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조금 울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2023년 6월 26일 월요일
하루 종일 흐리고 비는 오락가락
일주일 정도 일을 쉬었고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같이 일하는 우리들에게 서로 마음을 다잡을 일이 생겼다. 새로운 기술자가 들어왔고 나는 잘해야 할 이유가 늘었다. 처음과 다르게 조금씩 주눅 들고 있는 나를 사장동생이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우리는 얼마나 머무를지 계획도 없이 그저 바다로 왔다. 단합대회식으로 움직인 셈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금방 배울 듯했는데 늦어지는 내가 동생은 답답했고 도저히 몸에 붙지 않는 일들이 나는 답답했다.
결론은 더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뿐이었다.
비가 그친 하늘엔 온통 먹구름뿐이었다. 먹구름이 아닌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노을이 질 때 즈음에 바람이 많이 불면서 바다처럼 구름도 파도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잠깐씩 하늘이 드러나면서 저무는 해와 그 사이로 물드는 하늘이 보였다. 하늘 위의 구름이 빠르게 굽이치고 있는 것을 보며 이 모든 것이 다 흐르고 지나갈 것이란 걸 느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저 검은 구름이 지나가고 사이사이로 보이는 저녁놀이 선명하게 보이기를, 어떻게 둘러봐도 아름다운 색뿐인 저 하늘이 내 눈에 가득히 보이는 순간이 오기만을 바랐다.
구름에 가려 더 멀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아름다운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미래만 보고 사는 것도 참 못할 짓이라고. 지금을 묵묵히 견디고 그 끝에 있을 것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결국 행복한 것일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고 해서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결국 지금 뭔가를 쌓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진 나중엔 후회만이 남을 테니까. 뭘 하든 뭔가가 남는 것을 해야 한다.
마흔에 일을 그만두고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스물에는 그래도 되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는 소리였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나는 그저 주어진 것만 열심히 했을 뿐이다.
나는 그걸 노력이라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사람들은 모두 그 정도는 한다. 사람들은 그걸 노력이라고 하지 않고 당연한 일라고 생각한다. 학생은 공부, 회사원은 일을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인 것처럼.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찾아서 더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사람들이더라.
가족을 부양하는 부모님, 쉬는 시간에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원, 시간을 쪼개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까지.
다른 것은 둘러볼 여유조차 없는 그런 사람들을 보자니 내가 해왔던 노력은 그저 버틴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서웠다. 얼마나 더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난 이미 버티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있는데. 숨이 턱 끝에서 더 이상 쉬어지지 않을 것처럼 깔딱거리고 있는데. 매일 몇 번이나 한숨을 쉬고 가슴을 달래 가며 나를 다잡고 있는데.
이런 게 너무 싫어서, 평생 이러고만 살 것 같아서, 한 번 돌아보지도 못하고 경주마처럼 인생을 끝까지 그저 달릴 것만 같아서 트랙에서 벗어나 조금 쉬자고 생각했는데. 잠시 눈을 감고 한참이나 나를 달래고 나서야 세상일은 참 쉬운 것이 없구나 싶었다.
-물론 학생 때는 일종의 튜토리얼이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튜토리얼.
-나는 튜토리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고 취직했던 직장을 벗어나니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바로 찾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나는 싫어하는 것도 구분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그저 나와 동생만 보고 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트럭 하나를 장만하셔서 지방을 돌며 일거리를 찾아다니셨다. 아침이든 야간이든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연락이 오면 바로 이동해야 했기에 처음 자리를 잡기 전에는 차에서 자는 일도 수두룩 했다고.
