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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r 12. 2016

하루하루 살지만 절박한 의미는 아니라고 했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169 - 김슬기(서울)

목욕탕 옆 인간극장 169 - 김슬기(서울) 
2016년 3월 3일, 연남동 라이브바 ‘멜로아’ 

공군에서 주최하는 제주 어느 일에 몇 가지 대행을 했었다. 그때 그와 인연이 닿았다. 그는 중위를 달고 있었으며 전역을 손꼽고 있었다. 제주와 오산에서 몇 번 대화하고 인사했고 몇 달이 지났다. 그는 녹색 양말을 신고 폴폴 뛰어다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진을 걸었다. 그 소식을 보고 나는 수줍게 연락을 했다. 자리를 만들었다. 별 일 없이 만났는데 이야기는 괜찮았다. 낯설게 서로 살아가는 고민을 나눴다. 그는 그냥 적당히 산다고 했다. 되게 잘 사는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근근이 산다고 했고 하루하루 살지만 절박한 의미는 아니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어떻게 하면 돼요? 
“그냥 사실 별 게 없어요. 재밌어요.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요새요? 얼마 전에 대학원에 복학했는데요. 그걸 간판 삼아 지내고 있고요. 사실은 전역하고 11월 12월, 11월은 거의 휴가였으니까요. 11월, 12월, 1월, 2월 지내던 연장선상에 있어요. 주로 뭐했냐면. 밥했고 설거지했고 청소는 귀찮아서 별로 안 했고 택배 받았고요. 와이프한테 전화가 와요. 카톡이 오거나요. 택배 좀 받아달라고요. 그럼 성실히 받고요. 꿈이 원래 셔터맨이라고 했는데요. 반셔터맨의 삶을 살고 있어요. 사실상.” 


“결혼은 하신 거네요?” 
“그렇죠. 1년 조금 더 됐어요.” 


“결혼 생활은 어떠세요?”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게 있어요.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항상 하는 말이에요. 결혼 적령기는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냐? 아주 보수적인 친구는 20대 후반을 얘기하고 신문물을 접한 친구는 30대를 말하는데요. 저는 항상 말해요. 45세라고요. 그때쯤이면 혼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건강보험도 챙기고요. 임종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고요. 결혼은 그때예요. 

- 라고, 얘기를 하지만 사실 결혼은 좋아요. 와이프랑 오래 만났어요. 딱 10년 채우고 결혼했거든요. 제가 스무 살 때 재수하면서 만났으니까요. 결혼을 할 때는 사실 걱정이 많았죠. 왜냐면. 결혼한 당시 제가 군인이었는데요.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어요. 전 군인 계속 할 사람도 아니고요. 고민도 많이 하고 결혼 생각하면서 티격태격도 많이 했어요. 에라 모르겠다 했어요. 가까운 어른께서 결혼은 뭣 모르고 정신없이 하는 거라고 해서 그 말 하나 믿고 했는데. 좋아요. 알콩달콩. 

행복하려고 결혼한 건데요. 생각보다 결혼이 기존의 삶에 큰 영향은 없더라고요. 적당히 서로 하는 거 하면서 살고요. 일하다가 하기 싫으면 그만 두고요. 그럼 둘 다 버는 게 없지 않냐고요? 어떤 알바라도 하면 되는 거고요. 행복하려고 결혼한 건데 가정을 유지하는데 더 큰 공이 들어야 하는 건 더 문제이지 아닐까 생각해요. 노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요. 와이프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혹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어떤 게 있는지 나열해 볼 수 있어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요새 문득 재밌는 건요. 갑자기 사람들 만나는 거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페이스북 해요. 전혀 안 하던 사람인데요. 제 페이스북 보면 그래서 글들이 2월 이후에 갑자기 쓰기 시작한 글들이에요. 갑자기 재밌어서요.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해요. 자취하고 군 생활하면서 BOQ(Bachelor Officers’ Quarters, 독신 장교 숙소)에서 사는 것도 좋았고요. 내 공간 갖고 아기자기하게 꾸미면서 사는 것도 좋아해요.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돼요? 꽃 좋아하고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요. 전 가끔 제가 이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걸 느껴요.” 


