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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횡재

25년 1월 7일 화요일

by 보리남순

마음에 오래 품고 있던 일이 풀리자면 의외의 기회로 쉽게 풀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집에서 표고목을 키우게 된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여러 번 표고목을 구입해 키워보자고 말을 했으나, 남편은 내 말을 귓등으로만 흘려들 뿐, 시큰둥했다. 그랬던 남편이 산림조합의 나무시장에 가서 표고목을 구입했다.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표고를 넣고 끓인 물 한잔이었다.

4년 전 12월, 지인과 카페에 갔다가 우습게 사고를 당했고, 손목이 골절되었다. 골절된 손이 하필 오른손이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쓰게 되지 못하게 되자 불편을 옆 사람과 함께 겪어야 했다. 두 달간 깁스를 했고 손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 남편이 살림을 도맡았을 뿐 아니라 머리도 감겨주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남편이라도 몸을 맡기는 일은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삶을 영위하는 것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첫걸음이자 전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진리다.


남편은 2주에 한 번꼴로 나를 데리고 짧은 여행을 갔다. 집에서 2시간쯤 떨어진 경기도 외곽지역이었지만,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나를 위한 배려였다.

그날은 아직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2월이었던 것 같다. 일산대교를 넘어 강변북로를 지나 뻥 뚫린 자유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갑갑하던 마음이 풀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파주에 있는 식물 농장.


눈에 익은 식물부터 생소하고 처음 보는 식물까지 크고 작은 꽃나무들이 커다란 매장에 가득하다. 한 겨울에 만나는 꽃은 얼마나 귀하고 예쁜 풍경인가. 그곳의 특별함은 매장에서 연결된 별도의 공간에 있었다. 열대우림이 연상되는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그곳에서 숲길을 산책하듯 꽃나무를 보며 산책을 했고 중간중간 놓여 있는 의자에서 휴식을 취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이었다. 꽃구경을 실컷 하고 꽃 화분 몇 개를 사서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연히 찾아간 식당이 표고전문 식당이었다. 여러 종류의 버섯이 들어간 버섯전골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전골보다 식전에 나온 엽차에 더 감탄했다. 남편의 감탄이 아니더라도 은은한 향과 함께 구수한 맛이 나는 엽차는 보리차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고급 중국식당에서 나오는 재스민차도 아니었다. 특별한 이 차가 무얼까 둘이 궁리를 하다가 주인에게 물었다. 건표고를 넣어 끓인 차라고, 직접 키운 표고라고 말을 하며 “맛있지요?” 주인이 환하게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남편은 “우리도 올해는 표고목을 사서 키우자.”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말을, 표고물 때문에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건표고, 생표고를 사서 해준 음식이 얼만데... 표고 끓인 물로 기다리던 대답을 듣게 될 줄이야..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백번 말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한 번의 경험으로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가 보다. 잔소리, 다 쓸데없다.

파주를 다녀온 뒤, 식목일에 맞춰 개장한 산림조합 나무 시장에서 표고목 4개를 구입했다. 120센티 길이의 참나무에 작은 흰 딱지가 붙어 있다. 딱지 아래 표고종균이 잠을 자고 있다. 앞으로 족히 5년 동안 버섯이 생산된다고 한다. 오래된 소원 성취와, 5년 동안 텃밭에서 표고를 먹을 생각을 하니 입이 절로 벙글어진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 표고목 관리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표고목은 그늘진 곳에 두어야 한다. 그늘이 없다면 차광막을 쳐서 빛을 가려 주어야 하고, 2달간 바닥에 일자로 누워 놓은 뒤, 2달이 지난 뒤에는 표고목을 정(井) 자로 쌓아 놓았다가 다시 가을이 되면 나무를 바로 세워야 한다.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 표고목 속까지 젖도록 흠뻑 주어야 한다. 겉만 적셔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버섯을 키울 때도 여타의 다른 작물들과 마찬가지로 물관리가 핵심인 것 같았다.

나무와 종균만 있으면 절로 자랄 줄 알다가 의외로 까다로운 관리방법에 점차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것보다 더 맥 빠지게 한 결정적 한 방이 있었으니, “표고 생산은 내년부터 시작됩니다.”라는 말이었다.

“넹? 올해는 버섯이 안 나오나요?”

