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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Mar 23. 2016

그녀는 웃었는데 나는 울음이 났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2 - 조예은(대구)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2 - 조예은(대구) 
2016년 3월 19일, 대구광역시 ‘스타벅스’ 대구계명대점 

그녀는 웃었는데 나는 울음이 났다. 그녀는 계속 웃었고 웃음 표시를 어디에도 달 수 없었다. 나는 듣는 내내 목소매를 당겨 입을 가렸다가 열었다가 했다. 대구에서 만난 그녀는 꼭 찾던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는데 서로를 잇는 부분이 여럿이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톡톡 튀었다. 그녀가 일을 생각하고 스스로 놓인 오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배우고 돌아섰다. 독립출판 ‘정직한 마음’에 그녀 이름이 적혔고 연락했고 약속을 잡았다. 느낌이 돋았는데 연락은 옳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는데 생각 속에는 이미 두텁게 다져둔 고민들이 있었다. 널려있던 고민과 생각들 사이에서 몇몇 이야기를 들었다. 응원하고 싶었고 응원을 얻었다. 


“짜잔. 요새 어떻게 지내요? 간단해요. 거창할 것 없이 편하게 이야기하면 돼요.”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 하고 틈틈이 친구들이랑 놀고 그러고 지내고 있어요.” 


“학교 생활은 어때요?”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4학년이고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데 뭔가 취업 압박감이 느껴지고요. 이제 진짜 늙었구나 그런 생각. 학교 안에서는 늙었구나 생각이 들고요. 그걸 느껴요. 20살 새내기들이 들어와 있으니까요.” 


“친구들하고는 어떻게 놀아요?” 
“같이 전시를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카페 가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옷가게가 있어요. 그런 곳에 가서 거기 언니와 이야기하면서 옷도 입어보고요. 그러면서 지내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는 뭐 해요?” 
“유○○○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어요.” 


“일은 어때요?” 
“너무 힘든데 할만 해요.” 


“음, 어떤 게 힘들어요?” 
“내가 업무에 너무 힘듦을 느끼는데 손님들에게 웃으면서 대해야 하는 그런 하는 거요. 내 기분과 상관없이 손님에게는 웃으면서 응대를 해줘야 하는 게 그게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힘든 거는 손님이 꺼내달라고 하는 옷이 내 손에 안 닿을 때 너무 높은 곳에 있을 때요. 그러면 또 사다리를 꺼내서 올라가서 꺼내고 또 손님이 입고 계산 안 하면 다시 사다리를 펴고 올라가서 넣어야 하고 그런 것들. 또 거기 조명이 센데 거길 올라가면 그 조명에 그대로 맞아요. 뜨겁고요.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외의 것들을 일을 하라고 시킬 때요. 그럴 때는 힘들죠. 사실 힘든 거 이야기 하라고 하면 하루 종일 이야기 할 수 있어요. 다 참고 하는 거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이야기해요. 돈이 웬수고 그렇다고.” 


“일은 얼마나 한 거예요?”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요.” 


“꽤 오래 했네요?” 
“오래 했는데 여전히 적응 안 되는 곳.” 


“일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요.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 있으세요?” 
“가장 좋아하는 건 산책하는 거요. 음악 들으면서 걷다 보면 생각에 빠지고. 그런 시간을 좋아해요. 그리고 요새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데 마음대로 잘 안 돼요. 좋아하는데 내 마음대로 잘 안 돼서 조금 그래요. 그런 것들을 더 잘 누리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요. 좋아하는 걸 잘하는 것이 어렵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또 좋아하는 거 있어요?” 
“그거 말고는. 음.” 
“그 정도면 돼요.” 


“옛날 이야기 해볼까요. 옛날 이야기에는 지금 모습이 다 녹아있더라고요. 지금 몇 살이죠?” 
“지금 스물 셋이요.” 
“그래요? 늙었다 늙었다 그래서 나이를 높게 봤어요. 놀랐어요.” 
“이렇게 만나면 제가 어린데요. 학교 안에서는 늙었다고 느껴요.” 
“초등학생 조예은은 어땠어요?” 
“음, 4학년까지는 되게 소심했어요. 지금도 소심하지만요. 내성적인 아이요. 반에 있으면 조용한 아이요. 그런데 이사를 한 번 하고 전학을 와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활발한 거예요. 그 친구들은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데요. 그 친구들 때문에 제 성격이 많이 열린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을 만난 이후로는 활발해졌고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잘 어울려서 놀고요. 초등학교 때 친구를 떠올리면 그 친구들밖에 생각이 안 나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같이 울고 같이 잠도 자면서 서로 초등학교 때 그러기 쉽지 않은데 서로 속상한 거 있으면 말하고 서로 같이 울어주고요. 그러면서 우정이 깊어진 친구들이에요.” 


