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모든 순간을 그대에게 보냈다, 그대가 알지 못하더라도
노인은 이런 자리가 어색한 듯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노인에게 마스터는 가만히 술잔을 밀어주었다.
평소처럼 색감이 예쁘거나 모양이 특이한 칵테일이 아니라 날렵한 잔이었는데 그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소주인지 보드카인지 혹은 고량주인지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는 왠지 모르게 꽤 쓰고 독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노인의 투박한 손은 잔을 잡는데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잠시 손에서 잔을 굴려보다가 한 입에 털어 넣고는 살짝 인상을 쓰며 안주로 나온 과일을 집었다. 거칠고 단단해 보이는 그 손에는 오래된 나무의 옹이처럼 굳은살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정년퇴직이 이제 정말 코 앞입니다. 다행히 큰 애와 작은 애는 시집, 장가를 다 보냈으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지런히 살다 보니 집도 마련했고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으니 연금에 보태서 어떻게든 살 수는 있겠습니다만은, 회사를 나가지 않는 제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마누라랑 같이 슬슬 여행이나 다니면서 사는 것도 좋겠지요. 현명한 아내를 둔 덕에 애들도 잘 컸고 집안 살림도 풍족해졌으니 남은 평생은 마눌님 손을 잡고 함께 늙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그려지질 않아요. 회사에서 일하는 제 모습은 자세, 표정까지 모두 그려지는데 집에서의 제 모습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평생 일만 하느라 가정에 소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째까지 장가를 보내고 나니 집 안이 휑해졌습니다. 어느 날은 마누라랑 술 한잔이 하고 싶더군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산책이나 다니고 미뤄뒀던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자는 말에 그저 웃더군요. 그래서 신혼 때 약속했던 대로 하와이에 폭포를 보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 아내가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신혼 때의 약속을 제가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해 줄 사람이었거든요.
아내는 말없이 자신의 잔에 담긴 술을 마셨습니다. 아내가 묻더군요. 그 폭포가 사실 하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느냐고.
사실 신혼 때 데이트를 하다가 갔던 막걸리 집에서 하와이 사진이 인쇄된 달력을 보고 여행을 약속했거든요. 달력에 박힌 사진에는 하와이 폭포라고 적혀 있기에 한 번도 그것이 하와이에 있는 폭포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죠. 그게 하와이에 있는 폭포가 아니었어? 하고요. 아내가 가만히 고개를 젓더군요. 아무렴 어떠냐 싶어서 같이 그 폭포에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켜고는 말했습니다. 마치 한숨처럼.
이제서요?
뭔가가 많이 담겨 있는 그 말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겨우 입을 열어서 이제라도 같이 갑시다. 혹시 애들하고 같이 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는 있었지만 내심 그 폭포가 하와이에 있는지 아닌지가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런 기색을 알아차린 건지 아내가 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첫째가 대학가던 날에 당신이 말했죠. 이제야 인생이 ‘궤도’에 오른 것 같다고. 당신의 그 ‘궤도’에 우리도 함께 있었나요?
속이 답답했습니다. 반박할 말은 수천 가지인데 도저히 입 밖으로 토해낼 수가 없더군요. 하와이 폭포는 아내에게 약속한 곳이었기에 가고 싶었습니다. 제겐 그곳이 하와이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았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저는 아내와 약속한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가는 곳인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도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아내의 얼굴에는 그 특유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습니다. 익숙한 체념. 당연한 실망.
어쩌면 아내는 제가 이제야 지키려는 약속조차도 관성적으로, 해야 하니까 하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그러니까 둘째가 걷기 시작했을 때 아내는 조용히 제게 다가와 적금을 깨자고 했었습니다.
아이 둘에게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공장의 작업반장 월급으로는 아이들에게 풍족하게 뭔가를 주기가 힘들었어요.
그때쯤 회사에는 모두가 기피하던 자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장기 근속자 해외 지사 파견자리였는데 제가 그 자리로 가면 공장관리자가 되고 직급도 부장이 되는 자리였죠.
저는 그걸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죠. 아내는 상의도 없이 부장이 된 저를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옆구리를 꼬집기도 하고 가슴을 치기도 했죠. 그저 저만 조금 참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풍족하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제 ‘궤도’는 가족이 우선이었습니다. 가족이 없다면 제가 굳이 말도 안 통하는 해외까지 나가려 하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그 말을 입 밖으로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하던 둘째는 제가 파견에서 돌아왔을 때 국민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졸업식날 어색해하던 둘째와 정면만 째려보던 첫째를 잊을 수가 없어서 그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운한 것도 어쩔 수가 없었죠.
아내는 제 얼굴만 보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눈치였습니다. 새로 채운 잔을 한입에 털어 넣고서 아주 천천히 제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첫째가 처음 친구와 다퉜던 날, 학교에서 아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듣고 집에 돌아와 우는 딸을 붙잡고 아내도 펑펑 울었다더군요.
