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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18. 2016

살아있기 때문에 흔들린다. 흔들려도 괜찮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136 - 김지영(종로)

낯설게 만나서 일상을 들었다. 그녀는 기억에 남는 말을 틈틈이 했다. 누구나 하나씩 보석을 가지고 있다든지 사랑을 영과 일로만 보지 말라든지 또는 마음의 온수를 조절하고 싶다든지 하는 말을 했다. 몇 달을 이어오고 있는 이 낯선 만남에서 처음으로 되레 고민을 털어 물었다.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만남을 했다. 퇴사 그리고 잠시 쉬어 가는 스물여섯, 김지영의 일상을 듣는다.

 

 

“안녕하세요. 일상을 듣고 싶어요.” 

“퇴사한 지 딱 일주일 됐어요. 지난 월요일에 퇴사했거든요. 한 주 간 그냥 쉬었어요. 지난 이틀은 엄마와 단둘이 여행도 다녀오고요. 퇴사하고 제 마음을 많이 돌본 한 주였어요.”

 

 

“직장에서 하던 일은 어떤 일이었나요?” 

“마케팅 하는 일이었어요. 6개월 간 일했어요. 일은 제게 잘 맞았어요. 일 자체는 힘든 과정이 있더라도 버티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일이었어요, 일단 제가 만든 무엇들이 사람들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걸 좋아하거든요. 글이나 사진들을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리면 반응이 오니까 재미있게 일했어요.” 

 

 

“어머니와 여행은 어떠셨어요?” 

“단둘이 여행간 게 처음이었어요. 남이섬, 아침고요수목원 같은 곳을 다녀왔어요. 이번 여행에서 엄마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어요. 꽃 앞에서도 갈대숲에서도 사진 찍으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 엄마 모습을 보면서 그냥 제가 더 좋았어요. 더 늦기 전에 이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음,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하나 놀란 게 있어요. 그곳에 젊은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몸이 불편하고 연로한 분들도 그곳을 찾았어요. 그분들은 하나 같이 지금 이 순간순간을 즐기고 계셨어요. 즐기지 못 하고 제 자리에만 머물고 있는 제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됐어요.”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아빠가 들으면 뭐라고 한소리 하실 계획이에요. 올해는 그냥 편안하게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해보고 그간 벌였던 일들을 마무리 지으면서 그렇게 보내려고요. 평소 시간과 일을 핑계로 미뤘던 것들도 하고 싶어요. 엄마와 떠났던 여행처럼요. 이러다가 제게 훅 당기는 일이 생기면 하게 되겠지만 일순위로 보진 않아요. 좋은 직장 보는 눈도 키우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그런 기간으로 얼마 안 남은 올해를 보낼 생각이에요. 조급해 하지 않으려고요.”

 

 

“평소에 쉬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편이세요?” 

“책 보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해요. 노트북 들고 나와서 어느 카페에 앉아 글쓰기도 하고, 조용히 책 한 권 읽기도 하고 그래요.”

 

 

“좋아하는 것들을 듣고 싶어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요. 학교 다닐 때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남자친구와 시간 보내는 것도 좋아하고요. 요즘에는 맛있는 커피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음, 많은데 지금 말하려니까 잘 안 떠올라요.”

 

 

“10대의 ‘김지영’은 어땠나요?” 

“무언가 늘 열심히 했어요. 칠팔십만 해도 되는 걸 백, 백이십 했거든요.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랬어요. 시험에서 한 문제 틀린 것 가지고 울기도 하고 욕심도 많이 부렸어요.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되는데 그걸 몰랐어요.”

 

 

“20대의 ‘김지영’은 어떤가요?” 

“조금 더 따뜻해졌어요. 10대에는 제가 생각해도 차갑고 매몰찼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주위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한 것을 알아가고 있어요. 그래선지 어느 순간부터 제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하나 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현재는 어떤가요?” 