“좋은 친구들이네요. 그 친구들은 아직 대구에 살아요?” 
“예, 대구에 살아요.” 
“좋네요.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없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지금 생각해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들을 초등학교 때 만나기 어려운데요.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이제 나이를 살짝 먹었어요. 중학생 조예은은 어땠어요?” 
“중학생 때는 아까 그 초등학생 친구들하고 같은 중학교를 올라갔어요. 그래서 중학생 때는 뭐랄까. 제가 공부를 좀 안 했었는데요. 그때 마음잡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건 사촌오빠 영향이 있었어요. 사촌 오빠가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요. 울면서 과거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오빠도 감정에 북받쳤겠죠. 그때 오빠 이야기를 듣고 공부를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날라리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중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했던 아이?” 


“고등학생 때는요?” 
“전학을 갔어요. 대구에서 군위라는 곳으로 전학을 갔어요. 도시에서 시골로 간 거죠. 같이 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던 것도 있었고요. 집에 사정이 안 좋아져서 이사를 간 거였거든요. 17살이었는데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거였어요. 어쩔 수 없으니까 가게 됐어요. 가게 됐는데 시골로 간 거니까요. 친구들도 헤어졌고요.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 하고 갔는데요. (박수) 거기서 연애를 했어요. (박수) 전학을 간 게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요. 연애를 했죠. 그리고 진짜 많이 울었고 진짜 많이 힘들었고 그랬었어요. 많이 힘들었던 시기?” 


“연애 때문에요?” 
“연애도 중요했고 대학교 입시도 중요했고요. 아빠랑 마찰도 있었고요. 선생님이랑도 마찰이 있었고요. 뭔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환경이 그렇게 되지 않았고요. 헤어지고 나서도 힘들었고요. 생각해보면 지금에서야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 친구랑은 얼마 전에 연락이 됐는데요. 그 고등학교가 어떤 곳이냐면.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어요. 길게는 유치원 때부터 계속 봐왔던 친구들이었거든요. 그 틈을 제가 비집고 들어갈 그런 게 없었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그 안에서 남자친구를 만난 거죠. 다 아는 사람들이고 그 시골에서는 누가 누구 딸이고 그런 거 다 알잖아요. 마을 어르신들도 이상하게 보고요. 대구에 있으면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요.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잡고 다녀도 쟤네 저런다고 하시고요.” 


“연애한다고 이상하게 보는 건가요?” 
“네. 그때 진짜 힘들었었는데 그 친구 때문에 행복했었던 건 있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조금 아직까지도 큰 의미여서요.” 


“다른 고등학교 때 기억 있어요?” 
“거기 가서도 진짜 친한 친구가 생겼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쭉 볼 친구. 초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과 같은 의미의 친구를 거기서 만났거든요. 그 친구는 대학교도 같은 곳에 들어와서요. 서로 의지하는 친구. 그때는 그 친구한테 열등감 같은 것도 느꼈어요. 

왜냐면요. 한 학년에 한 반에밖에 없으니까요. 성적 때문에요. 1등급은 1명이고 3등은 2등급 그랬거든요. 대구는 1등급 여러 명이 받을 수 있잖아요. 한 번은 소수점 차이로 1, 2등급이 서로 갈렸어요. 많이 의지가 됐지만 조금 경쟁.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동력이 많이 됐다고나 할까요. 지금은 서로 의지하고 챙겨주고 그래요. 솔직히 제가 의지를 더 많이 해요. 강한 아이 같은 그런 게 있어서요.” 