그 울음을 들은 둘째는 다음날 첫째를 놀리던 녀석들을 찾아가 빗자루로 후려쳤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둘째를 잡아다 종아리를 때렸는데 첫째가 둘째의 종아리를 감싸 안고서 제가 잘못한 거라고 울면서 빌더라는군요.
아내는 또다시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을 얼싸안고서 아빠는 곧 돌아올 거라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첫째는 놀리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만 떡볶이를 사주었답니다. 그렇게 자기편을 만들자 놀리는 녀석들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둘째 놈은 다시는 놀리지 않을 때까지 친구들을 두들겨 팼다더군요. 덕분에 학교 문턱이 닿을 정도로 드나들던 아내는 서로 잘 지내길 바라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게 했답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미리 준비된 먹을 것을 먹고 늦게까지 놀다가 퇴근하며 아이들을 데리러 온 아빠나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개중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친구들을 보면 첫째와 둘째는 한참이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라는군요. 그러다 슬며시 제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는 가만히 엄마를 안아주었답니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을 재우고 빈 안방에서야, 흘러나오는 울음을 조금씩만, 아주 천천히, 소리 죽여 꺼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했던 아내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물기가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보고서야 저는 제가 서운해하면서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를 어색해하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가 무엇을 희생해서 아이들에게 풍족함을 주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거실 저쪽으로 보이는 거울에 반백의 늙은이가 보였습니다.
홀로 의자에 앉은 늙은이. 어깨는 처져있고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한. 그저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왔던 늙은이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분명히 우리를 위해 달렸고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는데 왜 혼자가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처량한 늙은이가 있더군요.
돌이켜보면 파견에서 돌아온 이후에 제게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렸고 저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니까요.
해외에서 혼자 생활할 때에는 그토록 상상하고 꿈속에서까지 그리던 가족과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 주말마다 여행을 가고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고, 차가 막히고, 날이 추워졌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자라고 말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약속을 미루고 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주말에는 자는 아빠를 깨우지 않게 되더군요.
주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고 제 곁에는 집안일을 하느라 피곤한 아내뿐이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아이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도 이제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죠.
저는 그런 모든 상황이 서운했습니다. 제가 희생하고 참고 버틴 것은 가족, 그러니까 우리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끔씩은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약속을 미리 잡곤 했습니다.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아이들과 아내, 그러니까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가족 식사자리를 만들곤 했죠. 하지만 묵묵히 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가기 바빴습니다. 거기에 무언가 말을 하면 속이 좁은 아버지로 보일까 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는데 저는 여전히 서툰 아버지라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정년퇴직이 일 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앞날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 인생의 ‘궤도’는 명확했는데 앞으로는 가야 할 길을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와 함께 곱게 늙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주었으니 이제 제 삶을 살아야 하는 거겠죠.
저와 제 아내를 위해서만 살면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남편이 되었을 때, 아빠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지금은 어떤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명감도 당연히 없죠. 그저 저는 어떻게 해야 돈이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아내를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의 ‘궤도’에 아내도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회사원이 아닌 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 마음이 많이 어지럽습니다.
제가 살아온 방식이, 그 희생과 인내의 시간들이, 이런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면, 저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걸까요.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기만 했는데 말이죠. 왜 저는 반백의 늙은이가 되어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걸까요.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말을 마친 노인의 어깨 위로 흘러간 노래가 떠다니고 있었다. 노인이 젊은 시절 유행하던 쓸쓸한 가사의 노래. 청춘의 쓸쓸함을 담담하게 읊조리는 노래는 노인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노인의 곁을 맴도는 그 노래를 따라 노인의 어깨가 조금 더 축 처지는 듯했다. 마스터는 그런 노인을 흘낏 바라보고는 슬쩍 잔을 바에 내려놓고 밀어주었다.
“이번 칵테일의 이름은 ‘일상(日常)’입니다. 먼저 계피향을 음미하시고 끊지 말고 천천히 끝까지 들이키세요. 시원하고 청아한 느낌이 먼저 입 안에 퍼지고 이후에 뜨거운 목 넘김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은은하게 뱃속을 따뜻하게 해 줄 겁니다. 이후에는 목 안쪽에서부터 익숙한 허브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겠지요.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마셔야 그 끝까지 조화로운 칵테일의 맛이 느껴지실 겁니다.
비범(非凡)은 평범(平凡)이 있어야 하고 품 안의 소중한 것은 멀리 있어야 비로소 그 가치가 제대로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 한잔의 칵테일로 그것들을 알아보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다행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말이죠.”
노인은 홀린 듯이 잔을 집어 들었다. 특별할 것이 없는 투명한 술. 아까 받았던 술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잔까지 같았다.
노인은 잠시 술을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노인은 지금까지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을 천천히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