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한식당 간 날
쉽게 산티아고를 떠나지 못하고 3일을 묵었다. 발은 조금 낫는 듯하다가 조금 걸었다 싶으면 다시 통증이 커지곤 했다. 지난밤에 한식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식당을 찾아 길을 너무 헤맸다. 구굴지도가 발자국을 따박따박 보여주며 따라오라 하고 인물은 보이지 않지만 매력적인 저음의 부드러운 젊은 남성이 좌회전입니다, 우회전입니다 하고 안내를 해줘도 17분 나오는 거리를 40분이 넘어 도착을 했다.
무서운 집념으로 지팡이를 짚어가며 아픈 발을 하고서 식당에 들어가 시간은 예약시간을 10분이나 넘겨서였다.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식당에는 서양인 동양인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문 바로 앞에 있는 2인석에 앉아 김치찌개와 밥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 서빙하는 사람 모두 외국인인데 김치찌개는 내가 끓인 것보다 더 맛있었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김치는 너무 시어져서도 또 신맛이 없어도 맛이 없다. 그런데 이 집 김치는 간이나 숙성 정도가 너무 적당했고 게다가 두부까지 들어가 있지 않은가. 요 며칠 집에서 끓여 먹던 칼칼한 두부찌개가 생각나던 참이었다. 두부와 김치치개를 크게 떠서 밥에 얹어 살살 비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먹었다. 내내 배가 고프다가 김치찌개 와 흰밥에서 진짜 배가 차는 것 같았다. 알베르게에서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부부를 만났었다. 부부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도 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우리가 계속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은 이 김치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김치가 없었더라면 우울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번 여행에서는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집밥생각이 났었다.
이것도 나이와 상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주인이 한국인이 맞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사람과 배워서 만드는 음식맛에는 차이가 있다. 영혼이 채워지는 김치찌개였다.
옆에서 단체로 밥을 먹고 있던 한국 사람들이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는 벌써 다 먹었냐며 놀란다. 나보다 먼저 와서 초록 소주병에 든 술과 맥주를 나누어 먹고 있던 그들의 밥은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다.
"배 고파서 정신없이 먹었네요. 맛있게 드세요" 인사를 하고는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올 때 헤맨 그 길을 9시가 넘어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혼자 찾아갈 자신도 없었고 발도 아팠다.
식사를 다 끝낸 한국인 일행들이 나와 돌아갈 때까지도 택시가 오지 않더니 길이 막혀 올 수가 없다며 나보고 길을 따라서 10분을 걸어가란다.
저녁때가 다 된 시각에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서 청소년 마라톤 대회 같은 것이 열렸었다.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뒤섞여 뛸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도 찍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땅 소리에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가고 난 뒤 내 옆에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있던 여자에게 물었다.
"저 아이들은 몇 킬로나 달리는 거래요?"
나는 이 경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해요"
여자가 자리를 벗어나며 대답했다.
(아... 학부형이 아니라 나와 같은 관광객...?)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 길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시합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데 이래도 되는 거야?
남이사 달리기를 밤에 하던, 댄스파티를 새벽부터 시작하던 상관할 바는 없지만 내가 타야 할 택시는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