“대학에 이제 왔어요. 대학 생활은 어때요?” 
“사실 스무 살은 새내기 이런 음, 신입생. 선배들한테 이쁨 받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전 스무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집에서 용돈을 받긴 하지만 좀 불편했고요. 또 밑에 동생이 둘이 있고요. 난 맏이고. 뭔가 전 스스로 하고 전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그런 게 있었어요. 집에서는 맏이가 그래야 한다는 그런 게 없었는데요. 그래야 한다는 제 나름의 그게 있었고 또 편했고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스무 살다운 스무 살을 못 보냈던 것 같아요. 재밌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신나고 마냥 즐겁고 그랬던 것 같진 않아요. 스무 살 때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거였는데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 생활이라고 했다고 할까요. 제 노동력으로 돈을 버니까요. 

그러고 보니까 친구는 잘 만나는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 만나면 겉으로만 그렇고 속까지 친한 건 없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대학교 친구들 생각해보면 이 친구들하고도 속 터놓고 이야기 많이 하고요. 무언가 힘든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니까 의지되는 것도 있고요. 기숙사 생활 하다보니까 자주 만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야기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된 것도 같아요. 같이 많은 것들을 경험했죠. 같이 그냥 놀로도 가고요. 대학교 와서 친구들 잘 만난 것 같아요. 스무 살은 그냥 지나갔지만 그 이후 학교 생활은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은 욕심 같은 그런 게 조금 있어서요. 

대학교 들어와서 우연찮게 독립출판이란 걸 알게 돼서 책도 만들게 됐고요 그것 때문에 또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고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걸 해보고 싶었는데요. 그런 걸 하나쯤은 이뤘다고 생각해요. 전 스펙이라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거든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살짝 좀 불안하긴 한데요. 그렇다고 그런 것들을 안 쌓은 걸 후회는 없어요. 뭔가 나만 할 수 있는 걸 했으니까요.” 


“지금까지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뭐예요?” 
“사실 학교 안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대학교 다니는 이 나이 대에 가장 기억나는 건 1순위를 꼽자면 독립출판이고요. 2순위는 제주도 여행 혼자 간 거요. 사실 그때 친구가 같이 가고 싶다고 했는데 대신 같이 가도 여행은 따로 하자 했어요. 제주도 혼자 가고 싶었거든요. 작년이었는데요. 그때 메르스도 있었고 태풍도 불던 시기였거든요. 가지말까 그런 생각도 했었거든요. 메르스가 심해서요. 제주도에서 발생도 했거든요. 그래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빠는 혼자 가는 줄 몰랐거든요. 아빠한테 물어봤어요. 메르스 때문에 제주도 못 갈 것 같은데 가서 메르스 걸리면 어쩌지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빠는 그런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조건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사실 아빠가 혼자 가는 걸 몰라서 그러신 것 같아요. 그때 혼자 여행 한 것도 처음이었고 제주도란 섬에 간 것도 처음이었어요. 되게 신기한게요.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데 학교도 모르는데 대화가 되는 거예요. 한참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이름이 머예요 하는 거예요. 

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요. 비가 엄청 왔어요. 제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어요. 비가 오니까 웅덩이가 있는데 거길 들어갔어요. 비에 젖으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부르고 있는 장면이 밖에서 볼 것을 상상해 보니까 너무 예뻤어요. 물웅덩이를 발로 차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까 너무 예뻤어요. 

거기서 만난 버스 기사 아저씨도 너무 좋았어요. 제가 종달리에서 다시 서귀포로 돌아가야 했는데요. 그게 2시간인가 걸렸어요. 그게 마을버스였는데요. 버스 기사 아저씨가 여행 가이드처럼 마을 이름이랑 마을 유래 같은 걸 얘기해주는 거예요. 저보고 제주도 와서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 버스 아저씨가 운전을 하시면서 하모니카를 불어주시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도 하모니카 불어줄 때 있거든요. 그런데 그 느낌이 달랐어요. 솔직히 그런 말을 안 해줄 수도 있는데 저한테 하모니카도 불어주시고 그 아저씨가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그게 좋은 기억이에요. 솔직히 학교 안에서는 별로 그런 기억이 없어요.” 


“요즘은 어때요?” 
“요즘에는 가장 현실적으로는 취업. 취업보다는 졸업하고 나서 뭘 내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요. 집에서는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진 않지만요. 4학년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게 느껴져요.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힘들다고 들었거든요. 나는 안 그러겠지 그랬는데 똑같은 거예요. 나도 똑같구나 생각하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뭘 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닌데요. 노력하는 건 지금 당장 닥친 사소한 것들만 하고요. 무엇이 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닌데. 뭘 해야겠다 하는 구체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어떻게 되더라고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잘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모르는 게 사실 맞아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입시를 위해서 어쨌든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거의 내 생활의 90% 가까이를 보내잖아요. 그런데 대학교 들어와서 스무 살이 되고 한두 살을 먹으면서 날마다 새롭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어쨌든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하잖아요. 뭔가 할 걸 찾아야 하고요. 밥을 먹을 걸 벌어 살아야 하니까요.” 


