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옆 인간극장 173 - 최보규(대구)
목욕탕 옆 인간극장 173 - 최보규(대구)
2016년 3월 20일, 대구광역시 경북대학교 서문 인근
대구에 와서 찬 바닥에서 입김 호호 불면서 잤다. 나날이 춥고 거듭할수록 체력이 떨어져 더운 바닥을 찾아야 하나 생각했다. 이게 무엇을 하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흔들리는 시간을 반듯하게 접어 날리고 있을 뿐인데.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회복되지 않으면 과연 나는 어디로 가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덜어내고 자리를 잡는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무엇으로 회복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구에서 변변하지 않은 일만 할 생각으로 왔다. 그 사이에 ‘최보규’를 만났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느낌이었다. 시련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리 같은 사람이었다. 서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녹음할게요.”
“설레네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느낌이에요. 사실 사람을 소개시켜 준대서 여자인 줄 알고 기대했거든요.”
“다음에 소개해 줄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저 학교 그냥 학교 다니고 상상발룬티어 대외활동 하고 게임 하고 글 읽고 혼자 돌아다녀요. 오늘 아침에 보드 탔어요.”
“보드 배웠어요?”
“군대 휴가 때 할 게 없어서 샀었어요. 원래 게임하는데 너무 게임만 하는 것 같아서. 게임 말고 다른 걸 해보자 해서요. 게임도 재미없으니까요. 할 게 없어서 하니까요. 자주 타진 않아요. 이제 날이 풀렸으니까요. 자빠졌어요. 무릎도. (웃음) 차에 치일 뻔 했어요. (웃음)
“학교 생활은 어때요?”
“그냥 버티는 거죠 뭐.”
“특별하게 기억나는 학교 생활 있어요?”
“저희 과 교수님이 갑자기 성희롱 발언을 해서 다 놀랐어요. 그런 소문이 없었던 분이었는데요. 갑자기 숙제한 거 물어보다가 남자들이 다 안 읽어왔다고 했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여자들에게 질문하고 여자들은 대답하니까 그러면서 여자들을 좋아한다면서. 여자가 때리는 맛도 있다고 그랬어요. 갑자기 뭐지 그러면서 넘어갔어요.”
“문제가 된 거예요?”
“아니오, 그냥 제가 그 수업을 들었어요.”
“미쳤네요. 게임은 어떤 거 해요?”
“저 롤 해요. 방금도 하다가 왔어요. 한판 더 하고 올까 하다가. 재미라기보다 그냥 할 게 없어서 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음, 공부하면 좋을 텐데요.”
“하기 싫으니까요. 공부하면 좋을 텐데. 그래도 이제 좀 하려고 하고 있어요. 조금 조금씩.”
“전공은 잘 맞아요?”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는 거죠.”
“그럴 수 있죠. 상상발룬티어는 어때요?”
“아직까지 많이 모이고 그러진 않았어요. 모일 때마다 회식을 많이 해서 돈이 초반에 많이 나갔어요. 4월 2일에 처음 봉사하러 가는데 재밌을 것 같아요.”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은 뭐가 있을지 이야기 해볼까요?”
“저 쇼핑하는 거 좋아해요. 제가 사는 거 아니라도 저랑 보는 눈이 비슷한 애랑 같이 가서 옷 봐주는 것도 좋아해요. 안 맞는 사람이랑 가는 건 싫어해요.”
“다른 건 좋아하는 거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음, 재밌는 거. 웃기는 것 좋아해요. 병맛 개그 좋아해요. 라디오 스타 좋아해요.”
“음- 또 있어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요. 멀리가 아니라 학교 주변 이 정도? 시내 같은 데도 잘 안 나가요. 어디 좀 타고 가는 걸 잘 안 해요.”
“이제 그럼 몇 살이라고 했죠?”
“스물네 살. 빠른 년생이에요. 스물세 살인데 친구들은 스물네 살이에요.”
“그럼 어릴 때 이야기를 조금 해볼게요. 초등학생 최보규는?”