“요리요?” 
“네. 이럴 때 있어요. 제가 요리를 정신없이 하다가 소금 넣을 타이밍을 놓쳐서 소금 한 줌을 대충 때려 넣었는데 너무 잘 맞아요. 딱 맞아요. 물 끓을 때 뭘 넣어야 하는데 급하게 채소를 썰어서 넣었는데 딱 와이프랑 먹을 2인분이 나와요.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런 생각해요. 요리하는 거 재밌어 하고 먹는 것도 좋아해요. 찾아다니고 그래요.” 


“또 있으세요?” 
“컴퓨터 게임도 좋아해요. 이게 언젠가 내 인생을 망칠 거라고 생각해요. 군대에서도 가장 큰 문제였는데요. 굉장히 바쁘게 전역 뒤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도요. 스타2를 좋아하는데요. 집에 들어가면 전투복도 안 벋고 게임 채널을 켜는 거예요. 그것만 보다 보면 7시, 8시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상병진급캠프 때 만날 이야기해요. 너희들도 들어가면 TV 보고 걸그룹 보고 아니면 스타 보고 그런 거 알고 있다. 그런데 나도 그러고 있다. 군 생활 하면서 여러분들이 많이 들을 것이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고 그런 걸 많이 듣는 거 알고 있다. 그런 건 진정으로 실천할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는 그걸 끄는 거다. 그걸 끄고 뭐라도 해라 뭐라도. 하다못해 군대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나 취직 준비를 하겠단 큰 뜻이 없다면 뜨개질을 해보겠다, 쓸 데 없는 글을 써보겠다 그 정도라도 해라. 그러면 인생의 일말의 조금의 발전이라도 할 수 있다. 제가 그러고 살지 못 하고 있지만. 그때도 항상 말하면서도 민망했던 게 제게는 컴퓨터 게임이었어요. 언젠가 제 인생의 발목을 잡을 걸 전 알고 있어요. 

또 뭐가 있을까요. 와이프랑 이런 동네 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와이프는 오래 못 걷는데요. 체력도 굉장히 저질 체력이라서요. 이런 데(연남동) 다니면서 사람 잘 없는 작은 가게 기웃거리는 거 좋아하고요. 갑자기 뭐 사서 와이프 머리에 하나 달아주는 것도 좋고요. 뭔가 준비한 세팅 같지만요. 와이프 보는 것 좋아해요. 와이프 쉬는 날 집에 있으면 츄레한 츄리링 입고 있으면 좋아요. 발도 작은데 뽈뽈뽈 걸어다니면 귀여워요. 갑자기 뭐 해준다고 하다가 손 베이면 너무 귀여워요. 전 늦게 자거든요. 2, 3시 되서 자거든요. 와이프는 일찍 자요. 늦게 자려고 들어가면 그럼 이상한 자세로 자고 있어요. 너무 귀여워요. 그런 거? 더 이상은 잘 모르겠어요. 아, 술 좋아해요.” 


“옛날 얘기도 조금 해볼게요. 초등학생 때부터요. 초등학생 김슬기는 어땠어요?” 
“똥싸개. 저 상당히 발달이 더뎠는지요. 그랬어요. 그 생각이 일단 먼저 나네요. 까불거리고 남들에게 나서는 것 좋아하고요. 남들이 다 나만 봐줬으면 좋겠고요. 그랬던 기억이 있어요. 총체적으로 하나의 인간을 규정할 순 없는데 단편적으로 보면 그런 걸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3학년 때 반장 한 번 했어요. 반장 김슬기? 그 뒤로 관직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 다음에 중위 해본 게 유일하게 높이 해본 관직이에요. 그 정도. 뭐 특별히는 모르겠어요.” 


