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는 비행기를 타고 외갓집이 있는 광주에 당일로 다녀오셨다. 그날 저녁 잘 다녀오셨냐고 여쭤보니, 하루 전에 수속해서 보내드린 모바일 탑승권에 문제가 있어서 항공사 카운터에가서 내려가서 재발급을 받으셨다고 했다. “앞에 있는 직원한테 도와달라고 했는데 귀찮아하면서 짜증을 내더라고. 그래도 우리 딸 같아서 피곤한가보다~ 하고 아무말 못했지." 웃으며 말하는 엄마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나 속상하던지. 그리고 콕콕 찔리는 나의 양심.
김포 공항에는 이제 수속 카운터가 없다. 카운터는 있지만 대부분의 항공사가 수하물 접수 전용으로만 운영하고있다. 탑승 수속은 모바일 체크인 혹은 공항 내에 놓여진 키오스크로 진행하도록 안내한다. 만약 탑승 수속을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받으려면 별도 수수료를 받는 항공사도 있다. 생체 등록을 해두면 신분증 없이 손바닥만 찍고 보안 검색장에 들어가서 셀프 보딩으로 탑승한다. 머지 않아 사람 한 명 대면하지 않고 발권부터 항공기 탑승까지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와! 세상 참 좋아졌다 외치며 나는 짐싸서 쫒겨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직 이런 변화에 당황스러운 중노년 고객들을 매일 마주한다. '카운터에 직원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기계로 직접 탑승권을 출력해야한다니. 핸드폰 번호부터 이메일까지 입력할 건 어찌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딸아들이 보내 준 것은 여정표이고 탑승권이 아니라고 한다! 직원말로는 내가 모바일 탑승권을 발급 받았다고 하는데 그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착잡해진 고객은 핸드폰 속 최근의 문자부터 카카오톡까지 전부 쭉 훑어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한다. 아니면, “됐고. 나 이런거 못하니까 아가씨가 그냥 해 줘!”
다 엄마라고 생각해 봐.
‘기꺼이’ 도움을 주라고 받은 남의 돈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늘 반복되는 같은 상황에 지친 표정이 드러나고 만다. ‘도대체 왜?’라는 물음이 떠나질 않고 눈 앞의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감정의 파도에 쉽게도 몸을 맡겨버린다. 어느 날 하루 종일 휩쓸려 짜증가득 퇴근한 나에게 엄마는 말해줬었다.
"우리는 공항만 가도 너무 설레는데. 너 같은 예쁜 직원이 있으면 말 한마디 더 걸어보고 싶기도 해. 예쁘다고도 말해주고 싶어. 엄마도 늘 모르는게 많아. 힘들겠지만 조금만 다정하게 말해줘. 엄마라고 생각해 봐.”
이번 엄마의 광주 여행을 들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언젠가 어디에서 조금 느리고 어려워하는 우리 엄마가 한 걸음 뒤에 주저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꺼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 변화 속에서 스스로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애써 씁쓸하게 웃으며 그런일이 있었다고 말해주지 않길 바란다. 어느 자식도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나부터 조금 더 이해하고, 한번 더 다정하겠다고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