어머니는 작은 미싱공장에서 일하셨다. 미싱으로 할 수 있는 일거리는 다 받아오셨는데 가끔은 방에 앉아 인형 눈을 붙이기도 하셨다. 동생은 엄마는 바늘로 뭐든지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나는 동생에게 맞장구치며 아빠는 뭐든 실을 수 있으니까 엄마랑 아빠가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작은 재봉틀은 새벽에도 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처녀 적 재봉공장에서 총괄일을 해봤던 덕에 이렇게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참 감사한 일이라 말했다. 아버지는 총각시절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 덕에 트럭일을 배우고 가끔 그들의 일을 대신하던 것들이 나중에 와 운 좋게 잘 풀린 거라고 하셨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드디어 집에서 출퇴근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미싱이 새벽에는 잠이 들던 시기였다. 그 시기의 나는 그저 내일의 숙제와 준비물과 내년에 있을 월드컵 대진표가 더 중요할 뿐이었다. 아마 부모님은 내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가끔 너도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그때는 참 싫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뭔가를 알 것만 같은, 그럼에도 아직도 대부분은 모르겠는 지금에도 부모님의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심지어 어머니도 다시 그렇게 살라면 이제는 못 산다고 하시는 그런 것. 부모였기에 할 수 있었다고 말하시는 그런 일.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주 작지만 그것이 구르고 굴러 하나의 세상을 이룰 만큼 커질 때까지 버티고 그 안에서 점점 커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지금 어머니는 행복하다고 하신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고생이 후회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글쎄,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삼십 년을 기다려서 다가오는 큰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좀 나누어서 미리 받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더 게으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결국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사실 더 큰 행복이 아니어도 좋으니 지금 힘들고 아픈 게 좀 덜했으면 좋겠다. 내가 뭐 재벌 총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인생은 아프기만 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묵묵하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직 초입인데도 나는 이렇게 몸부림을 치는데 말이다.
날이 어둑해지고 우리는 바비큐를 굽고 술을 마셨다. 머리가 복잡해서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든 기술자들을 뒤로하고 나는 조용히 펜션을 나섰다. 시간이 늦어 펜션 외곽 불이 꺼진 상태였다. 밖은 어두워서 한 치 앞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꼭 내가 일하고 있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한발 한발 계단을 걸어내려 간 후에 나는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조금 적응되면 뭔가가 더 보이겠지. 그래. 조금씩, 그리고 결국엔 적응이 될 것이다. 적응이, 되길 바란다. 나는.
바비큐를 할 때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다시 돌아가 우산을 들고 한참이나 해변을 걸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반복되는 파도 소리, 그리고 멈추지 않는 내 발소리 사이로 아주 짙은 어둠이 차곡차곡 쌓인다.
문득 아무도 보지 않는 이 어둠 속에 가만히 숨고 싶어 진다.
그 속에 숨어 다 키워놔서 행복하다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조금 울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비 오는 날의 바닷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역시 밖은 춥다.
-세상은 춥다는 걸 알고 나왔지만 그래도 추운 건 어쩔 수 없다.
아내의 가내家內공장, 반지하방의 방 한 칸
방 한 가운데, 다른 가구家具들은 다 밀어내고
그 방의 주인처럼 앉아 있는 아내의 재봉틀,
양철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맨발의 빗소리 같은 경쾌함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자급자족할, 지상地上의 집 한 칸을 꿈꾸고 있다
지금, 토담 안의 마당에서는 하늘의 재봉틀인 구름이
비의 빛나는 바늘로 풀잎을 깁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깁고 있을 것이다
모든 생명들을 기운 자국 하나 없이 깁는 고요한 구름의 재봉틀,
그 천의무봉의 손이듯, 아내의 구름인 재봉틀은
지상의 마지막 옷, 수의를 지으면서도
완강한 생활의 가위로 시간의 자투리까지 재단해
가계(家計)의 끈질긴 성질을 깁는다
김신용,『환상통』, 천년의시작, 2005, 「아내의 재봉틀」중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아도, 세상은 굴러간다. 나는 또다시 잠들고 내일 일어나야 하며 돈을 벌어야 먹고 자고 입을 수 있기에 출근해야 한다. 그저 버티고 서있는 것만으로 입가에 자꾸 거품이 올라오지만 도저히 쉴 수가 없다. 다들 앞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나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버티고만 서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더 못나 보이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여기에 버티고 선 것도 대단한 일이다. 누구랑 비교할 것도 없이 내가 거품 물고라도 서 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고 저기 하늘을 보고 빗소리를 들으며 가끔 글을 쓰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전 직장에서는 출근해서 호객을 하고 모르는 이들에게 먼저 살갑게 인사했다. 흥정하는 이들에겐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판매를 했다. 심지어 고객대응을 잘한다고 다른 점포로 판매를 위한 파견을 간 적도 많다. 그 때의 나도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말을 못 붙였다. 마이크를 처음 잡았을 땐 입도 못 떼고 오분 넘게 그냥 서 있기도 했다. 그래.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나온 펜션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내가 머무는 곳이기에 돌아가야 할 곳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버텨보자. 잘해보자. 정신 차리자. 아직은 도저히 안된다는 말을 할 때가 아니다.
나는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약해질 때까지, 그래서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까지 바닷가에 한참이나 서서 펜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등을 떠미는 파도소리에 밀려 발을 내디뎠다. 여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최선을 다해보자. 계속 되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