“그럼 중학생 김슬기는 어땠어요?” 
“황금기였던 것 같아요. 좋은 선생님 만나서요. 쉽사리 은사님이라고 못 부르겠는데요. 그렇다고 계속 연을 이어오면서 그분께 감사를 표하고 하진 못 했어요. 오로지 책임이 저한테 있다고 생각해서요. 은사님이라고는 못 하겠고요.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저한테 몇 가지 있는 비루한 재주 중 하나가 구라빨이 조금 있는 건데요. 말을 잘하고 글 잘 쓰고 그런 게 있는데요. 전 인류를 통틀어서 상위 10%에 든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요. 어디가도 평균 이상은 하는. 글을 잘 쓰는 명필이라거나 달변가라고 하진 못 해도 구라빨은 아 새끼 괜찮네, 세치혀는 그래도 좀 그래도 괜찮네 그 정도. 그런 걸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알아주신 게 그때 선생님이었어요. 처음은 제 아버지셨고요. 그런 선생님이 지금도 계신지 모르겠는데요. 그때 프리챌에 반 채널을 만들었는데요. 그렇게 자기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많이 만들어주셨어요. 중학생 2학년 애들에게 시 쓰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그걸 유도해주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러셨어요. 대단한 거 아니더라도 우리끼리 두런두런 말하고. 저 데리고 말하는 대회도 데려다가 주시고요 아끼는 제자들 몇 명 데려다가 지금으로 치면 이런데요. 커피도 팔고 그런 곳. 옛날에 유명했던 음악 감상실 같은 곳에 데려가서 안에 있는 재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 분을 만난 거죠. 굉장히 많은 은혜를 입은 거예요. 굉장히 즐거웠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 게. 그래요. 10대 때 제일 재밌던 시기를 물어보면 그때라고 생각해요. 만개했을 때.” 


“이제 고등학생이에요. 고등학생 때는 어떠셨어요?” 
“고등학생 때는 상대적으로 적응을 잘 못 했어요. 문제아였다거나 부적응아까진 아니었는데요. 친구도 많이 없었고요. 원래 성격이 그렇게 막 굉장히 외향적이고 사람들을 잘 만나는 성격은 아니에요. 남들은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잘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건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소셜 스킬이 생긴 거겠죠. 누구나 그렇겠지만요.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중학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랑 헤어지게 된 것도 있고요. 또 그런 거 있잖아요. 기성 교육에 대한 불신 같은 게 팽배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입시한다면서 사람 옥죄고 하는 게 싫고요. 싫더라고요. 그 분위기가. 

고등학교 때 가장 기억나는게요. 그 편린이 뭐냐면요. 학교가 산자락에 있었어요. 복도에서 보면 산이 보여요. 어릴 때부터 자라던 동네라 늘 봐왔던 동네인데요. 쉬는 시간마다 그걸 보는 거예요. 늘 창문 밖을 보는 거예요. 아, 집에 가고 싶다. 하면서요. 

그렇다고 친구도 하나도 없고 히키코모리처럼 산 것도 아니지만요. 그런 것도 기억나요. 제가 소극적이고 그래선지요. 친구 하나하나에 대한 집착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집에 함께 가는 친구가 많지 않으니까요. 친구가 먼저 간다 하면 친구한테 먼저 가면 안 돼 안 돼 너 기다려야 돼 그랬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오산에 근무했어요. 그래서 우리 부대는 아니어도 같이 근무했어요. 그런 친구가 몇 안 되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때 기억은 그랬어요. 제가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것도 아니고요. 중상위권의 어중간한 게 있었는데요. 공부를 놓아버린 친구들이 많은 학교였는데요. 그래서 그런 무리에는 못 들어가고요.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공부에 부정적인 그런 게 있었고요. 여자 아이들과 활발히 지낼 나이도 아니고 같은 반 남자들과도 잘 못 어울리고요. 몇 명 안 되는 친구들이 다른 반에 있어서 쉬는 시간에 그런 곳에 기웃거리고요. 공부는 별로 열심히 안 했어요. 그래서 재수했죠.” 


