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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18. 2016

비밀이 줄어들면 불행해진다는 말을 듣고 이해했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147 - 정해리(서울)

처음은 아무 일 아닌 이야기를 했다. 날이 춥다거나 밖에 눈이 온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낯설다고 했고 내게도 이 일은 낯선 일이라고 받아 말했다. 비밀이 줄어들면 불행해진다는 말을 듣고 이해했다. 입맛에 맞는 글을 옮기고 싶었는데 역시 아직 그럴 자격은 없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일상을 듣고 싶어요.”


“요즘 제가 뭘 하면서 지낼까요. 일단 조금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바쁠 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집에 있을 여건이 될 때는 결코 집에 있지 않아요. 찬바람 쐬는 걸 좋아해요. 같은 풍경도 다시 보면 다르니까 한 곳을 반복해서 다니는 편이고요. 밖에 나오는 걸 좋아해서 꼭 나오면서 또 못 쉬고 있어요.”

“하고 있는 일을 들을 수 있을까요?”


“졸업전시도 했고 수업도 끝났어요. 졸업전시가 끝나도 제출해야 할 것들은 남았지만 또 무언가 재밌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어요. 아, 전 디자인 배우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디자인 하면서 나오는 쓰레기들이 있는데요. 인쇄가 잘못된 것들이 주로 쓰레기가 돼요. 이것들을 모아서 책이나 만들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한 번 만들고 나면 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건 아직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 공부에 대해서 더 들을 수 있을까요?”


“공대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어요. 그곳을 그만두고 뒤늦게 디자인을 배우고 있어요.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는 끝이 났어요. 이제 스스로 배워야 해요.”

“졸업하면 어떻게 하죠?”


“일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지금 말하는 일이라는 게 꼭 회사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제가 무엇인가 꾸며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어요 아직.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일을 찾으면 좋겠어요. 부자연스럽게 일을 찾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늘어져 있겠다는 뜻도 아니에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고 싶어요. 살면서 그렇게 하는 일들은 잘됐어요.”

“학교를 새롭게 다니면서 생긴 변화가 있나요?”


“안 늙은 것 같아요. 사실 예전부터 제가 돈이 많으면 계속 배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학교에 다니는 시간 동안 계속 배우고 있으니까 재미도 있고 밤새면서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제가 다시 학교를 다닌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큰 결심이라고 말했어요. 전 그게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렇게 재밌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안 늙은 것 같아요. 저는 제 관심사와 비슷한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게 좋고요. 예전에는 제가 무엇을 표현하면 엉뚱하다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워요.”

“학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최근 일이 아무래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졸업전시를 준비하면서 에코백이 필요했어요. 친구와 그 에코백을 사려고 한참을 거리를 돌아다녔는데도 못 샀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친구와 장소를 옮기면서 어느 버스를 탔는데요. 버스에 타서 창밖을 보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에코백은 결국 온라인으로 샀어요.”

“2014년 한 해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하나의 일이라기보다 제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던 한 해였어요.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음악 듣는 것, 산책하는 것 고양이랑 이야기 하거나 고양이 따라가는 것, 웃긴 사진 보는 것 좋아해요.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거나 이불 속에 들어가 있거나 반바지 반팔티 입고 푹신한 이불 안에서 헤엄치듯 팔다리를 휘저을 때 이불과 살이 닿는 촉감도 좋아해요. 그네 타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기분 안 좋을 때 동생하고 새벽 한두 시쯤 그네 타면서 이야기 하는 게 좋아요. 동생이 제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이거든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친한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초콜릿 먹는 거나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고 커피는 달고 산다고 볼 수 있어요. 집에서 작업할 때는 커피가 비워지질 않아요. 엄마와 이마트 가는 것도 좋아해서 특별히 살 게 없어도 가요. 책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때는 노래도 제가 선곡하고 틀어주고 신이 나면 춤도 출 때가 있어요. 레고 같은 장난감 조립할 때도 좋고 장난치는 것도 좋고 도촬하는 것도 좋아해요. 메모하는 것이나 글 쓰는 것들, 공연 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혼자서도 공연 가는 걸 좋아해요.”

“쉰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죠?”


“늦잠을 잘 때요. 그리고 이불 안에서 눈을 뜬 상태로 텔레비전을 켜서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리다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걸 늘어져서 보다가 배가 고프면 우중충한 시간에 계란말이 해먹고 그럴 때요. 그리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슈퍼에서 과자 사와서는 그걸 먹으면서 늘어져 있다가 또 이렇게 쉬는 날 집에만 있는 게 아깝다면서 친구와 약속을 급하게 잡아요. 친구와 전시를 보다가 밥을 생략하고 카페에서 오래 얘기할 때 잘 쉬었다 알차게 쉬었다 같은 생각이 들어요.”

“중학생 때는 어떻게 지냈나요?”


“모범생이었어요. 모범생인데 제가 친한 사람들은 모범생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아이였어요. 성적은 잘 나오지만 공부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음, 중학생 때 어땠죠. 되게 안 친한 사람과 친한 사람 사이에 차이가 굉장히 큰 아이였어요.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되게 웃고 말도 많은 그런 아이였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친했던 친구 3명과는 아직도 친해요. 벌써 15년이 넘은 친구예요. 같이 하는 계가 하나 있어요. 한 달에 만 원씩 모으고 있는데요. 그걸로 지난 여름에 전주도 다녀왔어요. 15주년을 기념해서 작은 실반지도 맞췄어요. 그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저다운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을 만나고 알게 된 건 행운이에요.”

“고등학생 때는 어땠나요?”


