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탁자 서랍을 열었더니 곰팡이가 쓸어 쾌쾌한 냄새가 나는 지갑이 시선에 닿았다. 이 지갑이 여기 왜 있는지 몰랐는데 생각 끝에 연락처를 뒤졌다. 아직 연락처가 남아있었다. 연락하려다 수첩을 열었다. 닿지 못 할 인연이었다. 인연을 생각하며 적었다. 어떤 인연을 만날까. 어떤 인연으로 늙으면 좋을까 생각했다.
늙으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스스로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읽는 날보다 들려주려기 위해 책을 읽는 날이 더 있으면 좋겠다. 둘 중 한 명이 눈과 귀가 어두워져도 괜찮다.
이 책과 저 책에서 모아 기억한 이야기를 밤에 마주 누워 들려주면 그리고 찬찬이 들어주고 그러다가 피곤해서 코를 골고 잠이 들면 이불을 덮어주면 또 어떨까. 아마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어야겠지, 생각했다.
같은 이야기는 지루하니까 늘 다른 책에서 다른 이야기를 기억하여 들려주고 어느 날에는 먼저 피곤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 하면 어떨까. 아마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어느 날은 안 들어주겠지, 생각했다.
어느 날은 사랑 이야기를 어느 날은 외국 어느 나라 이야기를 또 어느 날은 공자나 맹자를 말하겠지.
주제를 묻기도 하고 묻지 않기도 하겠지. 무식하다고 서로 무시하고 아프다고 읽는 중에도 앓겠지.
꽃 피는 날을 좋아하는 것과
바닷내가 나는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것과
아무도 없는 빈 길을 걷는 것과
하늘색을 맞추는 일과
손잡고 걷는 순간이 제일 좋다고 말해주는 것들이
생각났다. 그런 인연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에게 무시 당해도
곁에 있는 사람은 조용히 책을 꺼내 평소처럼 읽어주면 좋겠다.
"괜찮아요."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