“울보였어요. 되게 많이 울었어요. 6학년까지도 많이 울었어요.”
“왜요?”
“그냥 되게 많이 울었어요. 힘 같은 것도 없고 겁도 많고요. 애들이랑 친하게 지냈는데 힘 있는 애가 장난치면 괜히 좀 억하심정 같은 것도 있었고요. 엄마도 어릴 때 너무 무서웠어요.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이 되게 좋은 분이라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데요.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난다면서 이야기 해주셨어요. 학교에 엄마가 왔는데 제가 100원인가 돈을 달라고 했는데 그걸 안 준다고 주저앉아서 울었대요. 그런 거도 생각나네요. 되게 많이 울었어요. (웃음)”
“중학생이 됐어요. 중학생 최보규는 어땠어요?”
“중학생 때 머리 좋았던 것 같아요. (웃음) 음 그런 것보다 집중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데 하기 싫은 걸 되게 안 해요. 수학,과학은 안 좋아하니까요. 집중을 못 해요.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질문하면 시간 끄는 것 같잖아요. 질문하고 참여하면 무언가 나대는 느낌 같은 게 있잖아요. 수업도 늦게 끝나는 것 같고요. 같이 하면 집중이 잘 되는데 일방적으로 하니까 점점 그러면서 공부랑 멀어진 것 같아요. 점점 멍만 때리게 됐어요. 아, 그리고 그때 머리가 좋았던 것 같다고 한 건요. 그때 애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요. 처음 시험을 쳤는데 전교 4등인가 했거든요. 저도 제가 그런 줄 몰랐는데요. 그런데 성적이 점점 내려갔죠. 열심히 하면 잘 나왔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열심히 안 해서 내려갔겠죠.”
“또 기억나는 중학교 때 기억이 있어요?”
“아, 칠판 지우개로 머리를 맞았어요. 선생님한테. 이상한 분이 계셨어요. 기술가정 선생님인데요. 유명했어요. 야한 이야기 많이 하고요. 화장실에서 술 먹고 애들한테 돈을 뿌리고. 그때 수업시간에 앞뒤로 앉아서 친구랑 장난을 치는데 선생님이 칠판 지우개를 저한테 던졌어요. 제가 피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지우개를 칠판에 문질러서 분필을 묻히는 거예요. 저한테 와서 머리를 잡고 문지르면서 맞았어요. 그리고 그때 친구랑 장난치다가 뺨도 맞았던 적도 있어요.”
“참 그렇네요. 고등학생 때는 어땠어요?”
“그냥 무난했어요. 싸움도 한 번도 안 하고요. 원래 싸움을 안 하는데 중학교 때는 한두 번 정도 했었어요. 그때 제가 문과를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가 관심 있는 게 다 문과 쪽에 있었거든요. 경제통상이나 회계, 무역, 통역 이런 걸 해보고 싶었는데요. 제가 문과를 더 재밌어 하기도 하고요. 그걸 고르는데 엄마가 남자는 이과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시길래. 그리고 제가 문과가 선택의 폭이 좁다고 하잖아요. 제가 거기서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문과 친구 중에서 노는 친구가 많아서 그게 휩쓸릴까 걱정을 했어요. 그래서 이과로 갔고 대학에 왔는데 학교는 마음에 드는데 배우는 게 좀 안 맞아서요.”
“대학생이 됐어요. 20살 최보규는 어땠어요?”
“자기비하가 되게 심했어요.”
“왜요?”
“그냥 멘탈이. 지금도 약한데요. 감정 기복이 되게 심했어요. 되게 좋아하던 아이랑 사귀었는데 전 너무 이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절 그렇게까진 안 좋아하는 것 같고 또 그게 잘 안 돼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병신이구나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런 짓도 많이 했고요.”
“21살 최보규는 어땠어요?”
“그때는 군인이었는데요. 그때 그냥 괜찮았던 것 같아요. (웃음)”
“22살 최보규는요?”
“그때는 제가 인생에서 제일 좋았던 때 같아요.”
“왜요?”