“우울의 끝이었어요. 복잡-다양한 이유가 있는데요, 제 기억에는 없는데 엄마에게 죽겠다고 해서 엄마가 많이 울었다고 했어요. 왜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어요. 시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그래서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없었던 때였어요. 친구 하나랑만 친했는데 그 친구도 미술을 공부하는 친구여서 친했던 것 같아요. 공부 안하고 방황하다가 3학년 어느 날에 학교 앞에서 달력이 포함된 전단지를 받았어요. 그 전단지에 멀게만 느껴지던 수능 날이 달력 한 장에 들어가 있는 걸 보고 겁을 먹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했어요. 그 전에는 새벽에 테트리스를 하고 학교에서 졸고 있는 잠순이었어요. 추석 때 제가 고3이니 가족들이 할머니 댁에 안 내려간다고 해서 화가 난 마음에 ‘고3☆테트리스’ 방을 만들어서 사람들 모아서 테트리스 하고 그랬어요. 말하고 보니 정말 이상한 고3이네요. 그런데 이런 이상한 제가 저는 좋네요. (웃음).”

“대학생 때는요?”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시간이 좋아요. 1학년 때는 아웃사이더로 지냈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웃사이더끼리 그룹이 생겼어요. 동아리 활동도 안 하고 같이 친하던 애들끼리 만들었던 재밌는 추억이 많아요. 예를 들면 이맘때 허름한 학교 도서관을 헐고 한국에서 제일 큰 도서관을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구렸지만 3년을 넘게 같이 보내면서 애정이 알음알음 생겼더라고요. 어느새 도서관 옆 큰 잔디밭까지 갈아엎고 있는 걸 봤어요. 제 추억들은 저 허름한 도서관에 있는 거잖아요. 문득 동아리 생활을 안 해서 잔디밭에서 자장면 먹어본 기억이 없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불렀어요. 도서관이 헐리기 전에 추억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누구 하나 싫다고 안 하고 자장면에 깐풍기까지 시켜서 추운 날 잔디밭에서 덜덜 떨면서 먹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완성된 신식 도서관을 보고는 너무 좋다면서 여기서 살고 싶다고 했어요. 과도기적인 그런 시기를 보내서 좋았고 전공 실험도 재밌었고 시험 볼 때 금메달도 많이 따보고 재수강도 해보고 그랬어요. 지금 제 주위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은 대학생 때 만난 사람들이 많아요. 고등학생 때는 없어요.”

“금메달 따는 게 뭐죠?”


“모르세요? 시험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에게 ‘금메달 땄다’고 해요.”

“정말 몰랐어요. 그럼 20대 때는 어땠나요?”


“파란만장한 이십대였어요. 변화가 많았어요. 공대생이었고 대기업 사원이었고 다시 학생이었고 그리고 지금이에요. 여행도 다니고 그랬는데 왜 이렇게 많은 경험을 했을까요. 이십대를 꽉 채워서 많은 변화를 준 시기였어요.”

“현재는 어때요?”


“불안한 영혼이에요. 그런데 나쁘지 않아요. 싫지 않아요. 당연히 그러나 보다 그래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완전 대박날 거예요. 장난 아닐 거예요. 완전 행복할 거예요. 재밌는 거 하고 살 거예요. 좋은 일들이 기다릴 거예요. 그래서 머리도 잘랐어요.”

“시간과 기간, 돈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재밌는 일을 꾸미고 싶어요. 사람들을 참여시켜서 같이 완성하는 어느 프로젝트를 재밌게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피식 웃게 되는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으세요?”


“너무 많아요. 지금은 J. 그 친구는 일 년에 손꼽을 정도로 연락하는 친구예요. 그런데 항상 적절한 타이밍에 연락을 해요. 기대 안 했던 사람이라서 더 그런가 봐요. 음, 고마운 사람이 많네요. 행복한 사람인가 봐요.”

“그럼 미안한 사람도 있을까요?”


“있어요. 아빠. 아빠를 되게 싫어했던 적이 있어요. 어느 순간 그걸 다 이해하게 됐어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지만 아빠와 가장 많이 싸운 게 사실 저였지만 사실 아빠가 그만큼 절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저도 표현을 잘 못 하니까 그 아빠와 똑같은 딸인 거예요.”

“버킷리스트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가족들 다 같이 스위스 여행 가기요. 대학교 3학년 때 이곳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봤던 자연이 너무 좋아서 가족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유학가고 싶어요 나이가 몇이든. 제 이름을 걸고 진짜 정말 괜찮은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온전하게 나의 여러 가지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전시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생에 대한 거예요. 동생이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어요. 훗날 동생이 자기 브랜드를 만들게 됐을 때 동생의 브랜드 디자인 같은 걸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상형은 어떠세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자기만의 세계를 얘기할 때 눈이 반짝였으면 좋겠어요. 책이랑 문화생활 좋아하면 좋겠고 저와도 말이 잘 통하면 좋겠어요. 웃음 코드가 맞아야 해요. 제가 가만히 있다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같이 동참해줬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예의는 당연히 있어야 하겠고요.”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요?”


“잘 맞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요.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필수는 아닌 것 같아요. 시기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죽음은 어떤 의미이죠?”


“별로 두렵진 않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그런 생각이나 자세 때문에 주변에서 그래도 저를 아끼는 사람들이 뭐라고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요?”


“자다가 죽는 게 제일 좋아요. 즉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세계멸망도 좋아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넌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하면 좋겠다. 넌 괜찮은 애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뭐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어요.” 

“꿈이 있나요?”


“꿈 많은 것 같은데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게 꿈이에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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