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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18. 2016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목욕탕 옆 인간극장 144 - 이인애(서울)

그녀는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 하고 있다. 졸업 논문을 쓰고 있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쉼을 모르고 달려왔다 했다. 현대인의 고질병처럼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했다. 그 쉼 모르던 시기를 지나 한 구간을 끊고 매듭지을 시기가 온 것 같다 했다. 그녀의 일상을 듣는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학교 다니다가 휴학을 한 학기 하고 교환학생을 다녀왔다가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여행을 다니다가 한국 와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하다가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원을 갔고 다시 열심히 지내다가 대학원 마지막 4학기를 다니고 있어요. 지금은 졸업 논문을 쓰고 있어요. 무엇보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요. 쉼을 모르고 달려오다가 요즘 들어서야 조금 쉬고 있어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현대인의 고질병처럼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끼면서 불안하게 지내온 것 같아요. 대학생 때는 몇 년에 걸친 계획이랄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보도 없었지만 잘 안 그려지는 미래를 그려보려고 열심히 지냈어요. 지금의 대학원에서는 바빴어요. 무엇이든 다양한 곳에 참여하던 대학생 때와는 다르게 대학원에서는 한 곳에만 머물러 보려고 했어요. 한 곳에 머물면서 제가 비빌 언덕이라고 여길만한 곳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한 집단만 고집하는 건 또 아닌 것 같더라고요. 요즘 그 중간 어딘가에서 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본인의 삶이란 게 무엇인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5년, 10년 이렇게 제 삶을 그리진 못 해요. 그냥 생각할 일 있으면 하고, 관심 가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으면 관심 가지고, 말할 기회 있으면 말하면서 사는 삶이 좋겠어요. 잘 그려지진 않지만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요?”

“도시공학 전공이에요. 공무원이 되면 꿈을 이루는 건데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공부는 계속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몰라요. 어떻게 다 알겠어요.”


“대학원까지 긴 공부를 했잖아요. 그 공부를 통해 이루고 싶은 일이 있나요?”

“글쎄요. 일단 빨리 일을 하고 싶어요.”


“사회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거죠?”

“음, 있어요. 입지에 가치가 있는 부동산이지만 주인이 개발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자본이나 역량이 부족할 때 제가 대신 개발을 해주고 수익을 나누는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이 있어요. 제게 돈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 돈을 통해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거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들에 대해 듣고 싶어요.”

“그동안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많이 잃은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예전에는 피아노 치고 노래 하거나 노래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서울 와서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기획하는 것도 좋아해요. 대학교 때 동아리 하면서도 인애투어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들하고 같이 여행 다니고 그랬어요.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해요. 여행 다니면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런 걸 좋아해요. 조각의 지식을 모으는 것도 좋아해요. 가끔 이런 조각들이 생산성으로 연결되지 않아서 좌절하기도 하지만요. 아, 베이킹도 좋아해요. 신기하더라고요. 밀가루 반죽들이 먹을거리가 되는 과정이요. 비즈니스 모델 보는 것도 좋아해요. 새로운 앱이 나왔다고 하면 다운 받아서 써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쉬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뭘 하세요?”

“가장 명백하게는 예능 볼 때 쉬는 것 같아요. 예능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세 달 정도 전부터 봤어요. <비정상회담> 봐요. 보고 있으면 너무 재밌고 계속 웃어요. 잘 생겨서 웃는 것도 같아요. <썰전>도 신세계고 <마녀사냥>도 좋아요. 사실 그 전에는 쉴 줄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아, 거리 공연 보거나 전시 다닐 때도 쉰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고향에 계시던 어머니를 서울 자취방으로 불러들인 일이요. 원래는 같은 학교를 다녀도 오빠와 따로 살았는데요. 오빠와 같이 살면서부터는 어머니를 부를 여건이 되더라고요. 사실 어머니가 밥을 해주러 오셨어요. 어머니에게 우리를 돌봐 주세요, 힘을 주세요 하면서 모신 거예요. 그간 가족들과 왕래가 드물었는데요. 그래선지 지금이 너무 좋아요. 아버지만 조금 불쌍하게 됐어요. 음, 그리고 제 생활이 일 년 단위로 끊어지지 않아요. 대학원 3학기가 묶여 있어요. 올해라고 하니까 고민이 되네요.”


“그럼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어려워요.”


“그럼 나열을 해볼까요.”

“학회를 여러 번 다녔어요. 학회 차 싱가포르 갔을 때는 학회 발표보다 멤버들 가이드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야근도 많이 했어요. 도와주느라 밤새기도 하고 도움받기도 하고요. 욕도 많이 먹었어요. 그 와중에 공모전에서 상을 받거나 떨어지기도 했어요. 어떤 공모전에서는 도대체 왜 떨어진 건지 알아보러 시상식에 가보기도 했어요. 오해와 갈등도 있었고 위로와 격려도 있었고요. 방장 돼서는 이쪽저쪽으로 많이 치이기도 했어요. 발주처와 조절해 나가면서 수행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못 해본 것에 대해 오랫동안 아쉬워하기도 했어요. 장기 프로젝트 아니고선 제안서 작성이나 단기 프로젝트는 많이 했어요. 분석모형도 다양하게 써 봤고요. 어떤 일이든 맡는 대로 성실하게 했어요. 막바지에는 그간 고생했지만 남는 게 없을까봐 불안해서 힘들기도 했고요. 실력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고 졸업하면 사람들과도 소원해질 것 같았거든요.”


