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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Feb 18. 2024

한국인 3세 지자님

'뿌리'가 뭘까 생각하게 된다.

   

배꽃집의 주인님

저번엔 아주 즐거운 이틀을 지냈습니다. 앞으로 제가 강화서실에 갈 때마다 배꽃집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행복한 느낌이 듭니다.

쑥이 몸에 좋다는 말씀을 따라 친정집에서 쑥떡을 만들어 봤어요. 맛이 괜찮고 우리 어머니도 기뻐하셨어요. 한국에서 자라신 할머니께서 해 주신 쑥떡이 많이 생각이 난다 하시면서요.

아무래도 나이 드신 어머니에겐 수수로 떡 만드시기가 좀 그러니까요. 효도도 하게 되고 맛있는 걸 먹게도 되고...

배꽃집주인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지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쑥떡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위가 좋지 않다고 해서, 쑥이 위에도 좋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어 특히 여성에게 좋다는 말씀을 드렸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와 쑥떡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쑥떡을 만들어 시진으로 보내왔다. 떡에서 지자님과 어머니의 정갈한 손맛이 느껴진다. 쑥떡보다는 일본 모찌와 더 비슷해 보였지만, 찹쌀의 부드러움과 속에 든 팥 고명의 달콤함이 혀에 느껴지며 입에 침이 고였다. 모녀에게 고국을 추억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지자님은 한국인 3세다. 그의 할머니가 한국분이셨다. 할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던 지자님은 자기 몸에 흐르고 있는 절반의 뿌리가 궁금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살이 2년을 했고, 그때 한국말도 배웠다고 했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지자님은, 내가 아침을 준비할 때면 주방으로 들어와서 요리 중인 레시피를 물어보시며 일손을 거들기도 한다. 한국말을 너무나 잘하는데도 더 배우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할머니 나라의 언어와 할머니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은, 할머니와 나를 잇는 선을 찾으려는 그만의 노력일 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한인 3세라는 정체성을 가진 그의 삶을 짐작해 본다.     


러시아어에서 공부한 친구가 있었다. 국비 장학생으로 가서 오래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친구를 만났을 때 왜 돌아왔는지 물어봤었다. 러시아에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친구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백인들의 세상에서는 동양인은 늘 이방인 일 뿐이었다고 친구는 대답했다. 퍽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친구였는데도 말이다. 국적과 피부색, 외모, 성별에 따른 차별은 어느 나라든 있는 것 같다.      


말만 통한다면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디든 똑같을 거라는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작게는 피부. 생김새. 체형 등 외형적 차이뿐 아니라 DNA로 전달된 문화 차이로 생기는 것들에 대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자님도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곳에서 배움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지자님은 일 년에 한 번 내지 두 번 배꽃 집에서 며칠 묵고 돌아가신다. 육십이 넘은 그는 아직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아마도 일 년에 두 차례 휴가를 받아 이곳에 오는 것 같다.    

  

그는 이곳에서 서예를 배운다. 배꽃 집에서 십 여분 떨어진 곳에 심은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서예 대가이신 심은 선생이 운영하는 서실에서 지자님은 서예를 배운다. 벌써 몇 년 이 되었다고 했다. 작년에는 이곳 강화에서 회원들과 전시회를 열어서 전시회를 다녀오기도 했다. 지자님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보았다. 사실 다양한 서체도 구분하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글씨를 알고 감상했다기보다는 지자님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작은 꽃다발이라도 준비할 걸 하는 아쉬움은 글을 쓰면서 하게 된다. 늘 이런 식이다.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는데  부족하고 서툴다.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자꾸 연습하면 나아지려나. 할머니 나라, 뿌리 반쪽을 더 알고 싶어서 시간과 돈을 써가배우는 지자님처럼 말이다.     


일본에는 지자님 같은 우리 교포. 동포가 많이 살고 계시다는 것을 잊게 된다. 그분을 만날 때마다 다른 지자님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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