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원래 보이지 않는다

느린 일기 - 비가 오면 꽃을 달고 싶어요

by 블랙스톤

2023년 6월 8일 목요일

비 오고 천둥도 치고 텁텁한 날씨


황금 같은 휴무에 종일 비실비실하게 비가 내렸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천둥 번개가 치는 희한한 날이었다. 딱 귀신 이야기하기 좋은 날이었지만 내 나이 대에 친구들은 열심히 회사에서 구박을 받거나 구박을 하고 있을 시간이라 그저 뻐근한 다리를 주무르며 오전을 보냈다. 학창 시절부터 희한하게 왼발만 다쳐서 그런지 날이 궂은날은 왼다리만 쑤시곤 했다.

-사실 체중이 불어나면 제일 먼저 아픈 곳이 왼발목이다, 범인은 야식이다! 난 피해자라고!


왼발목이 쿡쿡 쑤시는 것이 날씨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살이 붙어서 그런 것 같아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다. 새벽부터 비가 오고 간간이 천둥 번개가 쳐서 그런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빗소리를 감상하며 해가 슬슬 넘어가기 시작하는 동네 뒷산을 천천히 오르며 십 분 만에 후회를 시작했다.

오르막에서 아래로 빗물이 흘러 내려오며 슬리퍼 안에서 발이 헛돌았고 몰아쉬는 내 숨소리 때문에 빗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어찌 됐든 출발은 했고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거리가 되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꼭대기 정자까지는 가기로 했다. 물론 가는 내내 후회를 할 테지만 열심히 구시렁거리면서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투덜거리면서도 어찌 됐든 끝까지 가보려 하는 건, 싫다 싫다 하면서도 학교든, 숙제든, 학원이든, 다녔던 경험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처벌이 무서웠고 지금은 더 나약해질 내 마음이 무서운 차이밖에 없다.


내가 사는 산동네는 정말 많이 변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위쪽 언덕 하나만 넘어가면 판자촌이 있었다. 아랫동네로 내려가면 지하철 공사를 하겠다고 한창 땅을 파고 있었고 도로마저도 이차선 도로라서 인도도 없던 그 길을 손을 들고 걸어 다니곤 했다.

-공사 막판에는 그래도 가벽을 통해 인도를 만들어 주었다.

-다만 그 높이가 애들 허리 높이라서 허들을 넘듯이 장난을 치며 걸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지역처럼 보여서인지 오히려 사고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아파트 촌이 되었고 걸어서 오분 거리에 지하철이 생겼으며 아파트 입구에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서 있다.

-어렸을 땐 마을버스 단 한 대가 세 개의 동을 왕복했기에 정류장에서 기다리느니 걸어서 시장을 가곤 했었다.


당연히 이 뒷산도 많이 변해서 이제는 공원도 생기고 길도 조금 넓어졌다. 어렸을 적 이 근처 놀이터에서 야구를 하다가 공이 놀이터를 넘어가면 주우러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힘껏 휘두르기 금지 조항이 있었다. 설렁설렁 휘두르는 야구라도 친구들과 노는 것이 참 재밌던 시기였다.

어렸을 때 뛰놀던 뒷산을 오르면 그런 재미가 있다. 조금 걷다가 여기는 힘껏 휘두르기 금지 야구를 했던 장소고, 저기 살던 녀석은 아침에 못 일어나서 맨날 지각을 했었고, 이쪽에서는 개에 물렸었지, 아직도 저 건물이 남아있네, 저기는 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 뭔가 했던 장소 같은데, 아, 저기는 골목에 앉아 친구 기다리다가 친한 척하라던 형들에게 끌려가 돈 뺏긴 곳이네. 에이.

우산을 쓰고 슬금슬금 걸으면서 혼자서 키득거렸다. 가끔은 혼잣말도 하고 잠깐 서서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우산에서 나는 빗소리와 함께 혼자 걷으니 예전 생각들이 우산 속으로 마구 밀려들어왔다. 여전히 신발에서 헛도는 발이 불편했지만 우산 밑에 옹기종기 몰려든 추억들 덕에 기분은 괜찮았다. 산을 오르며 조금은 흥얼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동네 뒷산 꼭대기의 정자는 비어 있었다. 빗줄기가 약해져 시야는 탁 트여있으며 강 너머 강남의 번화한 건물들이 보였다. 예전에는 저 멀리 서울 끝으로 예상되던 산까지도 보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겨 산은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저 멀리 남산 근처까지 탁 트여있었으나 현재는 동네에 늘어선 아파트 덕분에 동네 밖도 보이지 않는다. 자꾸 돌아가는 슬리퍼에 평소보다 더 힘을 주고 걸은 덕분인지 왼쪽 다리가 처음보다 더 쑤셔서 일단 정자 가운데 마른자리에 주저앉았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보다는 내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찬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높은 아파트와 건물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입장에서는 앞에 보이는 것들을 지나 그 뒤의 것들까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느끼는 재미이기도 했다. 이런 재미, 풍경, 추억을 알기에 이곳이 내게 재미있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거지만 부모님 손에 끌려온 아이들은 어느 방향에나 건물만 보이는 풍경이 재미있을 리 없다. 그래서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것들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다.