“대학생 때는 어땠어요?” 
“그때도 아싸였죠. 그런데 그건 사정이 있어요. 입학을 조금 잘못 했어요. 바로 정치학과에 못 들어갔어요. 계열 모집에 들어갔는데 학제 조정을 하다가 1년 생겼다가 사라진 제도예요. 그래선지 어찌어찌 밍기적 밍기적 있다가 갑자기 선택을 하게 돼서 정치학과에 들어간 거죠.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친구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없다보니까요. 정치학과는 그냥 제가 재밌어서 그래서 간 거거든요. 그때 아싸는 아싸끼리 뭉치더라고요. 애매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편입한 형, 다른 과에서 전과한 형, 나이가 많은 형들과 뭉쳤죠. 계기는 있었지만요. 대회를 나가거나 해서요. 그 친구들이 어쩌면 지금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에요. 서로 비슷해서 그래서 더 서로 절실했는지는 모르지만요. 어째선지 주류 밖에 있었어요. 매사 그랬어요. 뭔가 주류를 따라가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싫고요. 비주류를 지향하는 건 또 안 맞고요. 제가 있었던 동아리가 운동권이었는데요. 거기서도 누가 봐도 애매한 애였어요. 매사 삐딱하고요. 학교에서 포지션도 그렇고. 정치학이라는 학문도 좀 그렇거든요. 뭔가 회색 지대에서 회색인으로 살았어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어땠어요?” 
“고시를 대학교 때 했었는데요. 그걸 1년 정도 더 하면서 어정쩡한 사람이었어요. 학교 졸업을 했는데 학교 연구실에는 계속 있었는데. 계속 있다가 군대 문제도 있고 그래서요. 전 군대를 영원히 안 갈 줄 알았거든요. 근거도 없이요. 그러다가 대학원에 갔죠. 대학원도 약간 뭐라도 했어야 했기에 사실 갔어요. 행정학을 해야겠다는, 나의 길이 행정학이라는 그런 게 있지도 않았고요. 기왕할거면 전문대학원을 가려는 생각에요. 박사를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앞으로 생각하는 것들과 어느 정도 연관은 있어야 하니까 그곳에 갔어요. 
 
대학원 1년 하고 군대 갔어요. 모든 걸, 모든, 음 제가 군대를 갔죠 제가. 사실 제가 군대 가기 전날까지 제가 군대갈 줄 몰랐어요. 진주에 가서도 군대 갈 줄 몰랐어요. 모든 공군인들이 입대 당일 날 진주에서의 감상을 잊지 못 하잖아요. 그때도 엄마랑 갈비찜을 먹으면서 군대를 가긴 가나- 모르겠는데 했어요. 그때 밤에 알았어요. 장교로 들어갔고 가입교 기간이라서 그때는 민간인으로 대한다고 듣고 갔어요. 첫날 샤워를 하는데 훗날 나의 소대장이 될 남자가 어떤 새끼가 11시까지 샤워를 하냐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게 저였어요. 불을 끄고 가만히 숨어 있었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나한테 소리 지른 사람이 없었는데요. 벌벌벌 떨면서요. 젖은 머리를 날리면서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면서 방에 들어왔는데요. 그때 군대 왔구나 생각했죠. 나중에 그분에 제 소대장이 됐어요. 별명이 주한미군이었어요.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어요. 누가 봐도 광주교대 나온 것 같은 광주교대 나온 사람이었어요. 사투리도 너무 맛깔나게 쓰고요. 정도 많고요.” 


“소리는 왜 지른 거예요?” 
“그 사람이 훈육관이었어요. 가입교 기간에는 민간인으로 대해준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아무도 11시에 샤워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어요. 아마 처음에 분위기 잡으려고 그런 거겠죠. 아무튼 그렇게 군대에 갔어요.” 