“잊고 있던 제 자신을 찾아야겠다 생각 해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 안에 저마다 하나씩은 보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 보석이 눈에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저 사람 빛난다.’고 말하곤 하잖아요. 제게도 한때는 보석이 빛나던 때가 있었어요. 요즘은 그게 묻히거나 무언가에 덮인 느낌이에요. 이제 가려진 걸 걷고 제 보석을 갈고 닦아야 할 시기 같아요. 현재는 그래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지금까지는 그냥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그 온수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따뜻해야 할 때는 더 따뜻하고 그렇지 않아야 할 때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요.”

 

 

“스스로에게 전환점이 되었던 일 하나만 들려주세요.”

 

“음, 첫사랑이요.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 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고 되물을지 몰라요. 중학교 때 만났던 사람이었어요. 그냥 아무 것도 없고 서로만 있으니 더 마음껏 사랑한 것 같아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사랑인 것 같아요. 많이 배우고 얻은 것도 많아요. 동갑인데도 어른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을 품는 법이나 표현하는 법을 배웠어요. 제 인생에서 사랑이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준 이유 같은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매순간 열심히 연애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돈, 시간, 기간에 관계없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어느 한 달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놀고먹고 싶어요. 지금 가도 되지 않냐 물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무언가 용기가 안 나요. 그 조건들을 신경 안 쓴다면 그러고 싶어요. 맛있는 음식 찾아다니고 어느 사람들을 관찰하고요. 최근 알게 됐는데, 제가 영감을 많이 받는 사람이더라고요. 감각이 열려있다고 해야 하나. 파리에 가서 그런 영감이나 감각들을 느끼고 흡수하고 싶어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외형이나 어느 점들을 생각해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굳이 정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누가 보더라도 좋은 여자가 되면 좋은 남자가 절 알아보고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고 정하기보다는 그게 더 나아 보여요. 아, 그리고 ‘안 된다’ 생각하는 건 하나 있어요. 뚱뚱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면 남자로서 매력이 덜 느껴지더라고요.”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혼을 조건 맞춰서 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건 안 좋아해요. 조건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 서로의 파트너십에 대한 고려가 우선돼야 할 것 같아요. 파트너십은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것을 말해요. 복잡하게 말했지만 사실,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려는 의지가 곧 결혼 아닐까요.”

  

 

“고마운 사람을 떠올려 볼까요?” 

“퇴사를 결심하고 제게 응원을 보내고 큰 힘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요.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주위에 고마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됐어요. 남자친구 또한 ‘내가 힘들 때 네가 날 지켜준 것처럼, 네가 힘들 때 내가 널 지켜주는 거다.’라면서 위로를 건넸어요. 주변에서 제게 무엇을 해도 잘할 것이라며,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응원해 줬어요. 잊고 있었는데 절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워요.”

  

 

“미안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빠요. 항상 아빠 뜻을 거스르는 딸 같아요. 대학 진학할 때까지는 말을 잘 들었어요. 아빠가 가라는 학교나 학과를 갔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살면 아빠의 삶이지 내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때부터 아빠가 하지 말라는 걸 했어요. 이번에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도 화를 많이 내셨어요. 아빠의 우려도 알고 아빠의 말이 사실 맞아요. 어느 날은 그동안 아빠가 하라는 대로 살았으니까 이제 내 삶을 살겠다면서 못되게 말한 적도 있어요. 미안해요. 제 생각으로는 지금은 부모에게 독립해서 내 스스로, 그 자체로 살아가고 찾아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갈등이 많은 거겠죠. 서로 다투니까 상처도 많이 주게 되고요. 아빠도 아빠로서의 삶이 처음이고 저 또한 딸로 살아가는 삶이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미안해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요?” 

“없어요. 지나온 순간들이 있어서 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굳이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습관처럼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있을까요?” 

“습관적으로 많이 웃어요. 생각 없이 많이 웃었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이 있으세요?” 

“괜찮다. 다 괜찮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런 글을 쓰기도 했어요. 죽어 있는 건 흔들리지 않는다. 살아있기 때문에 흔들린다. 흔들려도 괜찮다. 그러니 마음껏 흔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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