“그때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고요. 외적으로도 운동 같은 거 하니까 피부도 되게 좋아지고요. 살도 빠지고요. 시험 치는 것도 잘 되고요.책 같은 것도 많이 읽고 하니까요. 제가 무슨 뿌듯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제 인생의 리즈 시절 같아요. 왜 하필 군인 때. (웃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도 받았거든요. 그때 군인이었거든요. 왜 이렇게 잘 되지 생각했어요.”
“23살 때는요?”
“아, 작년이구나. 그때도 22살 때의 연장이었어요. 서로 진짜 좋아했던 아이를 사귀었거든요. 상말인가 병장 때 사귀었어요. 제가 전역하고 칼복학 했는데 그 친구는 마산에 살고 저는 대구가 학교니까 어려웠어요. 처음엔 마냥 좋았죠. 집 사정도 전역하면서 좀 안 좋아지고요. 전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많은데 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 거죠. 잘못된 게 아니란 걸 아는 게 아닌데 뭔가 치여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말실수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그때 1학기 공부가 진짜 힘든 과목이 있었어요. ‘자료구조학’이라는 게 컴퓨터공학과의 꽃이라고 하거든요. 처음 배우면 진짜 어렵거든요. 제가 C언어를 할 줄 알면 좀 나을 수도 있지만. 그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공부도 좀 안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아마 중간고사 결과 나오고 헤어졌을 거예요. 시험을 봤는데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안 나온 거예요. 시간만 많이 쏟고 잘한 공부는 아니었거든요. 그때 많이 실망한 일이 있어서 그때 헤어지고 인생 최대의 암흑기를 보냈어요. 제가 롤 아이디를 휴가 나와서 할 게 없어서 일병 때 만들었거든요. 그때는 게임을 많이 안 했어요. 제가 만렙이 30인데. 헤어지기 전까지는 23이었는데 2년 정도 했는데도. 그런데 헤어지자마자 1주일 만에 만렙을 찍었어요. 그냥 자기 싫은 거 있잖아요.”
“올해는 어때요?”
“올해는 잘 모르겠어요. 뭔가 한 게 되게 많은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요. 1월에 해외봉사를 인도로 갔었거든요. 베트남도 놀러갔었어요. 그런데 남들은 보면 많이 한다고 하는데 전 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게임만 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어떨까요?”
“앞으로는 제가 이런 문제가 되는 걸 느끼고 있어서 이걸 아예 안 하진 않더라도 뭐가 중요한지 아니까 최소한의 건 하면서 놀지 않을까요. 제 입으로 이걸 말하긴 그렇지만요. 제가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군대 다녀와서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공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도 잘 못 하고 그런 걸 잘 안 하려고 했거든요. 군대에서 그 성격을 많이 고쳤어요. 군대에서 남들 귀찮아서 생활관에서 쉬고 있을 때 전 다녔어요. 전역했으니까 해보자 그래서 과대도 해보고요. 할 건 많이 없었지만 그런 자리에 서본다는 생각으로 해보고요. 초등학교 때 부반장 한 번 한 거 말고는 한 번도 없었거든요. 발표도 진짜 하기 싫어했는데 있으면 해볼게 그러고요. 제가 안 좋은 면을 바꾸려고 되게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 혹시 해보고 싶은 그런 일이 있을까요? 버킷리스트 같은 것처럼요.”
“그거 해보고 싶어요. 버스나 지하철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거. 유럽여행도 해보고 싶어요. 그건 그런데 너무 먼 일 같아요. 최근에는 종점에서 종점까지 혼자 앉아서 노래들으면서 가는 거 하고 싶은데 귀찮아서 안 하고 있어요.”
“또 있어요?”
“제가 남 앞에 서서 발표 같은 걸 잘 못 한다고 했잖아요. 공연이나 발표를 제가 남 앞에서 제가 잘했다고 느낄 정도로 잘해보고 싶어요.”
“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요?”