“네. 올해까지는 잠을 자고 생산은 내년부터 시작됩니다.”

날 풀리면 나무에서 금방 버섯이 방긋방긋 솟아날 줄 잔뜩 기대했다가 1년 뒤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갑자기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잠자는 표고목을 승용차에 구겨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표고목이 자리를 잡은 곳은 펜스를 친 구석자리다. 뒤로는 커다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바깥에서 자라는 개나리가 펜스를 넘어 커튼처럼 늘어진 곳. 그늘막을 따로 치지 않아도 소나무와 개나리만으로도 충분한 그늘이 확보된 곳이다. 시기마다 남편을 재촉해 버섯목을 눕혔다, 정자로 쌓았다, 마침내 세웠다. 그 사이 깁스는 풀었으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호수를 잡고 버섯목에 몇 번 물도 주었다. 흠뻑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버섯이 나오기 시작하는 봄부터 눈에 불을 켜고 버섯을 찾아 나무를 더듬었더랬다. 첫 수확이 3개였던가...? 실망이 큰 기억은 가벼이 취급된다. 기다림에 비해 결과는 너무 초라했다.

버섯이 피어날 기미나 조짐도 보이지 않는 참나무를 잘라서 난로에 넣어버릴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던 그곳에서 늠름하게 자라는 버섯을 발견한 것은 어제였다.

도둑고양이처럼 야밤에 선포된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연일 뉴스를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고 있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아 이 일 찔끔 저 일 찔끔 부산만 떨다가 난로 청소나 하자 싶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거실에 나무 난로를 설치하고 기온이 떨어지는 밤이면 나무를 때고 있다. 온기도 온기지만 활활 타오르는 빨간 불길을 보고 있으면 들고 일어섰던 마음을 그나마 조금 가라앉힐 수 있다. 오래된 주물 난로는 통이 작아서 삼일에 한 번꼴로 난로 청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긁어낸 재를 모아 부추밭, 명이나물(산마늘), 쪽파밭에 골고루 거름으로 뿌릴 때는, 새 봄에 돋아날 새싹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듯, 이 불온한 오늘의 사태도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려니 희망하게 된다.

아침에 잠깐 눈이 내리기는 했으나 곧 멈추었고, 바람도 자고 있어 햇살이 비치는 낮 시간에는 푸근했다. 재를 뿌리고 난 뒤 돼지감자를 조금 캐 볼 요량으로 삽을 챙겨 밭으로 갔다. 세숫대야 가득 담긴 재를 골고루 밭에 뿌리고서 밭 가장자리에 쓰러져 있는 대를 뽑고 돼지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밭 둘레에서 자라는 키 큰 소나무가 바람을 막아주고 떨어진 나뭇잎과 삭은 풀이 섞인 땅은 보들보들했다. 땅에 삽을 꽂아 흙을 뒤집자 흙속에 동글동글한 돼지감자가 구슬처럼 박혀 있다. 알이 굵은 것들은 깊숙이 땅속에 묻혀 있고 동글동글 작은 것들은 손으로 흙을 긁어내기만 해도 얼굴을 내밀었다. 굵직한 대를 골라 대여섯 개를 캐고 보니 세숫대야 반이나 되었다. 팠던 자리를 되메우고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잘 못 보았나 했다. 선걸음으로 달려가서 들여다보니 분명 표고버섯이다. 지난 11월, 밭작물 수확을 다 끝내고 난 뒤 확인 하였을 때만 해도 버섯은 고사하고 버섯이 돋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못내 애석한 마음으로 돌아섰던 기억이 선명한데, 도대체 이 한 겨울에 버섯이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지만 분명 표고버섯이었다. 갓이 많이 피기는 했지만 표고목에서 수확하게 된 첫 버섯이었다. 마음에 차게 풍성하게 핀 버섯을 하나하나 귀하게 따서 바구니에 담고 보니 한 가득이다. 심란했던 기분은 간데없고, 기쁜 마음에 날 듯이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함께 낮이 따온 표고를 먹었다. 생표고 길쭉하게 잘라 기름소금에 온전히 표고맛을 즐겼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표고 향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하다. 마른나무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 같기만 하다. 비 오고, 눈이 내리는 이 한 겨울에 표고를 따서 먹다니. 성급한 마음에 표고목을 잘라 난로에 넣어버렸더라면 어쩔 뻔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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