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을 겪다.
다음 여행지로 아제르바이잔으로 간다는 말을 했을 때 조지아에서 만났던 선교사 부부가 말했었다.
'추리닝같은 거 입고 다니지 말고 옷차림에 신경 쓰고 말끔하게 입고 다니세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가출한 멘탈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를 함께 부르는 말 코카서스 3국.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서는 석유부자, 이슬람 종교라는 것 외엔 딱히 알고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코카서스 3국이니... 아르메니아 사람도 조지아 사람도 너무 따뜻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에 옆 나라 아제르바이잔도 그러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내가 생각한 따뜻하고 정 많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은 도착한 다음 날 KFC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고 있다가 알았다. 7-8명쯤 되어 보이는 10대 여자 무리가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큰 소리로 웃어대며 몇몇은 눈을 찢고 있었다. 그들을 등지고 있는 남편에게 뒤돌아서 좀 보라고 말했지만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은 어린애들 장난치는 걸 뭐하로 반응하냐며 햄버거만 우걱우걱 먹어댔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이는 소녀들을 뒤로하고 애써 햄버거를 먹었다. 그러다 화장실에서 그 어린 소녀들을 만났다. 손을 씻는 내 뒤로 모여 '칭챙총' 거리며 비웃는데 처음 겪는 인종차별이 너무 황당해 얼이 빠졌다. 얼빠진 내가 한 말은 고작 'You have no manners'가 전부였다. 내가 한 말을 알아듣긴 했을까? 그냥 'Fuck You'를 외칠 것을 그랬다. 이후 햄버거 가게를 빠져나오는데도 끝까지 '잭키찬~', '칭챙총'을 외쳤다. 그런 철없는 행동을 말리는 어른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는 모르는 나만 겪은 인종차별
그때부터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져서 일까? 길을 걷는 젊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느꼈다. 조롱이 섞인 웃음소리와 눈빛.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보며 웃고 떠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10대 미만으로 보이는 꼬마들도, 어쩌면 20대.. 인종차별이라는 이 교양 없는 행위의 강도는 어릴수록 강도가 거셌다. 어린 남자 무리가 내 앞으로 장난스럽게 웃으며 침을 뱉고 지나갈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여보, 봤어? 내 쪽으로 침 뱉었어!!'
'침이 그냥 나왔겠지, 아님 가래가 나왔거나~'
같은 거리를 걷는데, 우린 다른 거리를 걷고 있다. 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마음에 담아두는데 남편은 어딜 보는지 어디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 보고 느끼는 게 없었다.
솔직히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이라 어깨가 으쓱였던 적이 많았다. 방탄 팬이라며 사진 찍고 싶어 하고 한국 드라마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며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그들에게 화도 나고 서럽고 억울했다. 자기 전 인종차별을 피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다음 날 그 방법으로 선글라스를 끼며 거리를 걸었지만 어제 당한 일들 때문에 난 위축되어 찌그러진 깡통처럼 고개를 푹 떨구고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땅만 보고 다녔다.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난 도대체 누구랑 같이 여행한 걸까?
진짜 내가 예민한 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보고 이상하다는 남편이 나는 이상하다. 분명 인종차별이었는데 '그게 다 관심이야~' , '신기한가 보지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들로 넘어가는 남편은 이 국가에 나처럼 실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객인 우리에게 음식값을 뻥튀기해서 받은 식당, 거스름돈을 일부러 적게 주던 마트 점원. '현대', '삼성', 'LG'는 아는데 '한국'은 잘 모르는 사람들... 내가 다시 여기 오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
솔직히 말해봐.
이 나라, 인종차별한다는 정보 알았어 몰랐어?
이후, 코소보라는 나라에서 아제르바이잔에서 겪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종차별을 겪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릴 동물원 원숭이 보듯 쳐다보며 웃으며 동영상을 찍었던 곳.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 거기서도 남편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무덤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