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으로 들어온 다섯 녀석은 컴퓨터 앞에 올망졸망 붙어 앉더니 저희들끼리 순서를 정하더니 금세 게임 삼매경에 빠져든다.
“얘들아, 케이크 먹어야지”
지난밤 남편이 사 온 작은 치즈 케이크와 치킨, 떡볶이로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케이크에 불을 붙여주자 아이들이 우렁찬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 생일 축하합니다. ~~~~”
케이크 위에 있는 큰 초 한 개와 작은 초 한 개를 보더니 창이가 말한다.
“내가 두 살인가?”
아이들이 흐흐흐 웃는다.
창이는 입 안 가득 바람을 넣고선 멀찍이 떨어져서 한 번에 휘익~~~ 강풍을 일으켜 촛불을 꺼버린다.
‘와~아~~’ 아이들이 창이의 묘기를 보고 감탄하며 박수를 친다. 그리곤 배고픈 이리떼 마냥 녀석들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 대더니,
“아~ 배불러서 더 못 먹겠다. 이따 놀다 와서 또 먹어야지.” 한다.
먹을 때도 젓가락을 놓을 때도 모두 한 몸처럼 움직인다. 마치 짠 듯이 두 녀석은 컴퓨터 앞으로, 나머지 세 놈들은 막대기를 하나씩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서 닭장으로, 앞마당으로 뛰어다니며 쌀쌀한 날씨에 땀방울을 튕겨 낸다.
“그래! 매일을 오늘처럼 살아라.” 문득 아이들의 자유가 부럽다.
자잘하게 티격태격하다가도 금방 화해를 하고 잘 어울리던 아이들이라서 다른 부모들도 아이들 귀한 이곳에서 다섯 놈들이 잘 어울려 노는 것을 안심했고 대견하게 여겼다. 그래서 ‘오늘 누구네 집에서 자고 올게요.’라고 말을 하면 서로서로 흔쾌히 허락하곤 했다.
그런데 어제는 학교가 끝났을 시간이 한참을 넘어서도 돌아오지 않아서 ‘이 녀석 또 누구네 집에서 놀고 있구나.’ 생각하던 차에 창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왔다. 생전 없는 일에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말도 못 하고 서럽게 울기만 한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달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지인즉 이랬다.
시민이, 천재, 기현이, 창이가 함께 어울려 자전거를 타는데, 창이가 탄 자전거가 펑크가 났더란다. 그래서 "내 자전거 펑크 났어." 하고 얘들에게 말했는데도 친구 녀석들이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천재의 지휘 아래 창이를 따돌리고 저희들끼리 가버리더란다. 그래서 속이 상한 창이는 자전거를 놔둔 채 울면서 집에까지 걸어왔다는 것이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 속도 상했다. 그렇다고 천재랑 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를 달래서 시민이네 집에 두고 온 가방을 찾으러 가다가 천재와 시민이를 만났다. 그래서 창이가 울면서 왔더라고 얘기를 했더니 두 녀석들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있었던 일에 마음에 상처가 컸던지 잠자리에 나란히 누운 창이가 말을 한다.
창이: 동물들은 싸우지 않으니까 사람보다 동물들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나: 창아, 동물들도 싸워. 그때 우리 닭들이 서로 싸워서 피 흘리는 거 봤잖아.
창: 그건 암탉들을 차지하려고 싸운 거지요. 동물들은 서로 미워하면서 싸우지는 않잖아요.
나: 그건 그렇다. 친구들하고 싸웠다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면 거기서 또 싸우면 다른 학교로 전학가나?
창: 그래도 내일 분명히 쉬는 시간에 천재랑 시민이가 저 놀리고 얘들한테 놀지 말라고 할 텐데 전 혼자서 어떡해요?
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책을 읽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이 노는 것을 구경해. 가끔은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는 거잖아.
창: 그럼 저 혼자 심심하잖아요.
나: 사람의 몸은 음식을 먹고 커지지?
창: 네
나: 사람의 마음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자라는 거야. 창이가 음식을 먹고 몸이 자라듯이 이런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더 많이 자라게 돼. 그러면서 형이 되어가는 거야. 창이 마음이 단단해지려고 생기는 일이니까 이길 수 있지?
창: 네...
