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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r 18. 2024

우리 아이 혼자 여행 가요.  잘 부탁해요.

   

 아들이 혼자서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데 숙박이 가능하냐는 어머니의 전화 문의를 받았다.   

  

“고1, 미성년자인데 숙박이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여행을 온다는 거지요?

“네. 혼자 해보고 싶다고 하네요. 잘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바로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어머니가 아들의 이틀 치 숙박비를 결정한 것이다.

‘고1 학생이 혼자서 여행을 온다... 어떤 학생일까?’

어머니는 아들 혼자 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익숙한 것에는 따분한 매너리즘이 있지만 낯선 곳, 새로운 것에는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성인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불안하다. 어떤 사연(?)으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을지, 아직 만나지 못한 학생에 대한 호기심이 올라왔다.     



배꽃집에 혼자 첫 여행을 왔던 N이 생각났다. N은 여행을 계획하면서 혼자 하기 제일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단다. 자신이 어려워하는 것이 혼밥이 더란다. 그래서 2달 동안 혼자 밥 먹는 연습을 했단다.

여행지에서 혼자 첫 대망의 점심을 먹게 되었을 때, N은 SNS에 올라온 지역 맛 집으로 갔다. 그리고 사인용 테이블에 앉아서 전골로 나오는 그 음식을 시켜서 다 먹었다고 했다. 소자라고는 해도 3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소주까지 시켜서 먹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아쉬웠던 내 경험을  N에게 들려주었다.

"나도 SNS에 올라온 유명 중국집 짬뽕을 먹으러 갔었는데,  해물과 야채가 넉넉하게 들어간 짬뽕이 정말 맛있는 거야.  '이 맛있는 짬뽕에 소주 한잔 곁들이면 끝내 주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소주를 마시지 못했어."

"왜요?"  N이 물었다.

"그런 거 있잖아. 여자 혼자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사연 있는 여자로 볼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시선들. 그런 것들이 부담스러웠던 거지. 근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아쉬운 거 있지."

"근데 자기는 그런 부담 없었어?"  N에게 물었다.

"저도 부담은 있었죠. 근데 그냥 했어요. 볼 테면 봐라, 생각할 테면 해라. 나는 먹겠다, 뭐 그런 마음이요. 그리고 딴 사람 안 쳐다봤어요. 무슨 상관이에요?" N이 더 멋있어 보였다.

"그러게. 그까짓 소주가 뭐라고...! 어떤 한가한 사람이 내게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고 말이야."

"그렇죠? 누가 그렇게 한가하겠어요. 괜히 내 생각이 그런 거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N과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여행이든 일상에서든 후회하는 일들이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면서.




어머니가 예약한 날짜에 학생은 입실을 했다. 아직은 어린 티가 남아 있었지만 그러나 또래보다는 키도 크고 표정도 밝고 차분해 보였다.

오후 3시경에 입실한 학생은 벌써 관광지 몇 곳을 돌고 왔던 탓인지, 뜨거운 여름 햇볕에 달구어져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숙소를 안내하고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왜 친구들하고 같이 오지, 혼자 왔니?”

“이번에는 혼자서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해 본 적은 있었어?”

“같이 잠을 잔적은 없지만 놀기는 많이 했어요.”

“그럼, 밖에서 혼자 자는 건 처음이야?”

“네.

“그렇구나. 멋지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도 돼.”

“네. 감사합니다.”     


학교도 다니던 학원도 방학을 했단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해보고 싶었단다.

조금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길게 묻지는 않았다.     

학생의 여행은 규칙적이었다. 아침 9시경 집을 나서서 오후 서너 시경에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지는 유적지 중심이었다. 교과서에서 봤던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어른들의 신뢰를 받는 모범생 일 것 같았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내다 돌아갔다. 학생이 돌아가고 난 뒤 바로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다.

‘여행 잘하고 지금 출발했습니다. 아드님이 참 멋있는 청년입니다.’     

                                                                             



내 주변인들 중에는 60년대 출생자들이 많다. 그들 중에서 남자들의 이야기는 나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한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다. 여섯 형제와 자랐던 그가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방학을 맞아 그는 친구들하고 일주일간 여행을 갔더란다. 그때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쯤 된 남자들 사이에서 무전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돈 없이 고생하는 여행이라고 해서 '거지여행'이라고 불렸지만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때였다. 표 없이 기차를 타고 동네 회관 같은 곳에서 숙박을 하고, 또 밥도 얻어먹을 수 있던 때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의 담이 낮았던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지인은 친구들과 여행을 마치고 일주일 만에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를 본 어머니가 하시는 첫 말씀이 “일찍, 일찍 다니지 종일 어디 갔다 오냐? 어서 들어가 밥 먹어라.”이었단다.

혼날까 봐 잔뜩 가슴을 졸였다가 집안 식구들이 자신이 집나 갔던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있던 남자들은 껄껄껄 웃으며 “그땐 그게 가능했지!” 이구동성 한 목소리를 냈다.     

아마도 어머니와 가족들은 그의 부재를 알았을 것이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없어져도 ‘난 자리’ 운운하며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 사람 인정인데, 하물며 자식이, 식구가 일주일 동안 집을 비웠는데 왜 몰랐겠는가. 자식의 바른 행실을 믿었기 때문에 모른 척 눈감아 주었을 것이다.           

                                                                                      



나도 혼자 온 학생과 비슷했던 고2 때부터 여행을 다녔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반나절 정도 하는 여행이었지만, 그 서툴고 두려웠던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혼자서 하는  여행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번번이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여행은 근사한 여행지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집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교통은 뭘 이용할지, 바람 불고 날도 좋지 않은데 꼭 오늘 가야 하는지.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갈등은 이어진다. 어디를 볼 건지, 밥은 먹을지, 먹는 다면 뭘 먹어야 하는지...

선택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사람에게 여행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은 매 순간 선택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이것은 혼자 여행의 큰 부담감이자 자유로움이다. 여럿이 하는 여행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여행해 본 사람들은 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로 외롭기도 하지만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그 경험들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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