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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04. 2024

어머, 게가 그네를 타고 있어요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이었다. 하늘에는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환하고, 곤충들이 펄쩍 뛰어다니며 가을을 노래하던  평화로운 밤이었다.

거실 천장으로 보름달이 환하게 웃고 있다. 보름달에 눈을 두고 내가 말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 게들은 갈대를 기어오르며 그네를 탄데.” 

나를 따라 천창을 올려다보던 게스트 중 한 명이 낮게 말했.

"어머, 진짜요?  보고 싶다.”

그 말이 신호가 되었던지, 다른 게스트들도 게를 보러 가보잔다.

“저도 고 싶어요. 한 번도 못 봤어요.”     

"저도요." "저도요."...

망설이던 내 마음에 충동버튼이 눌러져 버렸다. 

“이런, 도시 촌놈들 같으니라고! 쯧쯧쯧! 좋아요. 그럼 우리가 오늘 확인해 봅시다. 진짜 보름달 아래서 게들이 그네를 타는지... 사실은 나도 말만 들었지 한 번도 직접 보지는 못했거든. 하하하.

그럼 우리 15분 뒤에 마당에서 만나요. 간편한 복장 하시고, 긴 옷 입으시고, 그리고 버려도 되는 양말로 갈아 신고. 알았죠?”

“넵!” 흥분해서 들뜬 목소리로 게스트들이 힘차게 들려왔고 우리는 각자 흩어져 바다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 동네 바다는 한강하구에 위치해 있다. 서울의 한강물과 북쪽 임진강이 만나 서해바다로 흘러드는 곳이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바다와 만나는 이곳은 물살이들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산란하기 좋은 진흙갯벌이 넓게 펼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 가까이 있는 포구에서 많이 잡히는 물살이는 단연 젓 새우다. 오젓, 육젓, 추젓은 잡히는 시기로 분류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새우철이 되면 울긋불긋 예쁜 색 옷을 입고 전국에서 새우젓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연일 넘쳐난다. 그러면 어부들의 입에서는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바다에 기대에 살아왔고 또 살아갈 그들에게 바다는 엄마젓줄과 같은 곳이다.     


그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숭어다. 우리 동네 숭어는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을 만큼 기온이 뚝 떨어질 때 먹어야 제대로 된 회 맛을 볼 수 있다. 낚시하는 동네 아저씨는 엉덩이 얼어가며 잡은 숭어를 떠서 형광등 불빛에 비춰주며 말했다.

“보이지? 숭어는 날이 추워야 이렇게 무지개색이 나거든. 이런 걸 먹어야 맛있어.”


그래서 나는 겨울이면 자주 걷는다. 12월에서 3월로 이어지는 추운 겨울에 걷은 들바람 맛, 회 맛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겨울바람맛과 회 맛에 깊이 빠졌던 어느 해는 매주 걸었던 적도 있었다. 위로받고 싶어서, 응원이 필요한 손님이 왔을 때, 좋은 사람과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도 길을 걷는다. 석양이 너무 예쁜 날, 마음이 흔들릴 때, 맛있는 숭어회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싶을 때도 길을 걸어 포구로 간다. 길을 걷고 싶은 핑계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그 길은 감고도 있을 만큼 내게 익숙하다.

     

진짜예요. 게가 그네를 타고 있어요.     

두 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바닷가에 도착했다. 검은 바다 위로 보름달이 비추고 바다 건너 잡힐 듯 서 있는 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제방을 넘어서 조심스럽게 갯벌들어갔다. 물이 빠진 갯벌에 갈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조석으로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곳은 뻘갯벌이다. 평평해 보여서 안전할 것 같아도 뻘갯벌은 낮에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갈대가 자라는 단단한 갯벌에서만 다녀야 한다고 여러 번 당부를 하고서 '그네 타는 게' 수색에 나섰다. 


조금 뒤 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어머. 신기해라. 진짜네, 진짜야!”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게가 갈대 줄기를 타고 오르자 갈대가 휘청휘청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모습은 흡사 게가 그네를 타는 것처럼 보였다.

‘보름달이 뜨는 날, 게들이 갈대에서 그네를 탄다.’ 어디서 읽은 문장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름다운 상상력이며 은유다.


하지만 갯벌에 구멍을 파고 사는 게가 갈대를 타고 오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은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짓은 아닐까? 기후온난화로 인한 변화와,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또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된 바다는 분명 이전 바다와는 다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숨기고 덮인 바다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다.

     

어둔 바닷가를 더듬어 게 잡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커밍아웃을 한다.

“저 사실은 갑각류 알러지가 있어요.” 갑각류 알러지 남의 고백이다. “저는 벌레도 못 잡는 겁쟁이예요.” 귀여운 겁쟁이녀다.

“게 잡는 게 쉬운데요.” 새로운 재능 발견 남이다.

“아무리 찾아도 제 눈에는 안 보여요.” 포기 빠른 남이다.

“저는 게보다 밤바다가 좋아요.” 낭만녀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밤바다를 만났다. 그리고 보름달이 밝혀준 길을  따라 배꽃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누가 살아 움직이는 게를 씻고 튀길 것인가!’

‘우리 그냥 갯벌에 살게 해 주세요. 양동이를 기어오르며 아우성치는’ 게들을 보자, 꿈에서 깬 듯 모두 손사래를 쳤다. 우리 중에는 물살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찌어찌 게를 씻고 튀겨 먹었지만,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떤 사실들은 꼭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들의 게 잡이가 그랬다. 보름밤, 산책만 하고 돌아왔더라면 더 좋았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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