설음과 걱정에도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다. ‘색색’ 아이의 숨소리에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설움을 거두어 주려고 했지만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지... 그나저나 천재가 친구들을 부추겨서 진짜 창이를 왕 따 시키면 어떻게 하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창이가 그런 아이가 아니듯이 천재도, 윤태도, 시민이도, 기연이도 현민이도 그런 아이들은 아니지. 암!)
일요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배밭으로 나갔다. 요즘 남편은 하우스를 짓고 있다. 농자재와 농기구를 넣어 둘 곳이 없어 비를 맞고 있다. 내년에 집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당장 작은 하우스라도 만들어서 창고로 써야 할 것 같다며 남편은 동네 철물점에 가서 하우스대와 비닐을 사가지고 왔다. 하우스 짓는 일은 홍이가 옆에서 거들기로 했다. 홍이는 잔손을 대어 곧잘 일을 거들었다.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일은 힘도 나지 않고 쉬 지치게 된다. 옆에서 못하나, 망치하나라도 거들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일의 능률도 오르고 힘도 난다. 지루하고 힘에 부칠법도 하건만 홍이는 짜증도 내지 않고 제 아빠 일손을 돕고 있다.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조금씩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낯선 경험을 저마다 쌓아가고 있다.
창이와 나는 나무전지를 해야 한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배나무 과수원이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단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는 없고, 좀체 줄어들지 않는 농사일에 진력을 내다가도 다시 밭에 나오면 그래도 또 힘이 솟는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나무를 보면 절로 그렇게 되고 만다. 이것도 수렁이다.
“창아, 너 한 그루 다 했어?” 나는 흙을 파헤치고 있는 창이에게 물었다.
“아니요? 아직...” 창이는 밝지 않은 얼굴로 대답한다.
창이의 표정은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저는 정말 이 일이 하기 싫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얼른 마트에 가서 뭘 좀 사 와야 할 것 같다. 저런 표정을 짓다가도 마트 과자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손에 쥐어주어도 금세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마련이다.
막, ‘창아, 엄마 마트 갔다 올게.’라고 말을 하려는데 창이가 먼저 말을 한다.
“어머니, 저 덩이 마려워요.”
“덩...?” (에고, 겨우 생각해 낸 게 덩이야...?)
“네. 다녀오세요. 그리고 덩 싸시고 흙으로 잘 덮으세요. 복구 못 드시게.”
창이는 어슬렁어슬렁 삽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배 밭에는 따로 화장실이 없다.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도 없기 때문에 급할 땐 배 밭 한쪽에서 볼일을 본다. 간혹 큰 볼일을 보게 될 경우에는 구석에서 볼일을본 후에흙으로 덮는데 지난번 창이는 큰 볼일을 본 후 그냥 두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복구가 창이 싸 놓은 덩을 보고 다가가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을 보고 창이가 난리를 쳤다.
“복구, 안 돼. 그건 덩이야. 저리 가.”
복구는 자꾸 다가가 덩을 먹으려 하고 창이는 복구를 못 가게 막으려 하고...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갔더니 그런 상황이다.
개가 사람 덩을 먹는 일이야 예전부터 늘 있었던 일이라 그러려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년에 이웃집 개가 병이 들었었는데 이유인즉슨, 사람 덩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식성 좋게 먹은 탓이라 하니, 명색이 복구형인 창이가 복구가 덩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판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게다.
복구를 불렀다. 긴 털이 자라서 온 얼굴을 덮고 있어 눈도 보이지 않는다. 털을 쓸어 눈이 보이게 한 후 조용히 타일렀다. “저건 사람 덩. 너 이게 먹으면 네 형처럼 배 아야 할 거다.”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창이가, “아이, 어머니! 그럼 제가 덩을 먹어서 배 아프단 말이 예요? 저 덩 안 먹었어요. 씨~"
복구가 내 눈을 피해서 살짝 눈을 내리 까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 너... 먹었니...?”
삽을 들고 간 창이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던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마트 가서 맛있는 거 사 올게.”
