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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Feb 23. 2024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산다

그래서 재밌어.

     배꽃 집에 오는 게스트들에게서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중에는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운영 방식이나 인상적인 호스트에 관해 전해 주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대체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호스트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과 게스트와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알코올중독자인 호스트가 많다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이라는 말에 큰 오해가 없길 바란다. 표현이 그렇다 뿐, 게스트들과 어울려 이야기와 술을 즐기는 호스트들에게 붙인 애정 어린 호칭일 뿐이니까.

    

나도 이야기 좋아하는 호스트 목록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호스트 중 하나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일상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얘기할 줄 아는 능력자를 게스트로 만난 날은 시간을 잊고 그 즐거움에 빠져들곤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다양한 삶의 단편들을 배우기도 하고, 세상에는 참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사는구나 깨닫게 되기도 한다. 여행을 가는 목적이 일상의 단조로움, 나만의 것에서 타자의 것을 보고 배우며 나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소통되는 타인과의 대화에는 나이, 환경, 국가를 초월하는 즐거움이 있다.

    

친구와 함께 왔던 두 명의 게스트가 있었다. 그날도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있을 때, 두 명의 친구 중에서 친구보다는 조금 통통한 한 명이 최근 자신이 시작하게 된 아침 루틴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30분 책 읽기를 하고 있어요. 30분 책 읽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녀가 자신의 타임스케줄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자신의 하루가 궁금하더란다. 그래서 타임스케줄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달쯤 타임스케줄을 쓰고 보니 자신의 일상이 보이더란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자신이 하지 않는 것들, 즉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녀의 일상에서 없는 것은 책 읽는 시간이었다. 그것을 알고 난 뒤, 그녀는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외 없이 30분 책 읽기를 6개월째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그런 너 내일 아침에도 책 읽을 거야?”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여행을 와서까지 일상의 루틴이 유지될까?

통통한 친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신감 있고 밝은 표정이다.     

“그럼, 읽어야지. 나 책도 가져왔어.”

“나는 그렇게 나를 매 시간마다 적어가면서 나를 옥죄고 싶지는 않아. 나는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싶어.”      호잉~ 격려를 바랐던 친구에게는 아쉬운 대답이겠으나 통통한 친구와 나는 친구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럼,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 사는 방법은 다 다르니까.”

“그래, 넌 나랑 다르니까.”

훈훈하고 따뜻하게 대화가 이어지기를 바랐겠으나 모든 대화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녀가 자신의 루틴을 지켰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밝게 대답했다. “of course"    

  

내가 만났던 또 다른 게스트는 타임라인 같은 것은 절대로, 한 번도 써 본 적 없을 것이 명확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녀의 전화를 받은 날은 아카시아꽃향기가 대지를 가득 채우던 아름다운 5월이었다.     


" 여보세요? 오늘 가려고 하는데 방 있나요?"


전화가 온 것은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예약전화를 받을 시각에 그녀는 오늘 오겠다며 당일 전화를 한 것이다. 전화기에는 잠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오늘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이 설마 아직 이불속에서...?’ 게다가 2시쯤 도착 예정이라며 입실 시간까지 제 마음대로 정해준다. ‘설마, 게스트하우스가 처음?’ 다행히 그녀가 쉴 베드는 남아 있었다.   

   

약속 시간을 잘 지켜서 온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 짧은 머리, 키가 컸다. 스물여섯 또래의 여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상대로 하여금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었다.

갈아입을 바지를 챙겨 오지 못했다며 혼자소리를 크게 했다. “목청이 큰 것 같지도 않은데... 혹시 우리 아들이 입던 개량한복 바지가 있는데 그거 줄까요?” 혼잣말을 크게 하는 바람에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을 엿듣게 되기라도 하듯, 바지를 내주는 입장이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며 작은 소리로 물어봤다. “저야 좋죠.”

바지를 갈아입고 나와서는 마치 이곳에서 오래 동안 나와 같이 살던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살고 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다른 게스트가 올 때 내 옆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스스럼없는 태도에 오죽하면 다른 게스트가  “사장님 아들이에요?”라고 물었을까. 아들이냐는 말에 나는 그녀가 무안할까 봐 슬쩍 쳐다보았고, 손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초원에는 기린이 산다. 긴 다리와 어떤 동물도 가지지 못한 긴 목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긴 목을 곧추세우고 높은 나무의 잎을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 먹는 기린은 초식동물이 다 그렇듯 순한 눈을 가지고 있다. 작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크고 순한 눈 탓에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협감이 없다. 실제로 기린이 가진 이 신체조건 때문에 초원에 사는 다른 동물들이 기린과 이웃하여 살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초원을 넓게 멀리 볼 수 있는 탓에 포식자를 쉽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또 기린은 초원의 가드로써의 다른 좋은 자질도 가지고 있었는데 잠을 거의 자지 않는 것이다. 기린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1.9시간이라니, 위험을 방어하는 가드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을 두루 갖춘 셈이다.  

   

스스로를 ‘레이지’라고 부르는 그녀.     

그녀에게 없는 것은 꾸밈. 치열함. 경쟁. 욕망. 직장.

그녀가 많은 것은 느림. 여유. 소탈. 웃음. 꿈. 낙천. 활달. 친화력, 솔직함......


여유롭고 솔직한 미덕을 갖춘 레이지를 보면 초원의 기린이 생각난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다는 신체적 특징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무. 풀꽃. 새. 하늘. 바람. 공기. 구름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레이지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초원에 사는 기린 주변에 작은 동물들이 모여들 듯이. 참 신기해 보였다. 직장이 곧 한 존재의 사회적 신분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다르게 살고 있던 레이지였다.     


레이지의 꿈은 해외여행을 하는 거라고 했다. 오래 동안 꿈꾸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국내부터 시작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렇게 첫 국내여행을 시작한 곳이 배꽃 집이 되었다. 배꽃 집 이후 그녀는 친구무리들과 어울려 국내와 해외여행을 다녔다. 패브릭으로 만든 올빼미 인형을 선물로 사 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레이지는 제 속도를 찾아 천천히 제 꿈을 찾아갔다.     

 

타임라인을 쓰는 사람도, 루틴 따위 갖고 있지 않아도 잘 살고 있어 하는 사람, 저는 게으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저마다의 속도로 세상을 산다. 타인의 속도가 정답은 아니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는 곳이다. 정답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정답이 없어서 길을 헤맬 때도 있지만 정답 없는 다양한 답들이 모여 있어서 다채롭고 재미있는 세상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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