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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Oct 30. 2020

소비 요정이 달라졌어요.

쇼핑을  사랑한 가난한 여행자


배낭여행자들은 여행하면서 얼마나 아낄까?
다른 배낭여행자들에 비해서 나는 얼마나 자주 쇼핑을 할까?


나는 물질만능주의다. 사는 걸 좋아하고 수집하는 걸 좋아한다. 필요하진 않지만 언젠가 한 번은 쓸 것 같은 무언가를 산다는 게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먹는 것에 쓰는 돈은 아깝고 무언가로 남는 것에 대한 돈은 아깝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참는다고 참고 적게 산다고 적게 샀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심 끝에 소비를 결정하며 여행했다. 옷을 너무 안 사주는 남편 때문에 늘 궁금했다. 다른 부부들은 어떨까? 다들 이런 문제로 싸울까?  


스타벅스 '시티컵'


"나라마다 50만 원씩 쇼핑하게 해 줄게"


남편이 세계여행을 가는 조건으로 이 달달한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여행길에 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과연 나는 여행하면서 정말 나라마다 50만 원 정도를 쇼핑했을까? 나의 체감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여행하며 만난 다른 부부보다 쇼핑을 자주 하고 많은 기념품을 사고 다니는 것은 분명했다.


D-DAY. 여행 첫날부터 첫 장소부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 이유는 이왕 세계여행을 하는데 무엇인가 컬렉션을 수집하고 싶었던 욕구인데 그게 바로 별다방의 '시티컵'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컵을 수집하지는 않았지만 나라마다 아니 도시마다 시티컵을 모으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컸다.

배낭여행자에겐 말도 안 되는 무겁고 깨지기 쉬운 기념품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모아 집에 진열해 놓는다면 쓸모는 없겠지만 왠지 뿌듯함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남편이 '좋아'라고 했다면 난 수십 개의 머그컵을 샀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는 단호하게 '안돼'를 외쳤다. 또 안된다면 안 하는 수긍 잘하는 성격 탓에 시티컵을 사지 않고 여행했지만 이 도시는 어떤 시티컵이 있는지 보러 꼭 별다방에 들렸고 사진으로라도 기념했다. 그렇게라도 정말 사고 싶다는 걸 표현하면 언젠가는 남편이 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을 담아 행동했던 건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효과는 없었다.




쇼핑천국 안도라


배낭은 작고 살 수 있는 물건은 한정되어 있는 장기 배낭여행. 남편은 내가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살까 말까 망설이는 걸 싫어했다. 시간을 질질 끌기 일수였던 터라 남편은 가게가 보이면 다른 쪽으로 가거나 내 손을 바싹 끌어 잡아 가게로 가지 못하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안목이 상실되었다. 물건을 보는 눈이 저 발밑 아래 수준에 있어 누더기를 보아도 예뻐 보였고 구멍이 4개 뚫려 있으면 다 옷으로 보였다. 그렇게 보는 안목이 떨어지니 옷가게에 가서도 모든 옷이 예뻐 보여 쉽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지 못했다. 장기여행으로 얼굴은 까매지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사는 옷이 전부 우중충한 색의 옷이었다.  그렇게 잘못된 옷을 사고 사진이 못 나오니 버리고 다시 사진에 예쁜 게 나오기 위해 또다시 옷을 사고... 쓸데없는 소비의 무한반복이 여행 중에도 종종? 가끔 일어났다.


그래도 배낭이 무거워 늘 누르고 참고 있던 내 쇼핑 욕구가 리스카를 타고 도착한 면세 천국 안도라에 와서 쾌속질주를 하고 말았다.

술, 초콜릿, 담배 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망구 아울렛을 발견하고서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옷을 입어보고 거울을 보고 살까 말까 고민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짐이 되는 걸 알기에 사지 않고 무사히 잘 빠져나왔다. 그렇게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돌아와 캠핑장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캠핑장에서 우연히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그분들은 여행의 주선자와 그분의 아들 그리고 주선자의 친구 두 분이 함께 오셨었는데 친구 두 분은 여행의 주선자가 쇼핑하는 곳을 데려가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와 같았다. 쇼핑하는 곳에 데려가 달라고 하는 두 분의 성화에 ‘여보 어떻게 해?’라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서 말랑말랑한 느낌이 올라왔다.


두 분을 아울렛에 데려다 드리고 나도 어제 입어봤던 옷들을 다시 입어보았다. 잘 어울린다고 사라고 하셨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사지 못하고 입어만 보고 다시 가게를 나왔다. 어쩌면 남편에게 칭찬을 싶어 참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이 되어 안도라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여보, 안 사도 괜찮겠어?’

‘응...’


당장 입을 수도 없는 옷일 테고 까매진 나랑은 어울리지 않을 거고 일단 옷이 무겁잖아. 더군다나 터키에서 갈색 니트를 살 때 이미 이제 쇼핑은 안 한다고 약속을 했잖아. 옷을 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되새김질하며 안도라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찬스. 절호의 기회. 지금을 놓치면 바보. 안 사는 게 손해. 사면 개이득. 순간 머릿속을 거치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보, 차 돌려.. 나 사야겠어’


결국 참지 못하고 안도라로 돌아와 쇼핑을 했다. 남편도 고삐가 풀려 배낭여행자임을 잊고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옷을 구매했다. 우린 소비욕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길 수 없는 강한 적이었다.


한 동안 말 그대로 뽕을 뽑기 위해 잘 입고 다녔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 그 옷은 없다. 있음에도 없다. 옷장에 없었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있다. 내가 며칠을 고심해서 고민 끝에 선택한 코트, 바지, 티셔츠, 외투들... 그 예뻤던 옷이 이상하게도 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가 색감부터가 한국스럽지 않다. 그 색상과 디자인은 그저 딱 그 나라에서만 예쁠 옷이었다.



여행을 하며 참 많은 쇼핑을 했다. 참는다고 참았지만 그래도 많이도 샀다. 신발만 해도 5번은 갈아치웠으니 나는 가난한 여행을 하면서도 호화로운 여행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 내가 놀란 것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옷과 신발이었다. 심지어 똑같은 디자인에 색상만 다른 바바리코트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색깔만 다른 니트와 티셔츠들이 존재한다. 평생 옷을 사지 않아도 될 만큼의 막대한 양의 옷이다. 쌓는다면 거대한 왕릉이 될 것 같은 옷무덤...

다행히 나는 유럽을 거쳐 남미까지 여행하면서 소비와 돈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내가 원해서 배운 것도 아니다. 여행 중 스스로 몸에 베여 버린 돈과 소비에 대한 개념. 한국에 돌아온 지 220일째. 나는 아직 어떠한 옷과 신발도 사지 않고 잘 살아나가는 중이다.


지나가다 눈에 들어오는 예쁜 옷가게들과 접할 수밖에 없는 핸드폰의 광고들로 눈에서 안 보고 살 수는 없지만 그냥 딱 거기까지. 이미 옷으로 가득 찬 내 서랍장에는 더 이상의 새 옷이 들어올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여행자 마인드를 벗지 못했다. 돈 천원이 무섭고 싼 게 비지떡임을 알아도 싼 것을 찾는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다음으로 미룬다. 언제까지 이 알뜰함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바란다. 최대한 늦게 느리게 벗어지기를... 여행에서 얻은 이 큰 교훈이 우리의 부부가 살아가며 소비하는 데 있어서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해주길.


 

허세, 허영심 같은 허구의 것을 쫓는다면
 결국 허탈하고 허망하고 허무함만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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