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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Feb 17. 2024

135개국 여행자, 스티븐

전 세계 국가는 몇 개나 될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영국 캠브릿지에서 온 스티븐을 만난 뒤였다. 전 세계의 국가 수 통계는 단일하지 않았다.

유엔에서 발표한 국가 수는 195개국이었고 세계지도사는 237개국, 그리고 국제표준기구인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에서는 249개국을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인정하는 국가는 228개국이었다.

그중 ISO에서 인정하는 국가수가 가장 많았다. 국가로 인정한 숫자가 가장 높은 ISO를 기준으로 했을 때, 유엔은 54개국이, 세계지도사에는 12개국이 누락되어 있다.


동그란 지구본 위에서 대한민국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기분일까? 물론 그렇게 발표한 기관에서는 저마다의 합당한 근거와 이유는 있겠으나 세계지도와 유엔과 같은 기관에서 누락된 국가들을 생각했을 때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책이나 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통해서 읽었다. 135개국의 여행자를 만나게 되다니, 대단한 이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은 여행 경비였다. '돈 많은 부자일까? 그런 사람이라면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지는 않을 테지. 그럼 여행이 직업일까?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너희 아빠 부자니?”

“NO"

"그럼 너는 론니플래닛에서 일하니?"

“NO"

“그럼 너는 어떻게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거야?"

“나는 7개월만 일을 하고 나머지 동안은 여행을 다녀.”

“오. 네 직업은 뭐야?”

“.......”     


구체적인 직업은 끝내 듣지 못했다.  말하지 않는 것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영어에도 한계가 있어 더 묻지는 않았다.  7개월 일하고 5개월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직업은 뭘까,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나이가 들어서도  단기취업이  가능한가? 청년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던 나로서는 그의 직업과 영국의 취업 시스템이 더 궁금했다. 스티븐은 서른 살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일을 병행하며 지금까지  135개국을 여행한 것이다. 대단한 지구별 여행자다.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지구별 여행자’들이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버스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별 여행자로 나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람의 딸 한비야 씨가 떠올랐다.

오지여행가로 알려진 한비야 씨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세계 여행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기록한 책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나도 그녀의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과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그리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을 읽으며 세계여행의 꿈을 꾸었다. 비야 씨의 책을 읽고 여행을 꿈꾸며 가슴이 뛰었던 사람이 어디 나 한 사람뿐이었겠나! 비야 씨나 스티븐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여행 경험을 읽고 듣게 되면서 나도 가능하다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일본 여행가가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나와 같이 사는 지구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저마다 여행의 목적은 다르겠으나 여행을 통해서 지구별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공감력이 확장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기아로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과 전쟁 없는 세계는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스티븐은 성실한 여행자였다. 5개월 여행자의 가방치고는 그의 짐은 단출했다. 배낭하나와 작은 배낭하나가 짐의 전부였던 그의 가방에는 카메라, 노트북과 여행노트가 들어 있었다. 그가 노트북을 꺼내면서 “네가 가고 싶은 나라를 말해봐.”라고 말했다.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를 노트북으로 보여주었다. 노트북에는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에는 대부분 대자연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사진은 아마추어의 솜씨는 아니었다. 사진을 보면서 그의 직업이 포토그래퍼일가 싶어 물었지만 그는 웃을 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론니플래닛 작가니?”라고 물었던 이유는 그가 손 글씨로 쓴 그의 노트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기장 크기 정도 되는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노트에는 그가 갔던 곳과 입장권과 명함 같은 것이 붙여 있었다. 그의 노트에는 배꽃집 명함이 붙여 있었고 명함 밑에는  그가 쓴 글이 적혀 있었다. 아주 오래전 나도 그런 여행노트를 가진 적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못해 그만두었다. 개인의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한 기록물치고는 꽤 많은 정성과 수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출판인이 스티븐의 여행 노트를 보았다면 당장 출간을 하자고 덤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명함, 입장권과 그가 다닌 장소가 기록되고 잘 정리된 그의 여행 노트가 나에게도 탐나는 물건이었다.     


스트븐이 잊지 못할 게스트로 기억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음식을 대하는 그의 특별한 태도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두 번 조식을 제공했다. 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뜯어 나물을 무치고 정갈하게 김치를 썰어 차린 밥상이었다. 그는 내가 준비한 음식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워냈다.

내 음식이 입에 맞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으로 기뻤다. 하지만 꼭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배꽃집 근처 식당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고 난 뒤였다.

그가 저녁으로 선택한 메뉴는 제육볶음이었다. 그는 제육볶음뿐 아니라 상추, 쌈장, 마늘, 청양고추까지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나와 식당 주인은 놀라서 남겨도 괜찮다는 말을 해 주었지만 스티븐은 웃으면서 모든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우리는 여전히 ‘음식은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것이 더 낫다’라는 생각을 한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나 여행을 갈 때도 풍성하게 준비한 음식을 옆 사람과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좋은 풍습이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지나쳐서 버려지는 음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지구 어디에서는 먹을 음식이, 물이 없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티븐이 밥알 하나, 입에 맞지 않았을 마늘 한 조각까지 남기지 않고 먹는 모습에서 음식을 대하는 그의 경건한 태도 같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135개국을 여행한 ‘초록별 지구 여행자’가 가진 위엄이었다.


네가 갔던 나라 중에서 나에게 추천하고 싶은 나라는, 그리고 이유는 뭐야?


"네가 보고 싶은 나라를 말해봐."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며 스티븐이 나에게 말했다. 

그의 노트북에는 그가 여행했던 135개국이 여러 개의 폴더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가보고 싶은 국가를 말하고 스티븐이 폴더를 열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3시간 가까이 사진을 보았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랜선으로 하는 여행도 힘들었다.


"네가 갔던 나라 중에서 나에게 추천하고 싶은 나라는, 그리고 이유는 뭐야?"  

이제는 그만 봐야겠다고 두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하며 내가 스티븐에게 물어봤던 말이다.

"스페인." 그가 주저 없이 대답을 했다.

"왜?" 궁금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꼭 봐야 할 5가지를 메모지에 적어 주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스페인에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주 많아. 그것도 아주 싸게."

'싸다'는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왔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스페인에서 배를 타면 갈 수 있는 나라가 많았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나라 모로코만 해도 배를 타고 1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저렴한 방법으로 다른 대륙으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건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다.

스티븐의 추천을 듣고 난 뒤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하는 여행지도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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