“이제 힘든 일들은 끝난 거죠?”

“사실 연구나 연구용역 활동이 6월에 다 끝나서 7월부터 지금까지는 논문, 취업준비 그리고 긴긴 힐링을 하고 있어요. 책이나 대화뿐 아니라 토익, 한국사, 예능 프로그램 등이 다 힐링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동안 제가 스스로를 편협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극단적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마녀사냥에서 허지웅이 파이팅 넘치는 신입사원들이 처음 입사를 하면 그 회사가 자기의 우주가 되고 회사에서의 일희일비로 인해 그 우주가 휘청거리는 경험을 한다는 식의 말을 했는데 저도 그랬던 것 같고 이게 보편적으로 겪는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궁금한 게 있어요. 대학원을 가게 된 이유를 듣고 싶어요.”

“대학원 정도는 나와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부동산보다는 투자 기획이나 펀딩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요. 그런 걸 하고 싶어도 대학을 다니면서는 그 내용을 2과목 정도 배운 게 전부였어요. 교수님도 좋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학원을 가게 됐어요. 공부를 할수록 가능성은 커지는데 고민도 함께 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제 길 찾아서 잘 온 것 같아요.”


“그 나이 때에는 그런 공부며 경험을 해야 하겠죠? 그런 거겠죠?”

“나이 말고도 어느 역할에 맞게 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는 역할들이 서로에게 너무 굳건한 사회에서 지내고 있어요. 유교의 영향일까요. 무시하려고 마음먹으면 무시할 수도 있지만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그냥 공부며 경험이며 그냥 그런 것들에 있어서 완급 조절도 하면서 조금씩 더 여유로워지고 성숙해지면 좋겠다 정도만 생각하려고요.”


“10대의 ‘이인애’는 어떻게 지냈나요?”

“교회 열심히 다녔어요. 꿈은 없어도 나중에 혹시 하나님께서 제게 의사가 되어라 했는데 제가 의사가 되지 못 할까봐 무서웠어요. 그게 불순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고등학교에서 로봇동아리를 했어요. 정말 재밌었고 행운 같아요. 전자회로 같은 걸 직접 만들어 보면서 경험하는 일이 정말 좋았어요. 그렇게 배우는 물리가 재밌었어요. 상도 많이 받았고요. 야자 시간 빼서 하는 거니까 더 열심히 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어설프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20대의 ‘이인애’는 어떤가요?”

“사춘기를 대학교 때 겪은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뉴스를 보고 8시나 9시까지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 갔어요. 동아리도 4개인가 했어요. 시간을 틈 없이 썼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종교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면서 동력이 꺼졌어요.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쉽게 못 찾았어요. 빨리 답을 찾고 다시 열심히 살고 다시 궤도에 오르고 싶었어요. 그런데 서두를수록 답은 멀어지더라고요.”


“현재는 어떤가요?”

“요즘 인식을 했어요. 제가 욕심이 많고 기준이 높은 사람이라는 걸 인식했어요. 제 20대 모두를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았던 기억은 많아요. 그리고 지금은 한 구간을 끊을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쭉 달려온 지금까지를 매듭짓고 있는 것 같아요. 부끄러운 기억이나 화났던 경험들이 모두 어떤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제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선 내에서 최선을 다한 거니까요. 그때 더 영특했고 덜 열정적이었으면 조금 덜 멀리 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잘 지내서 현재에 이르렀어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조금 더 편하게 살지 않을까요.”


“이상형에 대해 듣고 싶어요.”

“진솔한 사람이어야 해요. 자기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 마음을 잘 알 만큼 감수성이 있고 성숙했으면 좋겠어요. 잘 쉴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고요. 어떨 때 본인이 쉬는지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낯설어도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시도해볼 용의는 있는 사람이요.”


“결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릴 때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거짓말로라도 아빠와 계속 살고 싶다고 말하라고 해도 울면서 안 된다고 결혼해야 한다고 했어요. 요즘은 살면서 처음으로 결혼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지금 제 인생에서 결혼이 중요한가 싶어요. 그런데 오래된 친구 같은 사람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활기차고 발랄하며 일을 잘 벌이는 제 모습을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정말 좋거든요. 제가 가라앉아 있더라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기억하면서 제 아카이브 같은 역할을 해줄 사람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면 그런 거겠죠.”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죽음이요? 교회에서 생각해보라고 많이 시키더라고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죽음에 대비하기보다 어느 날 혹시라도 인생이 망해서 죽고 싶을 순간이 오면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드는 그 순간에 신용대출을 받아서 오로라 보러 가고 싶어요.”


“돈, 시간, 기간에 제약이 없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부동산 개발이요. 어릴 때처럼 1층에 갤러리를 넣는 것처럼 수익성에 대한 고려 없는 시도는 하지 않을 거예요. 노후 도심을 재밌게 개발하고 싶어요. 서울에 안 되면 지방에라도 하고 싶고, 사실 돈이 많으면 공간에 대한 여러 실험을 하고 싶어요. 돌아가신 구본준 기자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죠?”


“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존재가 있나요?”

“좋아하는 친구, 교수님, 당연히 엄마와 아빠, 그리고 스웨덴이요. 스웨덴이라는 존재는 제게 안식처 같아요. 교환학생을 가서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고마워요. 그리고 로봇동아리요. 로봇동아리도 생각할 때마다 힘이 되고 고마운 존재예요.”


“스스로에게 해보고 싶은 말이 있나요?”

“수고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니오. 많이 말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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