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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un 14. 2016

그녀는 오늘 결혼을 합니다.

아빠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그녀의 결혼을 축하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녀는 오늘 결혼을 합니다.

나는 참으로 긴 시간을 돌아
아빠에게 약속한 것들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또 무너질 듯하던 우리는 어느새 다시 자리를 잡았네요.

그녀가 오늘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결혼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보고 싶었을 아빠, 
우리 박회민 씨는 마음 속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동인천 병원 501호에 들어갔을 때
“엄마와 누나를 잘 부탁한다.”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오늘을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할 때
더 서로를 걱정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더 아프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다소 빠르지만 내 마음 속에는 느리게 자리잡은 아빠의 목소리,
잘한다, 괜찮다, 부지런해라, 누나에게 미안하다, 엄마에게 잘해라, 들었는데,
오늘 아빠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그녀의 결혼을 축하할 수 있어 기쁩니다.

어린 기억 속 그녀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무엇이든 잘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에 반해 나는 엄마도 아빠도 그녀 말도 듣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했습니다.

내가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도
어느 나라와 어느 지역을 계속 여행 다닌다고, 또 신문사를 한다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길에서 책을 팔거나 전국을 여행하고 제주에서 몇 달이나 돌아오지 않아도
스타트업을 한다고 또 다시 긴 여행을 떠난다고
다시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한 번도 화를 내거나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비며 엄마를 걱정하는 일이며
늘 그녀에게 미루었는데
오늘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나보고 이제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기를 몇 편 옮겨 그녀와 얽힌 작은 기억들을 소개합니다.
나는 그녀와 별 추억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일기장 가득 그녀가 등장했습니다.



2006년 6월 29일, 내 휴대폰 뒷자리 번호는 누나랑 같은 1515이다. 누나는 9179 1515, 나는 9153 1515. 쌍둥이 같아서 좋다. 

2007년 1월 9일. 아빠의 50번째 생신. 무엇을 해드릴까 고민했는데, 문득 가족이 다 모여 영화를 보러 간 게 기억조차 나지 않더라. 누나 반, 나 반씩 비용을 부담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본 영화는 ‘박물관이 살아 있다.’

2007년 9월 25일, 누나 생일이었다. 그냥 어영부영 지나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다. 케이크를 사오긴 했지만 이건 뭐 당연히 사와야 하는 것 아닌가. 갖고 싶은 게 있다는데 그거라도 사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2008년 4월 25일, 병원에 들렸다 누나가 신발 사준다 해서 동인천 좀 돌아다니다가 살만한 게 없어서 보류. 그리고 신포시장에 들려 누나가 먹고 싶다던 맛있는 공갈빵도 먹고 닭강정은 집으로 사와서 드라마 보면서 먹었다. 복잡한 일이 가득한 날, 누나 좀 짱인듯.

2010년 3월 12일, 군대에 있는데 엄마에게 편지가 왔다. 요즘 누나는 명호 신문사 다닐 때처럼 아침 먹고 새벽까지 일해. 완전 힘들어. 감기도 오고.

2014년 12월 7일,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처음이 엄마였고 다음이 누나였다.



그녀는 성격은 조금 급하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조잘조잘 말이 많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건성이라도 계속 들어주길 좋아해요.
그녀는 제가 빼앗은 여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많이 놓치고 지냈어요. 여행이나 공부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꼭 억지로라도 해볼 수 있게 해주세요. 전 꼭 그녀가 여행을 더 하고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사소하게 아플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되도록 옆에 있어 주세요.
그녀는 엄마를 걱정할 때가 많아요. 이건 제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녀는 옆 사람을 잘 챙기는 만큼 스스로를 놓칠 때가 많아요. 그녀를 때때로 챙겨 주세요.


나는 그녀가 결혼을 해서 좋습니다.
성격이 안 좋아서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네요.

사실 틈틈이 보긴 했지만 어떤 사람을 그녀가 선택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도 갔었습니다. 그녀는 ‘오빠’라고 불렀고 나는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이 며칠을 지내도 도통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건 고양이 ‘나가’의 영향도 조금 있습니다. 요망한 고양이가 사람을 홀렸습니다.

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단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베트남이라는 먼 곳으로 가겠지만
나는 그녀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을 믿고 또 응원합니다.        


결혼 축하해. 
누나, 우리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도 오늘처럼 만나자.
누나, 고맙고 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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