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16일 금요일
코로나 전, 지역 여성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연필화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싶은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도 뭔가 잘하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때 엄마에게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싶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성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미술학원이라니! "그까짓 것은 배워서 뭐 하려고 돈 주고 그걸 배우냐?" 엄마는 두말하지 못하도록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수무개쯤 올라가서 낡은 건물 2층에 '화실'이라 쓰여 있던 그곳에서 수강료를 확인했을 때 나는 이미 반쯤 마음을 접었다. 엄마의 말마따나 '쓰잘데 없는 짓거리'에 돈을 쓰기에는 수강료가 너무 비쌌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도 보는 그림은 좋아해서 지역 미술관을 다니기도 한다. 그림 취향을 묻는다면 이제는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들이 좋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봤던 밀레의 그림들처럼 내 이웃 사람들의 삶이 담긴 것들을 그림이나 사진, 책에서 문장으로 만났을 때 감응이 더 크다. 익숙해서 소홀히 취급하고 쉽게 간과하는 것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오늘 전시회는 배추이파리 때문에 가게 되었다. 지인이 참여하는 전시였기도 했지만, 지인이 보내온 사진에서 배추이파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파리 한 장에 담은 의미, 의도를 보고, 듣고 싶었다. 전시 주제는 <화해 그리고 평화>로, 참여 작가들은 색채심리, 미술심리를 공부한 선생님들이다. 전시공간은 낡은 한옥을 개조한 '화해평화센터'였다. 박명록에 기록된 화해와 평화까지 합치면 오늘은 화해와 평화가 넘쳤던 하루였다.
사진에서 배춧잎이라고 보았던 것은 사실은 상추 잎이었다. 그림을 배춧잎으로 보든 상추 잎이든 작가가 담고자 했던 의도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 작가는 삶에서 불화하는 것들, 평화롭지 못한 상황들을 쌈으로 표현했다. 상추나 배춧잎 등 쌈의 기본이 되는 재료는 그 자체로도 맛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기, 양파 고추, 쌈장 같은 다양한 것들을 넣어서 쌈을 싸 먹는다. 이유는 더 맛있기 때문이다. 맵고 짜고 단 것들은 우리 삶에서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개별로 먹었을 때는 혀를 자극하며 맛이 없는 것들이다. 쌈 안에서 어우러졌을 때 더 맛있고 소화도 잘 된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이파리 한 장에 화해와 평화를 쌈 싸 먹는 작가의 설명에 큭 웃음이 났지만,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유니크한 그의 상상력에 공감을 표했다.
10여 년 전에도 지역의 예술인들이 모여 <눈이 부시네 저기 진.달.래>전을 열었다. 전시회의 계기는 지역 축제로 자리 잡은 '진달래'였다. 진달래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개최 한 지역축제에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며 만들어낸 문화축제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 조각가와 화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음악회와 '돌판각 찍기', '도자 목걸이 만들기', '진달래 화전 만들기'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허용철 ‘사계(四季)’ 120 cm×120cm 2010년, 복합재료 /출처 : 인터넷 강화뉴스
전시된 작품하나하나 눈이 가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허용철 작가의 작품이었다. 땀 흘리는 사람들과 대지가 키우는 것들로 작가는 그의 '세계'를, '예술'을 창조하였다. 일상이 예술로 승화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익숙한 것을 익수 하지 않은 눈으로 자주, 여러 번 바라보았을 테니까.
내가 사는 지역에는 상추 잎으로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사람과 대지의 것들로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이 있다. 미처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대개 흙을 만지며 사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