“제대로 하고 있는 거죠?” 
“그럼요. 그냥 이야기 서로 나누는 건데요 뭐. 군대 때는 어떠셨어요?” 
“제가 지금 울고 있는 건 아니고요. 정적이 그냥 있는 거예요.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내 인생에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이런 시간, 이런 생각을 갖게 되다니 하면서 생각하게 됐어요. 아마 병사로 가거나 했으면 학교 가는 느낌으로 갔을 텐데요. 나이도 차고 갔으니까요. 제가 늦게 27살에 갔으니까요. 그래서 그랬는지. 제가 이렇게 집단생활을 잘 할지는 몰랐어요. 집단생활을 특출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제가 고등학교 때 맴돈 것도 있고요. 원래 집단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중학교 때는 태권도 선수를 했거든요. 운동을 한 경험이 집단생활에 대한 그 정도 경험인 거예요. 

군대에서 잘했어요. 생각보다 힘들어하지 않았어요. 신기했어요. 국가주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많았거든요. 대학교 때 공부를 그렇게 했으니까요. 정치학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생각할 게 많은 시간이었어요. 정훈 장교니까 그런 걸 더 많이 생각해야 하잖아요. 서른도 안 된 젊은 것들이 누군가를 신념화 시킨다는 게 어렵잖아요. 고민이나 생각들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은 아니었지만요. 군 생활은 어찌됐든 도움이 됐다고 생각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잘 있었어요. 그렇죠? 모르겠어요. 3년씩이나 했는데 잘 모르겠네요. 운은 좋았어요. 좋은 사람들 만났고 좋은 곳으로 갔고요. 

또 사람 사는 게 범죄급이 아닌 이상 견뎌지더라고요. 말년에는 가장 좋은 멤버들과 있었고요. 그랬고요. 모르겠어요. 보통 뒤돌아보면 다 미화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요. 나쁜 소리는 잘 안 나오네요. 

여담인데요. 제가 자전거 여행을 2007년인가 2008년에 유럽으로 갔는데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기로 했어요. 진짜 돈을 너무 조금 가져가서 집에 연락하고 돈을 받았어요. 하다하다 못 해서 그만두고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이미 포기했잖아요. 갑자기 지난 여정들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 생각이 나요. 그런데 이런 건 자기소개서에 아무리 써도 안 알아주더라고요.” 


“요즘은 어떠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농담처럼 많이 이야기 하는데요. 사실 조금 초조해요. 나이가 나이고. 옆지기도 있고요. 초조하죠. 뭐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요.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아니고 당장 뭐. 쓸 데 없이 욕심도 있고요 사실. 4년제 대학 나오고 아주 재수 없는 친구도 아니고요. 눈을 낮추면 어디든 가겠죠. 그런데 아직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요. 전 돈을 많이 벌고 싶거든요. 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요. 엄청 많이 벌고 싶어요. 

돈을 모아놓고 쟁여놓고 저축을 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버릇이 잘 안 되어있다 보니까요. 사치를 하는 건 아니고요. 영화 보고 싶을 때 보고 여행 가고 싶을 때 가고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사고 그러고요.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를 잘 만났어요. 와이프는 검소하거든요. 와이프가 적절히 제동을 잘 걸어줬죠. 주어진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하고요. 그러고 살아요. 그럴 줄은 몰랐는데 자신감은 조금 없더라고요. 만나면 즐거운데 모임 같은 거 들어오면 그런 생각은 들어요. 나가서 뭔 소리를 해야 하나. 그래서 뻘소리가 느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앞으로? 글쎄요. 멀리 내다보질 않았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초조하긴 한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뭐라도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꾸준함과 성실함의 아이콘이에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거나 버킷리스트 같은 건 있으세요?” 
“음,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거 보면 평소에 없었다는 건데요. 없네요.” 


“그럼 없는 거죠 뭐. 그럼 혹시 지금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 있어요?” 
“우리 와이프.” 