“그럼 혹시 가끔 이런 것도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지금 당장 못 하더라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저는 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동생이 둘인데요. 그렇다 보니까 혼자 독립된 방이 없었어요. 집에는. 혼자 책도 읽고 싶고 좋아하는 노래도 크게 틀고 싶고요. 늘 동생들에게 방해를 받아야 했거든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런 공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 크면서 전 사라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살면서 생각해 보니까 점점 더 갖고 싶어지는 거예요. 거기서 커피를 만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마시고도 싶고요. 제가 읽으면서 좋았던 책들을 같이 읽고 이야기 하고 싶기도 하고요. 꽃꽂이 같은 것도 함께 해보고 싶고요. 그런 공간을 하나 가지고 싶어요.” 


“주변에 또는 지금 당장 생각이 나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요?” 
“아빠라고 해도 될까요?” 


“왜요?” 
“그냥 뭔가 좀 다그칠 때도 있지만요. 그 말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요. 제가 진짜 힘들 때는 정말 좋은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말 하나로 위안을 얻고요. 버틸 수 있는 힘. 그래서 아빠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요.” 


“좋은 딸이네요.” 
“그런데 어릴 때는 좀 그게 버겁기도 했어요. 왜냐면 너는 바른 아이로 자라야 한다는 게 있었거든요. 제가 망나니처럼 산 건 아니지만요. 그런 게 강했어요. 넌 항상 겸손하고 교만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고요. 나는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닌데 넌 그래야 한다고 해서 그게 버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게 제가 정작 힘들 때 되게 위로가 됐어요. 딸이나 아빠는 어떻게 보면 대화를 많이 안 하는 사이일 수도 있고요. 멀게 느껴질 것 같은 관계인데 아빠가 좀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얼마 전에 기숙사에 짐을 실어다주시면서 아빠가 그러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요. 4학년이 됐으니까 그런 말을 해줬을 거라 생각해요. 나는 네가 당장 취업 안 해도 좋다면서. 천천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해나가면 좋겠다. 결혼도 아빠는 똑같이 생각한다. 나이가 됐다고 해서 가는 게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는 거다. 그런 강박 관념 갖지 말라고. 그때 해도 괜찮다. 전 맏이고 동생들도 있고 하니까 그런 생각하게 되거든요. 취업도 해서 집에 보탬이 되고 싶고. 그런데 아빠가 그런 말을 해주니까 그게 그랬어요. 취업에 대한 부담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취업이나 결혼이나 제가 살면서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말라는 그게 정말 위로가 됐어요.” 


“지금 기억이 나는 가장 고마운 친구는 누가 있을까요?” 
“아까 고등학교 때 만났던 부름이. 심부름 할 때 그 부름이에요.” 


“왜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지만요. 경쟁? 그 친구 때문에 더 해야겠다는 그런 친구예요. 그래서 서로 윈윈하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랑 있으면요. 좋은 게 있으면 같이 하고 싶고 그 친구가 잘되면 나도 똑같이 잘되고 싶고요. 그 친구가 가장.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한 친구거든요. 그 친구랑 같이 있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여자를 남자들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좋은 거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요. 좋은 영화 있으면 같이 보러 가기도 하고요. 내 일상을 같이 해줄 수 있는 친구라서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이쯤에서 물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에요. 이상형은 어떤 쪽이에요?” 
“친구들은 다들 눈 높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이상형이라고 딱히 세워놓는 건 아닌데요. 제 느낌이 중요해요. 소지섭 같은 남자 같으면 좋겠지만요. 연예인 중에서 꼽으라고 하면요. 뭔가 듬직한 남자요. 그런데 좀 성격이랑 이런 건 저랑 맞았으면 좋겠어요. 같이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같이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빌려 줄 수 있는 사람?”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물론 하고 싶지만 살아가면서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그게 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그걸 알 것 같아요. 뭔가 결혼은 두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하는 거라는. 그게 좀 느껴져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어쩌면 미생 같은 존재인데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고 할 때 상대 쪽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을 해요.” 
“이런 걸 생각했어요. 전 손잡고 다니는 노부부처럼 늙고 싶은데요. 제가 옆에서 본 가족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나는 남편과 늙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너무 불가능해 보이는 거예요.” 
“전 사실 지금 비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거든요. 과거에는 제가 사는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았을 텐데 요즘은 또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꿈꾸는 모습이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 그렇게 늙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예요?” 
“음, 어, 그런 생각을 몇 번 해본 적이 있어요. 확실한 건 뭐랄까. 죽음이란 게 있으니까 제가 열심히 살게 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죽음이란 건 당장 내일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또 먼 미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뭐라고 한 가지로 답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하고 있고 그런 거라서. 그런데 제 친구는 꼭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힌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에 대해선 왜 그러지 싶기도 하고요. 죽음이란 게 있고 저도 피해갈 수 없으니까 더 열심히 살려고요. 진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게 되면 저는 더 열심히 교회를 갈 것 같아요.” 