가끔 산에 올라 정자 근처 운동기구나 표지판 사이를 부유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든다. 운동기구를 타보기는 하지만 운동 자체보다는 뭔가 흥미 있는 일을 찾아 돌아다니는 아이들, 정자 근처를 벗어나지는 못하면서도 이리저리 방황하는 그 뒷모습이 왠지 나를 닮았다.


흥미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사십춘기.

어른을 향해 순조롭게 자라다 슬쩍 한눈팔더니 길에서 벗어나 기웃거리는 어른이.

나는 아직도 확고한 자세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가정을 이루고 목표를 설정해 그것을 위해 죽어라 달리고 있다.

나만 뒤처진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처럼 달릴 수가 없다. 뭔가 다른 재미난 게, 평생 할 수 있을 만큼 재미난 게 있을 것만 같아서 도저히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열심히 살 순 있지만 그렇게 십 년을 살아보니 별로 재미가 없더라. 어차피 살아야 하는 거라면 뭐라도 재미있는 걸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걸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매일 나를 위로한다. 나를 위로하고 칭찬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나이가 들면 칭찬도 듣기 힘들지만 위로도 듣기가 참 힘들다.


얼마나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엉덩이를 타고 찝찝한 습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무 바닥이 분명히 말라 보였는데 습기가 가득했는지 팬티가 엉덩이에 착 붙는 것이 느껴졌다.

뭐, 오늘은 거리에 사람도 없는데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하는 순간에 등산로를 통해 어르신 두 내외분이 슬슬 올라오고 계시는 게 보였다.


설마 싶어서 슬쩍 내 엉덩이를 돌아보았다. 느낌뿐만 아니라 분명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도 엉덩이 모양이 훤히 드러나도록 진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누가 봐도 중년인데 바지 적시고 다니면? 게다가 동네에서!

-하필이면 주황색 반바지를 입어서 젖으면 빨갛게 티 난다고!


지금 이 순간,

내 목표는 명확하다.

엉덩이를 잘 가린 상태로 어르신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집으로 가는 것!

아니면 가실 때까지 여기 앉아있어야 하나?

아. 엉덩이가 시려오는 것 같았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아침에 눈뜨면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내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그 놀이터
-자전거 탄 풍경,『선생 김봉두 O.S.T』앨범, 2003.03.27. 「보물」중에서





망까기가 뭔가 했더니 비석 치기였구나. 일기 밑에 덧붙일 뭔가를 찾다 보면 뜻하지 않게 어렸을 적 기억을 소환하는 것들이 많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것에서 덧붙여야 하니까. 찾다 보면 이상하게 최근보다는 전에 봤고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 중에 고르게 된다.

추억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시간이 지나 퇴색한 것들 사이에 여기저기 탈락하고 조금 남아 고색창연하게 빛나고 있는 것. 그 강렬했던 한 장면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어렸을 적 동네 이야기는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떠오르는 그때의 추억을 음미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정자 근처에서 놀이기구처럼 운동기구를 타는 모습을 떠올리며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자탄풍의 보물이란 노래였다. 괜히 옛 생각에 미소를 짓게 하는 노래다.

-마빡이로 기억하면 됩니다!라고 하려다 마빡이마저도 이제는 추억의 인물이란 것이 떠올랐다.

-아, 그럼 설명 못함. 죄송.


퇴사 이전에는 정말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다. 십 년 동안 배우고 쌓은 것이 있는데 두리번거리고 싶다고 다 때려치우는 셈이었으니까. 이미 적응은 끝났고 성과도 어느 정도 나온 상태였기에 그대로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그대로 있는 게 너무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새벽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십 년을 가만히 곱씹어 보았다.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내 가슴에 어렸을 적의 추억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남은 것이 없었다. 그것이 너무 이상하고 또 불안했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 같아서.

막상 저지르고 나니 재밌다. 미친 짓은 그래서 하는 거다.

어떤 날은 후회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힘들고 뒤질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몇 달 지나지 않았음에도 누나와 걸었던 남한산성과 학암포의 그 바다와 오월 오일의 지하철 할머니 같은 몇몇 장면이 내 가슴에 남았다. 나 혼자 앉아 키득거리며 꺼내볼 추억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즐거워졌다.

물론 기술을 배우고 가게를 차리고 성공을 해야 정말 즐거운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