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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배쓰 Jul 31. 2020

[요요교환일기] 시즌1 20화

푸는 것

저는 호수마을이라는 곳에 삽니다. 우리 집 앞에는 호수공원이 있습니다. 우리 집 뒤에는 호수초등학교가 있고요. 그 초등학교 앞에는 빵쟁이라는 조그만 빵집이 있는데요. 여기는 가끔 제가 몽블랑을 사 먹으러 오는 곳일 뿐입니다. 특별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하지만 이곳은 비싼 리코타 치즈를 쓰지도 않고 희귀한 재료로 사람을 당황시키지 않습니다. 가장 세련(?)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리브 치아바타와 언제부턴가 유행을 해서 안 만들 수 없다고 하시는 “앙버터” 정도이지요. 대부분은 감자를 으깨서 노오란 치즈를 얹은(그 치즈맛은 실로 앙팡!) 감자빵 이라든지, 길쭉하고 부드러운 빵에(깔고 앉으면 아주 얇아져 빵인지 신문인지 모를) 생크림을 짜넣은 생크림 샌드, “치즈랑 소시지랑”이라는 정겨운 이름의 빵, 통조림 콘을 마요네즈와 잔뜩 올린 “콘치즈”라는. 귀엽게도 재료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사용한 빵들이 대부분이지요. 유기농이라고 하며 한입 먹고 더 이상 입을 대지 않는 아무 색채 없는 빵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보기만 해도 무슨 맛 인줄 알겠는 그런 빵도 아닙니다. 미국에서 갓 건너온 듯 으스대는 거대한 크림 쵸코도 아니고요. 그냥 주변에 값싸고 제철인 과일이나 통조림, 땅콩 같은 걸 사용하는데. 그게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담백하지도 그렇게 헤비 하지도 않아요. 색깔로 치면 약간 상아색 같아요. 제 나이쯤 되는 초딩학생의 엄마들은 아이를 아주 여유롭게 기다립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좋아요. 요즘은 일이 끝나고 이곳에 자주 앉아있는데요. 노오란 봉고차들이 파스텔색의 아이들을 하나, 둘 태워가는 모습을 보아요. 조그만 비비탄 콩들을 노란 봉지에 모아 모아 통통 튀는 태권 용사로, 피아노 위에 흐르는 콩나물로, 바둑알로 변신시켜주러 데려갑니다. 그리곤 하늘은 뉘엿뉘엿 해가 빨갛게 지고는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마 저 뜨겁고 빨간 것을 악당으로 보고 얼른 내 세끼 챙겨서 끌어안고 둥지로 데려가는 것 같아요.

특별함을 엄청나게 찾고 배우고 남들과 다른 것을 찾아다녔고, 아직도 찾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보리차가 우러나듯 천천히, 그렇지만 자연스러운 속도로 약간 슴슴한 것들이 좋아집니다. 우리 동네가 좋은 이유가 차곡차곡 쌓이고 코딱지만 한 우리 집이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저의 일터는 30분을 허허벌판을 걸으면 다다르는 곳이라 동료들과 요즘 전기자전거를 이슈 삼아 수다를 떨곤 합니다. 이곳이 아니었으면 절대 전기자전거 같은 건 검색도 안 해봤을 텐데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켜주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니체의 말”이라는 책에서 철학을 갖지 말라는 얘기를 보았어요. 개똥철학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가 봐요. 그때그때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새롭게 또 느끼고 배우고 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가 봐요. 특별히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곤 그림 그리는 건데, 그리고 칠하고 어떤 거로든지 편집해서 맘에 들게 만들고 나면 (신체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스스로가 마음적으로 풀려 있어요.

모두 방법은 달라도 뭐가 좀 풀려야 되는가 봐요. 스트레스도 “푼다”라고 하니 말이죠. 우리의 요요교환일기도 이렇게 20화를 “풀다” 보니 조금은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로 잘 “푸는” 삶을 기도해보아요. 문제를 풀고 삶도 풀고 브래지어도 기냥 풀어버리는 자유를 위해!!


오늘의 요가


똑같은 회사에 같이 입사한 동기들끼리도 누구는 넘치는 관계의 미학으로 적응하고 누구는 능력 하나로 적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허덕이기도 합니다. 금방 퇴사하기도 하지요. 요가도 각자의 속도를 갖습니다. 누군가는 몸을 앞으로 접는 전굴에 최적화되어 있고, 누군가는 후굴이. 누군가에게는 페널티가 적용되어 한 박자 쉬어가기도 하고, 정형외과 진료를 병행하며 가기도 하고, 육아로 짧은 시간 수련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아예 천성적으로 느리게 가야 하는 상황도 있고요.

제가 요요교환일기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요가를 한 초창기에는 “왜 나는 왜 안될까?”였어요. 나도 저렇게 똑같이 하고 싶다. 저는 팔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 암 발란스에 정말 최악화 되어있었는데. 몸보다 욕심만 앞서서 여기저기 근육이 뭉치는 날이 많았지요. 근데 요가에 좀 더 시간을 들이면서 어느 순간 각자의 능력과 수련의 정도 안에서도 충분한 수련이 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코브라 자세에서 팔을 다 피지 못하면 반만 펴서 가슴을 들고 발등을 눌러보는 일에 집중을 하면 돼고요. 물구나무서기에서 다리가 들어지지 않는다면 다리를 드는 연습을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원리요. “언젠간 꼭 하고 말겠어!”라는 마음도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더라고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갖고 있는 숙제들을 튼튼한 나의 매트 위에서 풀어가는 작업이 요가 같아요.




[요요교환일기] 시즌1 을 마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코로나가 한창일 때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글을 나눴습니다. 멀리살지만 어렸을때 매일 붙어살던 친척언니같이 굉장한 끈끈함이 느껴집니다. 힘님의 글을 읽는게 설레이는 기쁨이었습니다. (또, 요즘 제가 요리를 해요!)

헤비 요가 러버에게 있어서 요가를 소개한다는 것은 가장 흥분되고 즐거운 일인데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자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마스떼~




양배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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