“어떻게 죽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고통이 없이. 진짜 병으로 죽는 거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한 권의 자서전을 딱 내고 그러고 죽고 싶어요.” 


“스스로에게 해보고 싶은 말 있어요?” 
“요즘은, 괜찮다. 음, 조금 불완전한 세상이고 힘든 세상이고 솔직히 난장판 같은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제가 선택해서 나아가는 이 길이 불완전하거든요. 그런데 또 해야 한단 말이죠. 겁이 나고 이게 맞는 줄도 모르겠고 그래서 회의감도 많이 들고요. 누구 하나 너 잘하고 있어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요. 그래서 나 스스로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다, 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있어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같이 잘 해보자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솔직히. 인터넷에 떠들어대는 말들은 많지만 사실 사회에 나가면 자기 할 일 하기에도 바쁜 거죠. 세상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말은 많지만 바꾸려는 사람은 없고 다들 말 뿐인 거죠. 그런데 저도 노력해야겠지만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누가 ‘예은 씨, 요즘 잘 지내요?’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 거예요?” 
“약간 이런 말 들으면 인사치레로 잘지낸다고 하지만요. 솔직히 잘 못 지내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수업도 들어야 하고 시험도 쳐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고 돈은 없고. 뭘 해도 다 돈이고요. 사실 이게 지금만의 고민은 아니에요. 제가 살아가면서 계속 해야 하는 고민이에요. 인사치레로 잘지낸다고 말은 하지만 솔직히 누가 날 멀리서 봤을 때 잘 지내진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돈이 다가 아닌 걸 알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고 그러다 보면 학업을 잠깐 조금 미뤄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러면 또 내가 이걸 벌려고 공부를 이렇게 미뤘나 생각도 들고요. 그런 생각들이 너무 자주 드니까요. 겉으로 보기엔 놀기도 하고 수업도 듣고 월급 들어오며 내가 원하는 거 사서 즐기기도 하지만요. 솔직히 생각은 그렇게 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질문이에요. 오늘은 뭐했어요?” 
“오늘은 알바요.” 


“점심은 뭐 먹었어요?” 
“점심은 떡볶이요.” 


“떡볶이? 맛있었어요?” 
“맛있었죠. 맛있었는데 그걸 먹고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힘들었어요.” 


“어제는 뭐했어요?” 
“어제도 일을 하고 돌아와서 ‘태양의 후예’를 봤어요. 그걸 봤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조금 울기도 하고요. 친구 만나서 야식으로 컵라면 먹기도 하고요. 그랬었어요.” 


“내일은 뭐해요?” 
“내일은 동생 만나서 점심을 먹고 교회를 가겠죠. 그리고 친구랑 또 떡볶이를 먹으러 가요.” 


“여기까지예요. 고생했어요.” 
“혼자 있으면 정리가 안 돼요. 분명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정작하려면 잘 안 돼요. 사실 두 번째 출판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건 생각이 없었는데요. 제 책을 읽은 분이 두 번째 출판을 기대한다고 해서 그 한 사람 때문이라도 두 번째 출판을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요. 한 권의 책을 내서 반응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그렇다 보니까 작은 하나도 제대로 쓸 수 없더라고요. 이런 걸 요즘 고민해요. 저 요즘 생각 많이 해요. 많이 하네요?”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 없어. 
일상 속 대단한 만남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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