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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솨니 Feb 22. 2023

가난한 마음

퇴사자의 자괴감 극복기

‘모 대기업으로 이직했어’


아 그래? 잘 됐네. 하고 전화를 끊는 남편을 바라보는 내 미간에는 주름이 깊게 잡혀있었다. 입은 삐죽. 아주버님이 일주일 뒤 본인의 결혼식의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전한 건 나의 형님이 되는 언니가 좋은 기업으로 이직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겹경사가!


… 젠장!!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가장 힘든 건 솔직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밤에 울고 나면 다음 날 온 얼굴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퉁퉁 붓는데 그 얼굴을 거울에서 처음 마주 보는 충격이랄까. 내 안의 치졸한 감정들을 마주하는 일이 그렇다. 잡초처럼 계속 자라나는 열등감, 질투, 자괴감을 털어내고 또 털어내야 한다. 방금 새로 내 닿는 발걸음에 혼자서 잘했다, 고생했다 만족하며 부풀었던 마음이 금세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바닥에 곤두박질친다. 내가 그다지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닌 건 알았지만 주변 좋은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하지도 못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졌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삐죽거리며 남편에게 못난 마음을 털어놓자 ‘그럴 필요 없어. 잘 되면 좋지 뭘, 경쟁자도 아닌데.’


좋긴 뭐가 좋아 내가 잘 돼야 좋지



<어느 밤> 온덩이

 

소식을 듣고 하루 꼬박 우울했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에는 힘이 빠졌다. 그럴수록 뭐라도 더 만들려고 핀터레스트를 보며 아이디어를 짜보는데 떠오른 건 없어 오히려 조급한 마음만 커졌다. 남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마침 코로나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너무 깊은 우울감에 빠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웃긴 일이다. 상대방이 갖고 있었던 게 내가 갖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그 목표를 위해 남몰래 들인 노력만큼 나도 매사 최선을 다하고 있냐고 물으면 진심으로 당연하지! 외칠 수나 있을까. 잘 갖고 놀고 있다가 괜히 옆의 친구 장난감이 더 좋아 보여 빼앗으려고 하는 어린아이 심보가 따로 없다.


 ‘나 요즘 불안한가 보다.’


 가만히 바라보니 감정의 흐름이 보인다. 8개월째의 갭이어. 6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며 생각만 한 큼 그동안 나는 뭘 이뤘을까. 최근 이래도 되나 싶은 해이해진 하루가 많긴 했다. 늦잠을 자서 운동을 하지 않았고, 우리보단 남 생각을 많이 하고, 글보다는 자극적인 영상 소비가 많았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거다. 주변 사람들의 소식에 ‘너도 이제 이렇게 시간 보내면 안 되지’ 불안함이 스멀스멀 나온 것이다.


  며칠 전 할아버지 생신으로 대전으로 내려가 친척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김포공항 갈 때마다 너한테 연락할까 했었어.”라는 말에 “아 그러셨구나.” 얼버무렸다. ‘저 이제 거기 안 다녀요’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직장을 그만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아서일까. 날 직장도 없는 한심한 인간으로 볼까 봐 일까. 정답은 내가 지금 그만두고 뭘 하고 있는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거다.


 다시 초심을 찾을 때다. 최근의 위 두 일을 좋은 자극으로 삼고 더 제대로 움직일 때가 됐다. 주변 좋은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고, 지금 직장에 다니던 다니지 않던 저 요즘 뭘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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