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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일리 Sep 04. 2020

지우개를 의심하게 됐다

올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코로나로 입학식도 못 치른 채 두어 달을 집에만 있다 드디어 책가방 매고 학교에 가는 날이 왔다. 연필을 곱게 깎고 지우개와 자를 넣어 필통을 챙기니 드디어 1학년 엄마가 된 실감에 내 마음도 함께 부풀었다. 학교에서 지우개 가루를 쓸어 담을 미니 빗자루와 쓰레받기도 챙겨 달라 하여 짱구가 그려진 플라스틱 제품을 함께 보냈다.


아이는 지우개 가루를 열심히 만들어 내고 또 그것을 쓸어 담으며 하루하루 학교에 적응했을 것이다. 그러다 지우개가 절반도 뭉뚝해지기 전에 방학이 되었고, 이어서 온라인 개학을 맞이했다. 학교보다 집에서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하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책상은 금세 지우개 가루로 어지러워지곤 했다.


귀찮은 지우개 가루. 하지만 유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환경부가 펴낸 <학용품 현명하게 구입하기>라는 안내 책자에서 매우 유용한 힌트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안내 책자의 다른 장에서는 PVC복합염화비닐, 특히 PVC 지우개의 환경 및 건강 유해성이 설명되어 있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정보를 알지 못했던 걸까? 아니, 더 제대로 말하면, 왜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걸까?

-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210~211쪽


관련 정보를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도에 환경부에서 <착한 학용품 구매 가이드>를 발간한 적이 있고, 2017년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했지만 거의 매년 학용품에서 프텔라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 이상 적발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사방은 지뢰밭이며 안테나를 쫑긋 세우고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집에 있던 지우개를 모아 포장지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입에 넣으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용출될 수 있으니 입에 넣지 말 것." 플라스틱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가소제 성분은 성장기 어린이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평범한 학용품인 지우개에 경고 문구가 실리게 된 이유다.   


지우개뿐만이 아니다. 알고 보니 연필, 필통, 코팅된 공책 등 PVC가 안 들어간 학용품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알록달록하고 향기나고 반짝반짝한 학용품들일수록 위험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다이옥신을 발생시킨다고 하니, 이러한 제품을 사용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관련 근로자들 또한 위험지대에 놓이게 된다.

 

시중에 '프탈레이트-free'혹은 '라텍스-free'라고 알려진 지우개도 있지만, 원재료가 플라스틱인 이상 어디까지 신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소제 성분 없이 어떻게 지우개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free'라는 문구에 마음을 놓을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의 산드라처럼 천연고무 지우개를 사줘야 하나 싶어 검색해 보니, 잘 안지워지게 생겼다. 그렇다면 그나마 덜 해롭다는 지우개와 타협해야 하나. 오늘도 갈팡질팡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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