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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상헌 Feb 17. 2016

토마토의 꽃

진주시 지수면, 김현두 농민

이야기의 주인공, 김현두 이향숙 농민 부부
늘 맑은 모습으로 맞이해주시는 이향숙 농민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고, 땅과 가까이 지내온 농민들의 이야기가, 마치 귀한 책과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안전한 먹거리와, 그것을 생산해내는 헌신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먼저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농민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분의 얼굴을 평소보다 자세히 살피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글을 다듬으며 생각해보니, 그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셨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김현두, 이향숙 농민의 고집과 헌신을 존경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삶에 복된 일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인터뷰는 2016년1월22일 이뤄졌습니다.)






 진주시 지수면에서 토마토 농사짓고 있는 김현두라고 합니다.
농사는 촌에 살면서 부모님 일 도우면서 배웠고, 군에 갔다 오면서 본격적으로 내 농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81년쯤이었어요. 농사를 한지가 35년쯤 되겠네요. 농사를 짓기로 결심하게 된 특별할 이유는 없고... 당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던 때였어요. 농사는 누구라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라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지수면, 농장으로 향하는 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농장 입구



 첫 농작물은 돼지(쥬키니)호박이었고, 고추부터 피망까지 이것저것 심어보다가 토마토 농사로 집중하게 됐지요. 토마토는 영양소가 많은 건강식이었고, 친환경 농사를 하기에도 좋아서 그랬지요.
처음에는 관행(일반적인 재배 방식) 농사를 했어요. 약도 적당히 치고...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한 시기는 1995년이었어요. 결심하게 된 이유는 둘째 아들 때문이었어요. 그때 둘째가 다섯 살이었는데, 토마토 농장에서 토마토 꽃을 보고는 “아빠, 이거 먹어도 돼?”라고 묻곤 말릴 새도 없이 따서 먹어버리더라고요. 그때 얼마나 머리가 띵하던지... 약을 친 농산물을 내 자식이 먹는 모습에 마음이 고단하여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내 자식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마음껏 먹일 수 있는 농산물을 지어야겠다. 그리고 그해부터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을 했습니다.


 친환경 농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수확량이 관행 때보다 절반도 안 될 때가 허다하고 농작물의 병도 잦았고... 지금에야 오래 전 일이니 편히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친환경에 대한 정보조차 많지 않아서 지역에 친환경 농법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다른 지역의 유기농 협회에도 가입해서 배워도 영 시원찮고, 결국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나름의 방식이 생기긴 했지요. 대부분이 경험에 의해서 이뤄지다 보니 지금도 가끔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있지요. 텃밭의 젊은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들이 체계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진행하는 걸 보면 나도 좀 더 체계적으로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자와 귤 껍질로 만든 친환경 약재
방 안 가득한 연구의 흔적



 경매장에 내 농산물을 들고 나가면 정말 정성껏 지은 친환경 농산물이라도 평가가 박했어요. 모양이 예쁘지 않다, 크기가 일정치 않다... 관행대로 지은 농산물은 크기도 모양도 더 좋으니까요. 마음을 다해 정성껏 지은 내 농산물을 정성스럽게 대해주고 평가해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진주텃밭이 생길 때 생산자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됐지요. 내 농산물을 대접해주는 곳이니까.


 현재 시중 토마토의 거의 대부분은 유럽종자예요. 과일보다는 채소의 개념에 가까워 단단하고 보관이 오래되지요. 보관이 길면 유통도 편하고요. 그래서 유통업자들이 많이 찾고 원하니,  대부분의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유럽종 토마토를 짓습니다. 유럽종은 보통 양액 재배를 합니다. 흙을 이용하지 않고 물과 수용성 영양분으로 키우지요. 제 토마토는 동양종에 토경(흙) 재배를 합니다. 동양종은 보관이 길진 않지만 맛이 더 풍부합니다. 드시는 입장에선 맛이 좋은 게 좋을 거라 생각하여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양종으로 짓고 있습니다. 흙에다 기르면 맛도 영양소도 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토마토 농장으로 향하는 길, 농민의 뒷모습



 친환경 농법은 손이 많이 갑니다. 관행 때 농약을 1번 친다면, 친환경 농법은 약재를 4~5번 나눠서 쳐야 합니다. 관행 농약이 작물에 대해 일방적인 느낌이라면, 친환경 약재는 작물이 적응하도록 나눠서 여러 번 하기도 해야 하고, 다양한 종류가 있기도 해서 품이 더 많이 가는 거지요. 거기에 토경 재배도 양액 재배보다 품이 많이 가고요. 그래서 힘이 너무 많이 들어요. 친환경 농사만 약 20년째인데, 고단함이 익숙해지지 않고 아직도 힘들어요. 지금도 포기할까 생각을 많이 해요. (옮긴이- 김현두 생산자를 비롯한, 진주텃밭의 생산자분들에게 힘을 많이 실어주세요.)
우리 토마토는 수정할 때 벌을 이용해요. 관행 농사 때는 약을 칠 때면 이 죽기 때문에 약을 치고 한참 후에 벌을 풀어요. 우리도 약을 치고 나면  하우스에 약 기운이 빠질 때까지 일을 안 해요. 친환경 농사 전환하고 나선 아무 상관이 없어요. 벌을 풀어놓고 약재를 치고, 사람도 일을 하고. 마음이 포근한 게 참 좋은 점이지요.


토마토 순 제거 작업을 하는 김현두 농민 부부
파릇파릇한 토마토들의 모습, 빨갛게 익어가길 기다린다.
농장에 가야만 볼 수 있다, 토마토가 달릴 줄기와 꽃.
순하고 예쁜 모습의 농장


 얼마 전에 진주시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잔류농약검사를 하러 왔어요. 보통은 혹시나 농약이 검출될까 봐 농민이 원하는 부분의 흙과 농산물을 채취해 가는데, 제가 “아무데나 당신들 원하는 대로 가져가시오!”라고 하니 왜 그리 간이 크냐면서 놀라더라고. 그런데 나는 간이 큰 게 아니라 내 농산물에 정말로 자신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그렇게 기른 올해 첫 토마토가 설 지나고 2월 중순에 나와요. 원래 더 빨리 나왔어야 하는데 11월에 장마라 하기도 뭣하고 날씨가 너무 궂었던지라... 농사가 이렇게 어렵지, 맘대로도 안 되고.


 농민으로 살면서 힘들었던 때요?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힘들었지... 정말로.
아들 둘에 딸 둘인데, 큰 애가 27살, 제일 작은 애가 17살. 아이들이 무사히, 순서대로 진학하고 잘 커갈 때가 제일 기뻐요. 사는 기쁨이지!


사진 찍는 걸 수줍어하셨다.


 얼굴 있는 생산자의 확실한 지역(친환경) 농산물, 결국 우리 같은 농민은 농산물이 많이 팔려야 더 정성껏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농사는, 힘이 되는 만큼 지어보려고 합니다.

헤어지기 전, 맛있는 걸 못 먹이고 보내서 섭섭하다며,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다.





글쓴이의 덧붙이는 말.

농민 없인 농산물도 없습니다. 농민의 헌신 위에 건강한 농산물이 자랍니다. 농산물이 아니라 책을 구매한다면, 글쓴이가 누군지 살펴보고 찾아보겠지요. 농산물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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