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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Feb 19. 2024

지금 가도 되나요?

가끔은 나쁜 여자(남자)가 되는 시간이 필요해.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전화를 받게 된다.

“배꽃집이죠? 혹시 지금 가도 되나요?”

아침 9시, 이른 시간이다. 평범하지 않은 전화임을 예감한다. 그럴 땐 무조건 대답한다. “네. 오세요.” 목소리에서 어떤 상황인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어딘가로 증발해 버리고 싶은데, 정말 그러고 싶은데 정작 갈 곳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을 때.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친구 집 등 그래도 두어 군데쯤 갈 수 있는 장소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절실하게 사라지고 싶을 때는 찾아갈 사람도, 갈만한 장소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방을 다시 정리하고 보일러 온도를 높인다. 그리고 절박한 손님을 기다린다.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해서 지금 갈 수 있냐고 묻는 것도 용기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SOS 같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런 요청을 모른 채 외면할 재주는 내게 없다. 배꽃 집을 운영하는 10년 손가락 다섯 개를 접을 정도의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캐리어를 끌고 온 그녀는 잠을 자지 못한 듯 피곤함이 역력하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일단 들어가서 자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베드 준비해 놨어요.”

“감사합니다.”

그녀를 재우고 나는 산책을 나간다.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산책이 시작되는 길이 열리는 곳에서 산다는 것이 오늘 같은 날에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쉽게 이입되는 편이다. 큰일을 겪을 때는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한 편인데, 유독 슬픈 감정에 무너진다. 슬픈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지난 시간이 떠올라 더 슬퍼지고, 감정의 격동을 겪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내 목소리가 더 흥분되어 날뛴다. 어떤 때는 그런 나를 보며 얘기를 꺼낸 사람이 머쓱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을 정도다.     

이른 시간에 찾아온 손님에게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정황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 감정은 이미 내 지난 과거를 향해 달음박질 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물 없이 떡을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감정이 요동을 친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잇고 올라올 때는 걷는 것만큼 좋은 약이 없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빠르게, 천천히 걷다가 보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느새 잦아든다. 추수를 앞둔 벼들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람 부는 방향 따라 몸을 맡긴 벼들이 한들한들 춤을 춘다. 그래, 바람이 불면 저렇게 또 바람을 타야 하는 거지.     

마음 복잡한 그녀에게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지 않았다. 때로는 그 어떤 것보다 잠이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감기를 앓고 있다. 감기약을 먹고 죽은 듯이 자고 나면 한결 개운해질 때가 있다. 가끔은 낯선 공간인 배꽃 집 문을 들어왔듯 익숙한 곳으로부터 도망칠 때도 필요하다. 그것도 용기다.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배꽃 집에 오는 게스트 중에는 기혼자도 많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인 사람도 오고, 아이가 있는 사람도 친구들과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물어본다.

“부인(남편)에게 얘기하고 온 거예요?” 백 프로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부부의 합의하에 번갈아 가며 각자의 틈을 갖는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운다.

“멋있다!”를 외친다.     

인생은 긴 여행이다.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긴 여행을 할 때는 며칠간 한 곳에서 몸을 쉬는 ‘틈‘을 가져야 한다. 돌아다니느라 고단했던 다리도 쉬어줘야 하고,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정리할 시간도 꼭 필요하다.

들인 돈이 아깝다고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돌아다니다 보면 쉬 지치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몸이 아파 드러눕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젠더와 사회>>라는 책에서 나임윤경은 <이성애 연애와 친밀성, 드라마처럼 안 되는 이유>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말을 빌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앤서니 기든스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에서 모더니스트와 섹슈얼리티를 연결 지으며 조형적 섹슈얼리티, 순수한 관계, 합류적 사랑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 세 개념을 관통하는 것은 사랑과 친밀성에 당사자 간 '평등'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평등은 경청, 협상, 합의 등 상호 인정을 함축하는 개념들을 포함하는데, (......) 다만 그 평등성의 의미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과 모습으로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당사자들 간의 역량과 의지, 그리고 합의가 중요한 과제이다.   

       

기든스는 ‘조형적 섹슈얼리티, 순수한 관계, 합류적 사랑이라는 이 세 개념은 가족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도 관통되며 사랑과 친밀성에는 '평등'이 전제된다고 말한다. 경청과 협상과 합의는 건강한 관계를 생성한다. 어쩌면 싸움은 협상과 합의를 이루어 내는 방식일 수 있다. 싸움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하려면 기술이 필요하다. 인신공격적인 말이나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는 말, 지나간 과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말들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문제에 집중된 것들, 감정적 피로감이랄지, 육체적 피로감 등에 대한 구체적 나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하는 기술이다.

배꽃 집을 방문한 기혼자들이 그랬듯이 한 달에 한 번, 또는 서너 달에 한 번 서로의 ‘틈’을 갖는 것도 관계를 호전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합의의 범위를 넓히다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마주한 그녀는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밥은 먹었는지. 유치원은 갔는지 걱정했다.

나는 그녀가 어디나 가는 나쁜 여자가 자주 되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슬아 작가 때문이다. 작가가 쓴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 간다>라는 긴 제목의 글을  읽으며 ‘난 더 나쁜 여자가 될 필요가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뿐만 아니다. 일상에 매여서 틈을 갖지 못하는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엄마-아빠들이, 가끔씩은 숨을 쉬며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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