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일기 - 소소한 관심이 필요한 거죠
2023년 6월 16일 금요일
하늘은 맑고 날은 더움 바람이 불지 않아 그냥 땀이 흐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날이라 일을 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하루 종일 헐떡이며 어떻게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워크넷에 올려놓은 이력서의 구직 기간이 종료되었다는 문자.
처음 일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보려 할 때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했다. 카드를 신청하면서도 어떤 기술을 배워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기술 이름을 보고 동영상을 찾아보면 어떤 일이든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해야 한다면 조금 수월한 일을 하고 싶었다. 덧붙여서 일이 많고 가게를 차릴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보았다. 당연히 그런 일이 쉽게 보일리 없었다. 해서 어떤 강의를 선택해야 하나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신청한 카드가 나오기도 전에 동생에게 연락이 와서 다른 기술을 배우게 되었지만 어쨌든 막막했던 상황에서 내일 배움 카드는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라 여겼었다.
구직 기간이 종료되었다는 그 문자를 바라보는데 정말 내 구직이 종료가 되어 다른 일을 찾아볼 일이 없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제 정말 평생직장을 찾은 걸까. 아니면 평생직장이란 것은 그저 꿈결 같은 이야기일 뿐인 건가. 뭐가 됐든 얼른 일에 적응해서 쉬는 날이면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끄적이다가 낮잠을 자고 싶다. 전 직장은 그러기가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웠으니 새로운 직장은 그런 게 가능해야 할게 아닌가.
동생에게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내가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지지부진하여 나 스스로도 답답할 정도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는 동생도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다. 다행히 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포기를 입에 담지는 않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하다 보면 될 거라고, 서로 다독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가끔은 나도 간사한 사람이라 다른 길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생기긴 한다. 그럴 때면 괜히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생긴다. 형이라고 신경 써주고 있는데 헛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일부러 더 일찍 출근하고 뭐라도 더 해보려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이십 대라면 아무 생각이 없이, 더 빠르고 수월하게 기술을 배울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든다는 건 키가 자라는 것이 멈춘 이후에, 키 대신 겁이 자라나는 거라서 자꾸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쉽지가 않다.
-이 부분은 갑자기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는 미친놈이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반대로 아예 앞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 듯하다.
-오늘을 잘 사는 건 좋지만 미래가능성을 끌어다 오늘에 다 써버리면 내일부턴 길바닥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춥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서 가게 인수를 권유하는 연락이 왔다. 치킨집 사장인 친구는 이 일도 괜찮다며 일을 알려주겠다 했다. 좋게 좋게 전화를 끊으면서 전철 밖을 보니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다들 정해진 목표가 있는 듯이 거침없는 그 발걸음을 볼 때면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전 직장 동료는 프랜차이즈 슈퍼를 해볼 계획이니 오라고 하고.
전 직장 상사는 새로 하는 일에 인력이 부족하니 와서 일해볼 생각은 없나 물었다.
누구는 함께 배달대행을 해보자고 하고.
누구는 투자를 하라고 했다.
내가 흔들리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 이런저런 권유들이 많아진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 웃기는 건 누군가의 권유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거다. 그래도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은근히 내 자존감을 채워준다. 계속되는 거절이 결국 아무도 나를 찾지 않게 하겠지만 그동안에 내가 해오던 일의 방식이 틀리진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은 내가 너무 무식하게 머슴처럼 일하니 부려먹기 편한 사람을 찾는 거라 이야기하긴 하지만.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 누구나 바라는 행복한 일이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아주 소소하지만 오늘, 나를 찾아주었던 친구의 전화가 참 고마웠다.
친구는 이런 걸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좀 더 났다. 그래서 친구의 의도와는 반대로 조금 더 일을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래서 결국 기술을 배우지 못해 관두더라도 미련은 남지 않도록 조금 더 내 일상을 끌어 써보기로 했다.
-원래 친구라는 건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지. 한마디라도 안지는 종자들.
어쩌면 가게 인수자를 찾는 친구의 무작위 전화일지도 모르지만 주소록에서 내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그 소소한 관심이 작은 자존감이 되어 나를 다독여주었다. 어쩌면 이런 아주 작은 것들이 나를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운을 돋아주기 위한 의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내가 성실하게 일해 왔기에 친구가 일할 사람으로 나를 떠올린 것이기에 괜히 기운이 난다.
살짝 기분이 나아지니 불안하기만 했던 구직 종료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까짓 거 종료됐으면 필요할 때 또 신청하면 되지. 가만히 통장 사정을 떠올려보았다. 한 달여 정도 쉬고 바로 일을 시작했기에 아직 퇴직금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그래.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그러니 치킨집 인수하라는 전화를 하지.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퇴직금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정 안되면 까짓 거 치킨 튀기는 거 배우러 친구에게 가면 된다.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집중해서 잘해보자. 정신 차리자.
-통장이든 텅장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애인이든 불안할 때면 무언가 마음의 추가 필요하다.
-자빠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지탱해 줄 무언가.
-내 경우에는 퇴직금이 마음의 추가 되어 주었다.
스스로를 달래며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 집 앞의 정육점을 발견했다. 오늘은 금요일. 동생이 본가로 온다고 한 날이다. 그래. 기분을 달래는 데에는 가족과 함께 먹는 고기가 최고다. 간단하게 물에 된장 풀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수육을 좀 준비해 봐야겠다. 아마도 동생은 고기를 먹으며 뭐라도 트집을 잡을 테고 어머니는 그저 맛있다고 하실 거다. 그러면 그냥 설거지까지 내가 한다고 해야지. 기분 좋게 결심을 했다. 내가 느낀 소소한 관심이 우리 가족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 아침이 아름다운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직은 김장이 많이 남아 있고, 쌀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철이 정상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동대문부터 불광동까지 추운데 걷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는 손주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아이로 내 새끼, 내 똥강아지.”라고 부르며 즐거워하시고, 아버지는 조금 힘들어 하시지만 아직은 건강하시다. 그리고 오늘도 휴대전화가 울리며 여기저기서 나를 호출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잊히지 않았다. 고로 이 아침은 아름답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도 행복을 건져 올릴 수 있습니다.
김창완,『안녕, 나의 모든 하루』, 박하, 2016, 「불현듯 행복」중에서
이제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 그럼에도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너무 달라서 그저 입 벌리고 듣기만 하게 되는 이야기다.
오늘은 내가 친구의 소소한 관심에 행복해했다만 처음 치킨집 권유를 들었을 땐 아마 짜증을 좀 냈던 것 같다. 이제 시작해 보려는데 초부터 친다고.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비슷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해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일단 화부터 나더라. 한 번 겪어보고 시간이 지나 그때의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곁들이고 나니 조금 천천히 받아들이고 한 박자 쉰 후에 화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 한 박자 쉰 화는 내기도 전에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같은 상황에서만 화를 참을 수 있다. 새롭다는 건 놀라게 한다는 의미도 포함이어서 놀라면 화들짝 소리부터 질러야 하는 것 아닌가. 크크크.
책장에서 먼지나 먹고 있던 이 책이 생각난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많은 에세이들 중에서도 이 책을 구매했던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아침 라디오 프로를 오래 진행한 경험이 녹아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어서 조금 이해하기가 쉬웠다는 점. 모든 이야기를 공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겪어본 몇 가지들에서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뜬구름 잡기 식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책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사실 아직도 누군가에게 마냥 고맙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지만 소소한 관심에 감사를 표하고 나면 내 마음이 편해지더라. 내가 사는 게 편하려면 작은 것들에 감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화나면 화를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