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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r 16. 2024

타투한 여자 마이라

사랑은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타투가 유행을 했다. 배꽃집을 방문하는 손님 중에도 글씨나, 꽃, 나비 같은 작은 형상을 어깨나 팔목에 새긴 사람들을 왕왕 보게 되었다. 뒷목이나 어깨에서 숨어 있던 작은 형상이 긴 머리칼이 찰랑거릴 때마다 보였다, 숨었다 하는 것이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유행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도 ‘하나 새겨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옛날 같으면 큰 일 났다.”

“왜요?” 셔츠를 서둘러 입으면서 용 문신 한 사람이 물었다.

“삼청 교육대에 끌려갔지. 몸에 그런 문신 새긴 사람들은.” 그냥 있어도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그는 티셔츠를 입었다. 탄탄한 등판에 그려져 있던 용이 티셔츠 속으로 숨어버렸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그래서였던지 여러 손님들 속에서 두 남자가 상체를 드러낸 채 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벌떡 일어나 서둘러 티셔츠를 입으려고 돌아섰는데, 깜짝 놀랐다. 그중 한 사람의 등에 커다란 용이 그려져 있던 것. 그동안 봐왔던 여성들의 타투와는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등판 전체를 꽉 채운 총천연색 타투였다. 험한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문신이었다.     


‘혹시...? 어두운 세계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세요...?’ 공손히 물어볼 뻔.   

  

이미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그들은 ‘타투이스트’라고 자신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들뿐 아니라 이후에도 타투이스트로 일한다는 사람들을 배꽃집에서 여러 번 만났다. 외국에서 타투를 공부하고 왔다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타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타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타투를 마냥 편하게 보게 되지는 않는다. 팔뚝에 문신한 몸집 큰 집단들의 무력과 그런 사람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려는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일생의 어느 한순간 공포로 기억된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타투 중에는 슬픈 타투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혼자 여행을 온 마이라에게서 본 타투였다. 나는 그녀를 ‘타투 한 여자’로 기억한다.      

여름이었다. 마이라가 배꽃집에 들어왔을 때 여행자 같지 않은 모습에 놀랐다. 나도 꾸미는 것에는 별 재주가 없는 사람이기는 해도 외출복을 할 때는 집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옷을 입고 매무새를 가다듬게 된다. 마이라는 집에서 편하게 입던 원피스 차림이었고, 표정이 없어서였던지 몹시 지쳐 보였다.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외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했을 것 같다.      

 방을 안내하고 시원한 음료를 대접했다. 그녀는 62세라고 했다. 동양 사람에 비해서 서양 사람들의 피부가 얇아 더 노화가 더 빠르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내 주변에서 보던 그 또래의 사람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마이라는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마이라의 얼굴에는 특이점이 있었다. 타투였다.

마이라의 오른쪽 눈 바로 밑에 눈물방울 모양처럼 보이는 타투가 있었고 왼쪽 눈은 아이라인을 따라 문신을 했다. 아이라인 문신을 한 사람은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에게서도 가끔 보았지만 눈 밑에 타투는 낯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 밑에 있는 점을 좋게 보지 않는다. 입 옆에 있는 점은 먹을 복을 타고났다는 의미로 ‘복점’으로 부르며 일부러 그려 넣는 사람도 있지만, 눈 밑 점은 눈물 점이라 하여 흉점으로 여겨서 있는 점도 빼버린다. 유행이나 미용에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은 마이라의 얼굴에 있는 타투는 그래서 조금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묻지 못했다. 보통의 중년 여성들과는 달리 마이라는 과묵하고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둘째 날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얼굴에 타투는 왜 한 거야?”       

한껏 조심하며 했던 내 질문이 허무하게 생각될 만큼 마이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을 했다.

“남편에게 맞아서 상처가 생겼어. 상처가 보기 싫어 타투한 거야.” 

“너희 가족들도 알았니?”

“아버지도 폭력을 썼어.”        


가족들이 알았냐는 질문에 아버지도 폭력을 썼다고 대답을 했다. 머리로 참혹한 폭력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나는 성급하게 ‘왜?’라고 물었다. “아버지와 남편은 세계 대전을 겪은 사람들이야.”라고 마이라가 말했다. 그들의 폭력의 원인을 마이라는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상처는 하나가 아니라면서 팔과 다리에 난 상처도 보여주었다. 일곱 개였다. 상처 위에 일곱 개의 작은 꽃모양 타투가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 본 타투 중에서 가장 슬픈 타투였다.

 

마이라는 고등학교 화학교사였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자신을 불교신자라고 했다. 그래서 인도와 티베트 여행도 했단다. 불교 성지를 찾아다니며 그녀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또 종교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쭉 그녀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생기가 사라진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폭력은 아프고 더 깊은 상처로 각인되는 것 같다. 마이라는 타투로 몸에 난 상처를 가리었다. 마음으로 받았던 상처도 타투로 치료가 될까?

마이라는 배꽃 집에서 이틀을 묵었다. 나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함께 여행을 했다. 바다도 가고 옛날 시장과 작은 마을 구경도 했다.    

    

가끔은 내가 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는 전쟁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 전쟁은 아프리카처럼 아직 문명화되지 못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그렇다. 개개인의 통증이 담겨 있지 않은 이야기는 쉽게 관념화되며 사물로 치부되어 버린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책은 내가 얼마나 전쟁을 피상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요즘 전쟁영화들을 보면 전선의 여자간호병이 나오잖아. 왜 그 아주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말이야. 솜바지 대신 치마를 입고, 앞머리를 살짝 내려 군모까지 쓰고서. 그거 다 거짓말이야! 만약 우리가 그런 복장이었다면 어떻게 부상자들을 전장에서 끌어내올 수 있었겠어? 게다가 사방이 남자들인데 치마를 입고 포복한다는 건 말도 안 됐지. 그리고 사실, 치마는 전쟁 끝날 때쯤에야 겨우 만져볼 수 있었어. 그제야 속옷도 남자 속옷 대신 여자걸로 받았고. 너무 좋아서 다들 어쩔 줄 몰랐지. 어떤 애들은 군복 상의의 단추를 일부러 풀기도 했다니까, 속옷 보이라고...... ”      


이것은 위생사관으로 참여했던 소피야 콘스탄티노브나 두브냐코바의 목소리를 담은 진술이다. 우리가 영화로 보고 활자로 배웠던 것들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은 백만 명이 넘는다.’고 책에 기록한다. 채 스무 살이 되지 않았던, 전쟁을 알지 못했던 어린 소녀들은 애국심으로 참전을 했고, 탱크 운전병으로, 저격수로, 위생사관 전쟁을 겪었다. 이 책은 2백여 명의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고,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활자로, 지식으로 배운 어떤 일들은 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참혹한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그 사건을 자주 잊어버리고 심지어 낭만화시키기도 한다. 전쟁을 연도로 기억할 뿐 전쟁을 겪어낸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겪은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또 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떠한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같은 텍스트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흔적과 상처로 남는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무모한 학살 전쟁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들의 아픔, 상실을 들여다볼수록 더욱 전쟁에 치를 떨게 된다.

책에는 마이라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전쟁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

마이라의 상처를 덮고 있던 꽃잎들에 새살이 차오르기를 바란다. 꽃이 열매가 되어 또 다른 씨앗이 되듯이 그녀의 상처도 새로운 씨앗이 되어 고통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자유가, 평화가 탄생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마이라가 품은 희망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붓다를 찾는 여정이 시작일지도...

사랑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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