“태원이 형. 예전에 주별이라는 친구가 대구 왔을 때 대구 투어 시켜줄 거라고 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떤 곳이라고 다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걸 듣는데 되게 배려 같은 거 많이 해주셨어요. 진짜 착해요. 뭘 해도 될 형 같아요. 그 형은 여행 진짜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저는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그 형은 여행 이야기를 하면 눈빛이 달라져요. 진짜 좋아하는 게 티가 나요. 아이처럼. 그게 너무 멋있었어요. 처음부터.”
“지금 떠오른 고마운 친구 있어요?”
“아 있어요. 성민이. 아까 자취방에서 친구랑 밥을 먹는데요. 원래 한 명이 요리를 하면 한 명은 설거지를 해요. 전 아무 말 안 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죠. 제가 말하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상형은 어때요?”
“전 인성은 무조건 바탕으로 깔고요. 1순위 그런 게 아니라 무조건 바탕으로. 첫 번째가 개그 코드가 잘 맞아야 해요. 두 번째는 옷 입는 게 되게 잘 입는 게 아니더라도 뭔가 느낌 같은 게 제가 좋아하는 느낌이 있어요. 뭐라고 설명하기 좀 힘들어요. 외모는 키 좀 작고 귀엽게 생긴 스타일 좋아해요. 볼살도 좀 있고요. 눈이 예쁘고요. 좀 세게 생긴 스타일을 싫어해요.”
“스스로에게 그럼 결혼은 어떤 의미예요?”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좋겠죠. 좋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계속 붙어있으니까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긴 하지만요. 저희 집이 되게 화목하거든요. 그래서 재밌게 잘 지낼 것 같아요. 제가 돈을 많이 벌 자신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자신은 있거든요. 좋은 아빠나 좋은 남편이 될 자신은 있어요.”
“스스로에게 죽는 건 어떤 의미예요?”
“무서워요.”
“어떻게 죽고 싶어요?”
“하나도 안 아프게 죽고 싶어요. 아픈 거 싫어요. 하나도 안 아프게 잠들었는데 주변 사람도 아 죽었구나 하는 그런.”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좀 더 멘탈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시련에 약한 것 같아요. 힘들고 그런 것에요. 대학교 공부할 때도 좋아하는 과목만 계속 공부하는데요. 억지로 하긴 하는데 집중도 되게 안 되고요. 원래 다 그런 거겠지만 그런 걸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껴요.”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요?”
“없어요. 자기 알아서 살겠죠.”
“누가 그랬어요. ‘보규 씨 잘지내요?’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냥 산다. 그 뒤에 질문 오면 거기에 대답하겠죠.”
“어제는 뭐했어요?”
“어제는 거기 갔어요. ‘스텐딩피플’이라는 곳에서 하는 ‘나대구산다’에 갔었어요. 이번에 사람들 모아서 여자 남자 조를 꾸려서요. 뭐 잘 하면 상품 받고 그런 건데요.”
“어땠어요?”
“그냥 그랬어요. 솔로대첩 같은 거예요 느낌이. 알고 보니까 다 지인, 지인들이 온 느낌이더라고요. 딱히. 그리고 친구가 오페라 보러 가자고 해서 오페라 보고 왔어요. 처음 봤어요. 대학생들이 하는 건데요. 생각보다 감흥이 없었어요. 그냥 경험이죠.”
“점심은 뭐 먹었어요?”
“집에서 스팸이랑 김이랑 김치랑 계란이랑 멸치, 무말랭이랑 먹었어요. (웃음)”
“이제 이거 끝나고는 뭐할 거예요?”
“원래 공부할까 해서 가방을 들고 왔는데요. 친구가 PC방에 있어서 거기 갈까 생각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공부는 하려고요.”
“내일은 뭐할 거예요?”
“학교 가야죠. 뭐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학교 가야죠.”
“더 하고 싶은데 못 한 이야기 있어요?”
“그냥 이런 거 하는 게 신기해요. (웃음) 제가 이런 걸 하는 게.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저 영혼 없는 칭찬 되게 잘해요. 그런데 이건 진짜 진심이었어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멋진 사람들이야 너무 멀리서 대단한 걸 찾지 마, 없어.
일상 속 대단한 만남 「목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