봄기운이 완연하였지만 오후가 되자 짧은 봄 햇살이 가늘어지면서 오소소 한기가 들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묵은 풀 정리를 해야 감자라도 좀 심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낫을 들어 풀을 베었다. 묵은 풀이 금방 수북이 쌓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묵은 풀에 불을 붙였더니 화르르 불이 일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쌓인 풀이 타고나면 괜찮겠지 싶어 지켜보는데, 내 옆에 있던 창이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던데." 말하며 막대기를 들고 흙을 파고 있다. 그런데 불길이 슬금슬금 주변 마른풀로 번져 나가고 있다. 너무 놀라서 남편과 홍이를 불렀다.
“여보, 홍아, 빨리 좀 와봐.”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하우스를 만들고 있던 두 사람이 뛰어왔다.
“왜? 왜?”
주변에 민가는 없다고는 하지만 뒷밭은 포도밭이다. 남의 포도밭으로 불이 번진다면 큰일이다. 남편과 홍이가 같이 뛰어오다가 남편이 되돌아 다시 뛰어간다. 어서 빨리 오지 않고 왜 저러나 싶었더니 남편 손에 삽이 들려 있다. 나와 아이들은 번지는 불길에 흙을 뿌리고 남편은 반대쪽으로 뛰어가서 퍼져나가는 불길 끝에서부터 삽으로 흙을 떠서 덮어왔다. 다 꺼졌는가 싶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불꽃이 화르르 피어올랐다. 정신없이 불을 끄고 보니, 남편은 바짓가랑이가 다 타고 머리도 그을렸다. 나와 홍이도 손등에 작은 화상을 입었다. 불을 끄고 우리는 한 동안 넋이 나간 듯 앉아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창이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팡팡 사긴 다 틀렸네."
나는 남편이 고함이라도 칠까 봐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남편이 우리 셋을 보며 말했다.
“셋 다 잘 들어. 아버지 없을 때 절대로 물, 불, 기계 함부로 만질 생각 하지 마, 알았어.”
“네.” 우리는 기어가는 소리로 작게 대답을 했다.
남편이 다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특히, 당신. 알겠지?”
내가 조신하게 대답을 했다.
“네. 앞으로 절대 경거망동 하지 않겠습니다, 여보.”
옆에서 홍이와 창이가 키득키득 소리 죽여 웃었다.
아침에 일어난 창이가 나에게 말을 한다.
"아버지는 술 많이 드시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도 많이 드셨더라고요."
“너 언제 아버지 봤어?”
“제가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들어오시더라고요.”
어젯밤, 아니 정확히 오늘 새벽 잠결에 술 취한 제 아버지를 보았나 보다.
“근데, 네가 지금 아버지 걱정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슬쩍 아이의 실수를 상기시켰다. 내 말에 창이가 아무 말하지 못하고 풀이 죽어서 밖으로 나갔다. 풀 죽은 아이를 보니 아침부터 아이에게 괜한 말을 했나 후회가 되었지만, 사실 창이는 최근 큰 실수를 하나 하였다. 며칠 전 전화요금 고지서가 배달되었는데 전화요금이 거금 4만 원이나 되었다. 평소보다 세 배가 넘는 전화요금에 놀라서 전화국에 연락했더니 <인터넷 콘텐츠 이용료>에서 비용이 발생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전화국에서 알려준 번호는 게임회사였다. 그곳에서는 요즘 이런 일이 빈번하다며,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레벨을 올려준다는 등의 이유로 아이를 꼬드겨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전화로 물건(게임에 필요한 무기나 사이버 캐시 충전)을 살 수 있는 인증번호를 누르게 하는 방식으로 사기를 치는 수법이라고 했다. 게임회사에서는 게임사기를 당한 것 같으니 소비자고발원에 고발하여 요금을 환불받고 사이버경찰대에 신고하여 범인을 잡으라며 방법을 알려주곤 전화를 끊었다.
창이는 한 달 동안 게임을 금지당했다. 제가 저지른 실수에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하긴 했으나, 몹시 억울해 보였다.
오늘은 TV가 잘 안나와서 안테나를 돌렸지만 잘됀 부분을 게속 잡아야 하기 때 문에~ 그냥 봤다. 06번은 나온다. 그런데 형이 안테나를 부셨다. 그런데 06번과 다른데가 잘 나온다. 단! 08,80,09,13번이 회생되었다. 너무 슬픈일이다. 하지만 06번을 볼수있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