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19일 월요일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밭으로 나간다.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서 밭을 한 바퀴 둘러본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도 장화를 신는다. 밭에서 뱀을 보고 난 뒤부터 갖게 된 습관이다. 고양이가 오고 난 뒤부터 밭과 집 주변에서 뱀을 보지 못했지만, 기억은 처음 저장된 채로 남아있다. 고양이가 뱀의 천적이라는 문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기억은 고집스럽다.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호박덩굴이 정신없이 뻗어가고 있다. 마른풀 위로, 들깨를 타고, 고구마밭을 지나 옥수숫대를 휘감고 뻗어간 덩굴도 있다. 가끔은 이웃한 논으로도 덩굴이 뻗어나간다. 그럴 땐 논 주인이 알아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호박덩굴을 얼른 거두어들이고 있다.
무섭게 뻗어나가는 덩굴과 그만큼 무성한 호박잎을 제치고 잘 익은 호박을 발견했다. 거친 호박털에 맨살을 긁혀가며 잘 익은 호박 2개는 따서 집으로 가져왔다. 나머지 한 개는 조금 더 농익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올해는 호박 농사가 대단하다. 종류만 해도 맷돌호박, 애호박, 단호박, 땅콩호박, 미니 단호박까지 다섯 종류나 되었다. 내가 먹은 씨앗과 이웃에서 얻은 씨앗을 심다 보니 양이 늘었고 종류가 많아졌다.
밭에서 자라는 호박 중 땅콩호박은 조금 특별하다. 유럽여행을 갔던 지인이 어렵게 씨앗을 구해 모종으로 키워 나눠주었고, 맛도 기존에 키우던 호박과는 달랐다.
생김새가 땅콩을 닮아 우리나라에서는 땅콩호박이라고 부르는데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버터넛 스쿼시 Butternut Squash'라고 부른다. 맛에서 유래된 이름인 듯하다. 버터맛과 향이 나는 신기한 호박이다.
밭에서 키우는 신기한 품종인 땅콩호박을 배리 로페즈가 쓴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에서 보게 되었다. 로페즈의 책은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라는 부제가 있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무게감이 깊은 대개의 책들이 그렇듯, 장이 시간과 함께 발효되듯 조금씩, 천천히 읽어가야 할 책이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쉽지 않으나 아름답다.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동화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 내 눈에 띄었던 대목은 땅콩호박에 관련된 작가의 추억이다. 내 밭에서 자라는 작물 중 하나가 먼 이국의 땅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상기시켰으며, 누군가 유년의 추억과 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뜻밖의 즐거움이다.
한 번은 캐벌레로 크리크 위로 지나는 서던퍼시픽 철로의 철교 아래에 무더기로 버려진 빈 판지 상자들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 안에 호박을 가득 채워 철로 위에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카고나파크에서 동쪽으로 오후 열차를 몰고 오던 기관사가 우리의 바리케이드를 정면으로 돌파했고, 그 바람에 부서진 껍질 조각들이며 섬유질을 주렁주렁 매단 호박씨들이 마른 강바닥으로 날아가고 기관차 옆구리에 되튀어 다닥다닥 붙었다. 덤불 뒤에 숨어 있던 우리를 향해 기관사 아저씨가 휙 던져준 손 인사에 우리는 기뻐서 자지러졌다. 썩은 멜론 말고는 사방으로 튀는 땅콩호박 파편의 매력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었다. 우리는 호박이 아예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서 자라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작가는 로스앤젤레스 강이 흐르는 밸리 지역에서 유년의 한 때를 보내게 된다. 그곳은 두 개의 지역 -개발되어 도회지화된 동쪽지역과 야생적인 농지가 펼쳐진 서쪽으로 -으로 구분된다. '1953년 레시다는 택지 개발과 소규모 관개 농업의 독특한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현재의 상황과 무관하게 변두리 깡촌 마을 주변 서던퍼시픽 철로와 주변 들판과 농지는 '깡촌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호박과 관련된 추억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어릴 때 자랐던 시골집에서 보리타작을 하던 날의 추억이 있다.
보리타작은 딸기가 빨갛게 익어갈 때 시작된다. 마을에 몇 대 되지 않는 탈곡기를 온 동네가 순번을 정해 돌려가며 사용을 했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보리타작을 하는 날에는 마당에 불을 밝혀 대낮처럼 환했다. 마당에서 어른들은 타작을 하고 타작이 끝난 보리단이 높게 쌓이면 아이들은 보리단 위로 펄쩍 뛰어내렸다. 이삭이 떨어져 나간 보릿단은 푹신한 팔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받아 주었고 좋은 향기를 풍겨 주었다. 보릿단 속에 푹 파묻힌 채 조금 전 밭에서 따온 딸기를 꺼내려 주머니를 뒤지면 딸기는 벌써 뭉개져 붉은 물이 주르륵 흘렀다. 빨갛게 물든 손을 쳐들고 아이는 무엇이 재미난 지 친구랑 얼굴을 마주 보며 낄낄거렸다. 그 밤 아이들은 어른들이 타작을 끝낼 때까지 빛과 어둠의 공간을 넘나들며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하며 밤 깊도록 잠들지 않았다.
보리타작을 했던 마당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당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집도 아버지가 가꾸던 텃밭도, 딸기도 감나무, 복숭아나무도 사라지고 없었다. 내 유년을 보냈던 그곳은 이제 온전히 우리들 기억 속의 장소로만 남아 있다. 작년 7월에 가서 보았던 내 유년의 장소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