔다. 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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