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30일 금요일
시골집을 마련한 젊은 부부는 집 뒤에 있던 텃밭을 갈아엎고 잔디를 심었더란다. 텃밭이 사라지는 아쉬움 보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부는 가슴 뛰게 좋았단다.
"이제 여기서 너희들 맘껏 뛰어놀면 돼."
"뛰어다녀도 돼요?"
"그럼, 공놀이를 해도 되고 자전거를 타도 돼. 너희들 맘껏 뛰어놀아도 되지."
‘마음껏’, ‘눈치 보지 말고’, ‘뛰어라’라는 엄마의 자유선언, 해방선언에 두 아이들은 아직 자라지 않아 울퉁불퉁한 잔디밭을 당나귀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좋아하더란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파란 잔디가 자라 황토 흙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이웃집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쑥 내밀고선 한마디 하더란다.
"아니, 이 집은 왜 밭에 풀을 심고 그랴?"
해가 오르는 시간, 남편은 예초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잔디를 깎은 지 한 두 달 되었으려나, 여름의 초목은 지치지도 않는다.
비만 오면 질척해지는 앞마당과 뒷마당에 잔디를 심은 것은 십수 년 전이다. 잔디만 깔고 나면 질척해지는 땅도 속수무책 자라는 풀도 해결될 줄 알았다. 땅을 고르고 모래를 깔고 아이들 손까지 빌려 잔디를 심었다. 비용과 품이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진흙바닥에 신발 버릴 걱정도, 풀 뽑자며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꿈꾸는 것이 모두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토끼풀, 질경이, 민들레 같이 번식력 좋은 것들이 어느 때는 잔디보다 앞서 설쳐대며 자라는 통에 손톱 자랄 새 없다.
도시 살다 온 이웃은 제대로 된 전원생활을 하려면 잔디와 데크, 벽난로는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이라 말하고, 동네 토박이들은 풀 반 잔디 반이 섞인 마당을 심란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거, 시멘트로 싹 발라버리시겨" 한마디 하신다.
어느 날은 데크와 벽난로를 놓을까 망설이고, 또 다른 날은 앞마당과 뒷마당을 시멘트로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기준은 사람마다 달랐고, 또 내 생각도 매일이 새롭게 변덕을 부렸다. 오락가락하는 두 마음을 품고 남편은 풀을 깎고 나는 뒤따라 다니며 갈퀴로 잔디를 긁어 치운다.
이러나저러나 잔디를 깎아 정돈된 마당을 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