“왜요?” 
“뭐랄까. 많이 믿어줘요. 사실 뭐. 가부장적인 의미에서 그런 거라기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믿어줘요. 능력 있잖아, 잘하잖아 그러면서 믿어줘요.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아마 밖에서는 그런 말 많이 들을 거예요. 우리가 오래 만나다 보니까요. 옛날에 고시할 때는 고시생 만나냐는 이야기 들었을 거고요. 군바리 할 때는 그래도 단돈 십 원이라도 가져다주니까 조금 덜했겠죠. 결혼식 때 결혼식 인사말에 우리 키워준 부모님도 고맙고 우리 주변에서 우리 보고 있었던 사람들도 고맙다 작고 크건 그 사람들 손길 하나가 우리 두 사람의 삶을 만들어왔다는 말을 했는데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다 고마워요. 부모님께 조금 고맙다는 건 아니고요.” 


“스스로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에요?” 
“죽는 거? 중요한 질문이니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다시 여쭤볼게요. 스스로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에요?” 
“어렵다. 죽는 거요? 글쎄요. 남의 죽음 말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렇죠. 생각할 나이가 아니라서 그런가. 죽음? 뭐라고 생각해요? 명호 씨?” 
“전 그냥 내일 죽을 것 같아요.” 
“어디 아파요?” 
“그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금 더 열심히 또 더 솔직하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내일이라도 내일 모레라도 죽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됐어요. 멀지 않은 이야기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누군가 사고나 병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자랐거든요. 어떻게 사는지 내가 무슨 생각하면서 사는지 그렇게 고민하면서 사는 게 그래서 좋아요. 내가 죽지 않으면 누군가는 언젠가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거짓말 하지 않고 사는 것도 같은 의미이고요.” 
“죽음이라. 죽음은 잘 생각해보지 않아서요. 그냥 어떻게 죽으면 좋겠냐 물어보면요. 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김슬기의 죽음이 굉장히 잠잠하고 고요했으면 좋겠어요. 호들갑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죽었을 때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내가 어떻게 살았던 간에 나의 가족들과 나의 친한 친구들이 소박하게 기억하는 죽음이면 좋겠어요. 묘도 아주 작았으면 좋겠고요. 이상하게 그런 생각은 했어요.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영웅다운 사내다운 죽음을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슬기의 죽음을 국가장으로 치러주고요. 모르겠어요. 스무 살 때 스물한 살 때 그때는 그런 생각을 조금 했어요. 정치공부를 할 때라서 크고 웅장한 생각을 하고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요. 주제넘게요. 지금은 제가 맺었던 인연들이 아스라이 저물었으면 좋겠어요. 죽었으니까 확 잊히는 것보다 아스라이 잊히는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일단 생각나는 건요. 군대 있을 때 병사들에게 반은 장난으로 했던 말인데요. 야, 열심히 하자. 적성에 안 맞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되게 게을러요. 게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늦잠자고 일어나서 게임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게임이 아니더라도 그냥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해요. 드라마틱한 게 없었죠.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안 했고 재수씩이나 하면서도 열심히 안 했어요. 또 재수씩이나 했는데 점수도 안 올랐어요. 대학교 때도 학점 개차반이거든요. 고시도 그래서 실패했고. 취직도 열심히 했으면 진작 됐을 거예요. 늘 발등에 불이어도 오늘이 가장 다급한 법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안 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있으세요?” 
“이것도 군대에서 한 이야기인데요. 너네 그렇게 살면 형처럼 돼. 장난처럼 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는 하면 안 되겠죠? 글쎄 뭐가 있을까요. 남한테 무슨 말을 할 만큼 잘나지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그럼 그런 거 있잖아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러는 거예요. 슬기 씨 잘 지내요?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 잘 지내요?” 
“그냥 적당히 살아요. 되게 잘 사는 것 같진 않고요. 그렇다고 남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지금처지가 개차반인 것 같지는 않고요. 근근이 살아요. 하루하루 살아요. 절박한 의미에서의 하루하루가 아니라요.” 


“여기까지입니다.”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 없어. 
일상 속 대단한 만남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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